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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냉이 May 19. 2021

‘이세린 가이드’ 리뷰: 기억의 모형들

물냉이의 블랙북스

노동은 숙달 되기 마련이다. 이세린 씨는 능숙한 노동자다. 일에도 능숙하고, 눈과 손이 부지런한 사이 딴 생각을 하는 데도 능숙하다. 딴 생각의 출발은 지금 만들고 있는 음식 모형과 관련된 것들이다. 단면 모형으로 틀을 뜨고 채색으로 레이어를 강조하는 동안, 생각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나뉘어, 어렸던 이세린과 젊은 엄마, 실직한 아빠와 유쾌하고 힘 없던 청소년기의 친구들, 옆집 아줌마와 그의 아들을 지나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직장 동료, 좋은 클라이언트와 싫은 클라이언트를 지나친다. 각자 바삐 갈 길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멈춰 선다. 생각이 멈춘 자리엔 감정이 고인다.


나는 '이세린 가이드' 주인공 이세린 씨를 실존하는 인물로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의 흘러서 고이는 지점, 거길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기억과 추억이 혼재된 , 후회와 분노 사이의 어디, 대책 없는 희망과 백색 소음 같은 불안이 대기에 섞여 떠도는 곳이다.  그러니까 거기는, 독자이자 노동자이며 여성인  머릿속이다. 이세린의  것과  닮은 머릿속. 그곳에서 여성이고 노동자이며 친구며 딸과 학생이자 직장 동료인 자신을, 각각의 정체성에 따로  같이  생채기가  잃고 헤매다 만나는 벽과 골목처럼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오랜 상처와 마주쳤을 때. 두 가지 대처법이 있다. 어떤 상처는 모른 척 하는 게 좋다. 눈앞의 일부터 해내다 보면 불필요한 통증을 줄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방치할수록 깊어지는 상처도 있다. 그런 것들은 즉각 해결하지 않으면 내가 삶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려 할 때 결정적 허들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처를 대할 때마다 이걸 묵힐지 해결할지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심지어 대처법을 선택한 적 없는데, 어떤 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리곤 한다.


세린 씨 역시 확실한 대처 가이드를 갖고 있진 않다. 다만 그것들이 머릿속에 마냥 고여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음식 모형을 만드는 손의 움직임을 따라, 그 생각들을 자르고 붙이고 다듬어서 눈에 보이는 형태로 가공한다. 그리고나서 지금의 세린 씨가 새로 형태를 잡은 옛날 세린 씨를 들여다본다. 들여다보다 보면 어떤 감정은 지나갔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몇몇은 그가 강해졌기 때문에 사라졌고 몇몇은 포기함으로써 사라졌으며, 몇몇은 먹고 사느라 바빠서 사라졌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지난 일'이 되었다는 걸 인지한다.


이세린이 만드는 음식 모형은 결국엔 먹을 거리를 만드는 일인 '노동' 상징 같다. 음식 만들기로 대표 되는 사회가 부과해온  '여성의 역할' 빗대는 것도 같다. 또는 삶의 어떤 부분을 모방하고 재창조하는 작업으로서의 '예술' 비유하는 듯하다. 아마 대체로 맞을 거다. 그런데도 책을 덮고  나는 이세린의 음식 모형은 그냥 음식 모형이고, 음식 모형을 만드는 일은 그냥 음식 모형을 만드는 일로 여기게 된다. 의미와 상징을 연결하려 애쓰는 대신 세린 씨는 일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도 그런데,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궁금해한다. 다른 사람들도 일하면서  생각을 할까. 생각을 한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팔자 타령을 할까. 신세를 비관할까. 옛날 생각을 할까. 그럴  즐거울까, 외로울까. 좋은 일과 싫은   어떤   자주 떠올릴까. 때때로 눈물이 날까. 모든 기억의 끝엔  슬프고 외롭고 미안했던 마음만 남아있을까. 나만 그럴까? 모두 그럴까. 매일의 노동을 투과하며 상처와 기억이 거리감을 얻어 간다. 그렇게 강변에 늘어선, 누가 사는지   없는  켜진 아파트를 바라보인생이 흘러간다. 다시 쓴다. 누군가는 살고 있을 저기 수없이 불 켜진 아파트를 바라보며 인생이 흘러간다. 삶엔 의외로 비유법이 끼어들 틈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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