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쓰는 일기
더우면 벗으면 되지.
제목을 보자마자 아빠 생각이 났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워낙에 골골 거리는 나를 두고 아빠는 많이 속이 상했을 것 같다고, 내가 엄마가 된 지금에야 비로소 아빠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만 찬 바람을 쐬면 곧바로 열이 펄펄 끓어 알아 누웠던 막내딸에게 아빠는 화가 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고! 그러면 감기에 안 걸리잖아!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고. 그렇게 한다고 정말로 내가 감기에 안 걸렸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뚝뚝한 표현 또한 사랑이었음을 안다. 물수건을 이마에 올리고 누워있는 나를 방문 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가 입을 여는 순간, 나는 열이 나느라 터져버린 입술을 오물거려 이렇게 말했다.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고!”
그렇게 아프면서도 나는 그게 웃겨서 웃었고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어이 새벽에 코피를 쏟았던 일곱 살 밤에는 수건을 가져다 한참을 닦아주며 “이제 코피 났으니까 열 내리겠네. 열 내리느라 그런 거야. 아이고~ 이제 다 나았다~” 했고, 도저히 잠을 자지 못해 깨어버렸던 여덟 살 밤에는 내가 다시 잠이 올 때까지 같이 보드게임을 해주었다. 문방구에서 삼천 원을 주고 설날에 사 왔던, 지금 생각하면 어른에게 재미있을 리 만무한 뻔한 게임이었다. 아빠는 그때 얼마나 졸렸을까. 낮에는 맞벌이를 하고, 아침저녁으로는 대식구의 며느리가 되어야 했던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지만, 아빠 역시 쉽기만 한 인생은 아니었을 텐데. 내 아픈 밤의 기억에는 그렇게 늘 아빠가 있었다.
먹먹한 마음을 숨기고 모리와 선채로 같이 읽었다.
“어른의 삶에 지쳤다면 땅에서 발뒤꿈치를 떼면 되지.”
그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발뒤꿈치를 들었다. 두 눈이 마주쳤다. 아빠가 하려던 말을 내가 먼저 가로챘을 때처럼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