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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냉이 Apr 22. 2021

피아노와 침대

물냉이의 저주

내 첫 번째 서울 방은 대학 기숙사였다. 수원이 고향이던 룸메이트는 주말마다 본가로 돌아갔다. 혼자 보내던 일요일이 매번 기뻤다. 기숙사 매점에서 신라면 큰사발과 구구콘을 사서 내 방 책상에서 늦은 아침을 하는 게 주말 일과였다. 여름방학에는 방을 비워야 했다. 계절학기인지 어학연수인지 하는 학생들이 사용하게 되어 있다 했다. 학교 근처 자취촌에 원룸을 빌려 살던 친구가 방학 동안 내게 집을 내주고 자신은 본가인 대구에 내려갔다. 그 다음해에는 기숙사에 당첨되지 못했다. 쇼핑백 몇 개로 이사를 했다. 학교 앞 번화가의 ‘잠만 자는 하숙’ 방이었다. 옆 건물에는 소개팅 장소로 유명한 돈까스집이, 지하에는 민속주점이 있는 남루한 건물 2층에 있었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이나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종종 더러운 층계참에 누가 쏟아놓은 엄청난 양의 토사물과 마주쳐야 했다. 일 년을 살고 연희동에 새로 지은 원룸 반지하 방으로 들어갔다. 손바닥만 한 거미를 죽였다. 고양이와 처음 살아본 건 망원동에서였다. 망원시장 한가운데 있는 집이었다. 아주 넓은 나무 바닥 거실이 있었다. 두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온 친구가 거실에서 잤다. 그 다음 집도 망원동이었다. 그 다음 집도 망원동, 그리고 이 집. 6년을 살았다.


동네 친구들 사이에 이사 붐이 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공간을 꾸밀 수 있을지 궁리한 결과였다. 친구와 함께 살다 따로 살고, 애인과 따로 살다 함께 살고, 또는 함께 살려다 말고 하는 동안 우리의 주제는 온통 집과 가구였다. 나도 덩달아 뭔가 바꿔볼 궁리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집을 바꿀 생각을 했다. 냄새 나고 시끄러운 이 골목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였다. 몇 명이서 같이 살며 월세를 아낄까, 소음투성이 서울을 벗어나 조용한 교외에서 살아볼까, 대출을 받아 새로 지은 건물로 갈까, 이도 저도 안되면 원룸으로 갈까. 하지만 나의 이사는 실행되지 않았다. 부동산을 통해 본 집의 상태는 예상 수준에 한참 미달했다. 보증금과 월세는 내가 가진 수준으론 어림없었고.


집보다 작은 걸 바꿔 보기로 한다. 내 집을 곰곰이 뜯어본다. 서울에서 반평생 가까이 사는 동안 내게 모인 건 버릴 것을 예비한, 하지만 결코 버리지 못한 싸고 가벼운 가구들뿐이다. 어차피 낡은 집으로, 어차피 언제 다시 이삿짐을 꾸려야 할지 모르는 집으로 이사 갈 것이 예정되어 있다고 체념한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다. 


합판과 플라스틱을 사들이던 20대의 나보다 사들일 수 있는 게 많아진 30대의 나는, 그래도 그때보다 좀 더 행복하단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여전히 소비할 수 없는 걸 떠올리면 불행하다. 살 수 있는 걸 선택할 수는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을 선택할 순 없다.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걸 고르는 것이 일상에 조금의 기쁨을 얹긴 하겠으나, 충분할 리 없다. 좀 더 넓은 선택지를 가지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겠으나, 당장 선택할 수 없는 그것들을 열렬히 원하지도 않는다.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은 지는 것이고 소비를 하는 것도 지는 것이다. 매일 지니까, 얼마를 더 체념하고 어느 선 이상을 포기하지 않아야 날 지킬 수 있을지도 그만큼 자주 궁리해야 한다. 버릴 것이 예정되었으니 버려지지 못한 가구들의 생, 이번에도 유예된다. 


어쨌든 이사도 못 가고 가구도 못 바꾼 나는 중고 피아노와 괜찮은 매트리스를 샀다. 손가락에 닿는 딱딱한 건반의 경쾌함과 잠자기 직전 자세를 다잡을 때 몸에 묻는 찰나의 만족감을 경제적인 가격에 사들이고, 이런 거면 난 그만이라 말하려고 샀다. 거짓말이다. 사실은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다. 애를 쓰고 방어해도 생활을 헤집어 대는 각종 제약이 불만스러울 뿐, 유튜브 속 피아노랑 똑같은 소리를 내는 전자 피아노와 일요일 내내 누워 있어도 편안한 침대를 갖춘 내 방에서 머무는 게 퍽 행복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사소한 행복은 내 일상을 어는 선까지 지탱해 줄 수 있을까? 집이 있어야 재산을 불릴 수 있으나, 재산이 없어 집을 마련할 수 없는 이 시대에. 단단한 벽과 안전한 대문을 꿈 꾸기 어려운 시대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도 거시적으론 패배한 기분을 안기는 이 거대한 가난의 시대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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