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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냉이 Apr 22. 2021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리뷰 - 작정한 사랑의 고백들

물냉이의 블랙북스

싫은 것들을 곱씹으며 3월을 보냈다. 죽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죽는 광경을, 혐오가 몸집을 불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SNS에서는 고통스런 괴롭힘이 실시간으로 벌어졌다. 단 한 번도 내 맘에 든 적 없는 선거는 이번에도 내 맘에 들지 않았다. 일상적으로 허탈했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밥 먹고 회사 갔다가 밥 먹고 자고. 그냥 그러고 지냈다. 그러다 가끔 생각하고-다 싫다. 다시 생각하고-그러지 말자.


이은선 작가의 첫 에세이집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를 초판으로 사놓고 2쇄가 나올 때까지 (금방 나왔다) 묵혀두었던 건 그런 이유였는데, 페이지 넘기기가 무섭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영화 전문 기자인 작가님과는 종종 일도 하고 밥도 먹는 사이라 하는 말인데(으쓱대는 중), 이은선 씨가 내 이럴 줄 알았다. 페이지마다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빼곡히 채워둔 거다. 이 영화가, 이 음식이, 이 사람들과 이 사물들이 얼마나 사랑 받을 만한 것들인지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하기에 바쁜 거다. 읽다 보니 이 책의 책장 한 장 한 장이 작가의 책장 같다. 반듯하고 윤이 나는 책장. 예쁜 것들을 아무리 올려둬도 무너지지 않을 책장. 내 공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둔, 단단하고 튼튼한 책장.


 책은 영화를 업으로 삼고 요리를 일상으로 하는 이은선 작가가 영화  음식을 주제로  에세이집이다. 영화 전문 기자답게 영화의 감독, 배우, 배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트리비아까지 해박하고 풍성하게 담았는데, 읽다보니 어쩐지 요리 이야기가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말투 때문일 거다. 본업인 영화를   작가의 톤은 겸손하고 섬세하다. 조심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점잖다. 반면 음식에 관해   그의 목소리는 활기와 자신감으로 통통 차오른다.   가지 목소리의 온도차를 오가는 일은 글맛과 함께 동시에 작가의 성품을 가늠케 하는 재미도 준다. 예기치 못한 불신과도 마주친다. 티라미수 요리법을 적어두고 이렇게 쉽고 간단한 요리법이! 라며 감탄하는 구절을 읽을 때다. 어떤 사람(=) 아니 이걸 집에서 만든다고? 라며 경악하는데, 작가님 정말이냐구요.


어쩌면 나 먹여주려고 썰고 굽고 끓여 담아낸 한 그릇의 마음 같은 책이다. 그 마음은 단추 한 알로 끓여낸 것인데, 요리법은 다음과 같다. 커다란 솥에 물을 잔뜩 붓고 단추 한 알을 퐁당 넣는다. 단추 넣은 물이 팔팔 끓으면 양배추랑 햄이랑 고기랑 양파랑 토마토랑 감자 병아리콩 당근 파 마늘 버섯과 올리브랑 수박이랑 미나리 아무튼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의 식재료 창고를 몽땅 털어 넣는다. 오래오래 정성들여 젓는다. 이 식재료의 맛이 하나하나 살아나도록, 혹은 어우러지도록 지켜봐가며, 맛도 봐 가며 끓인다. 색깔도 예쁘게 내 가며 끓여낸다.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는 그런 책이다. 영화라는 단추 한 알에 신선하고 다채로운 수만개의 사랑 고백을 더해 끓여낸 마음이다. 맛이 없을 리 없는 부드럽고 따끈한 무엇이다.


이 작정한 사랑의 고백들을 떠먹이는 대로 받아 먹는 일은 도리없이 즐겁다. 이런 걸 읽고 있자면 '싫다'는 말만 주문처럼 외고 있던 내가 조금 머쓱해지고 만다. 사실 나도 좋아하는 게 많은데, 내 좋아하는 것들도 돌봄이 필요할텐데, 싶어지는 거다. 날 돌아보고 내 주변을 돌볼 기운을 내야 하니까 뭐든 잠깐 잊기로 한다. 나도 이 책을 따라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글을 읽는다.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들려준다. 이런 게 보양이지, 하며. 그러니까,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 하며.


많이들 읽으시면 좋겠다. 구매는 여기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partner=rss&ISBN=8950994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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