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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솜 Apr 05. 2021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 빼고는 누워있어야 합니다.

자궁경관 무력증산모의 10개월

2009년 12월 29일


밤새 진통을 견디다 못해 새벽 6시에 할머닐 깨웠단다. 병원에 가자고. 결국 2010년 1월 1일 너를 낳겠다든 희망이 사흘 당겨졌단다.

네 태명은 모리였지. 엄마의 생살을 가르고 너는 8시 23분 태어났구나.

널 첫 대면을 시켜줬는데 손가락 다섯, 발가락 다섯, 두 귀와 등에 몽고반점까지도 간호사가 확인시켜줬다.

네 얼굴 생김은 아빠, 엄마, 외삼촌 다 함께 있는 듯했다.

아가야. 이제부터 건강하고 바르고, 영광한 아이로 자라야 한다. 축하해.


<할피의 편지 중에서>








나 갔다 올게. 이따 꼭 밥 먹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알았지? 사랑해~




매일 아침 남편은 내 머리맡에 점심식사가 담긴 쟁반을 두고 출근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나 자신이 빈 집에 혼자 남겨진 어린애 같이 생각됐다. 일하러 나가는 엄마가 방바닥에 쌀 튀밥을 한 그릇 뿌려주고서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가면, 종일 그 튀밥을 주워 먹다가, 엄마 엄마 부르며 울먹이다가, 어느새 젖은 눈썹을 하고 혼자 잠이 드는 어린애 말이다. 처음에는 그런 비현실적인 하루의 시작에 왠지 웃음이 났다. 그러나 하루 이틀 그런 날이 길어지면서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보다 혼자 그렇게 남겨지는 서글픔이 더 커졌다.


퇴근한 남편이 집에 올 때까지 나는 종일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워있었다. 의사 선생님이 밥 먹을 때, 화장실 갈 때를 빼고는 누워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이라도 덜 일어나기 위해 아침부터 형광등을 미리 켜놓았다. 왼쪽으로 누운 채로 티비를 보고, 그러다 왼쪽 어깨가 아파지면 오른쪽으로 돌아누워 책을 읽었다. 모든 게 다, 그놈의 자궁경관 무력증 때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진통이나 자궁 수축 없이도 자궁 경관이 열려 조산을 할 수 있으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대개의 경우 미리 알지는 못하고 임신 이후에 알게 된다고 했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끝없는 조기진통에 시달리다 결국 첫 아이를 잃었었다. 겨우 마음을 추슬러 다시 가진 이 아이는 어떻게든 지켜야 했으므로 나는 일을 그만두고 종일 거실에 누워지내기를 택했다. 그렇게 누워서 찾아본 인터넷 정보에 따르면 27주는 되어야 인큐베이터에서라도 생존 가능성을 높여볼 수 있다고 했다. 도대체 언제 27주가 되나. 내 배는 아직 불러오지도 않았는데. 매일매일 하루가 빨리 저무는 것, 그게 내 소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소원을 빌어도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엄마는 내가 전화 한 통만 못 받아도 난리가 났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 집에 오셨다. 도어락 소리에 낮잠에서 깨 영문을 몰라하는 딸내미의 얼굴을 보고서야 큰 숨을 뱉으며 찬물을 들이켰다.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소원은 아니었던 것이다. 온 친정 식구들이 수시로 출동해 우리 집 냉장고를 채우고, 내 머리를 감겼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에는 새 수건을 가져와 사용한 수건과 맞바꾸고, 가기 전에는 보리차에 미리 빨대를 꽂아 내 손이 닿는 곳에 올려 두었다. 입원이 길어져 계절이 바뀌면 퇴원 날 입을 임부복을 사 가지고 왔고, 퇴원하고 집에 왔으니 잘 먹어야 한다며 다시 냉장고를 채웠다.


그 사이 나는 뱃속의 아이에게 모리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좋아하는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사랑 깊은 모리 교수님에게서 빌려온 것이었다. 조산의 위험뿐 아니라 검사란 검사는 모두 재검을 해야 할 만큼 불안한 임신기간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어쩌면 건강하지 못한 아기를 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보다 강하고 고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런 이유로 아이의 태명을 모리라고 지었다고 했을 때 언니는 ‘나는 그래도 몸도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했고, 엄마는 ‘내가 꿈을 꿨는데 정말 건강한 아기를 네가 안고 있더라’고 했다. “맞아, 열 달 꽉 꽉 다 채워서 건강한 아기 낳을 거야.” 언니와 엄마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그건 나 스스로 거는 주문이기도 했다. “열 달 꽉 채우자, 모리야. 그래서 우리 꼭 눈 오는 겨울에 만나자.”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돈다고 했던가. 27주를 무사히 넘겼다. 목표는 30주로 수정되었고, 그다음에는 33주로, 또 그다음에는 36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눈이 오는 날 아침. 모리는 제 이름에 걸맞게 화요일을 골라 세상에 나왔다. 할머니는 그 날부터 작은 수첩 하나를 펼쳐 백일 동안 모리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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