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 큐피드 꽃쟁이, 두 번째 무대

브런치 스토리가 열어준 새로운 길

by 모리화



우리에게 정해진 건 딱 하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죽기 전날까지도 우리는 기지개를 켜지 않을까?

그래서 내 요즘 좌표는 이렇다.

“마감이 없다고 미루지 말기.”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여전히 빚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느끼게 해 준 게 바로 브런치스토리 도전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나의 새로운 여정,

꽃집 14년 차 시니어의 심장을 뛰게 한다.


근래에 나는 브런치 스토리의 홍보대사가 된 기분이다.

내 덕분에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는 시니어들이 있다.

앱으로 가입하는 것도 공부가 되었다며, 신인 작가가 된 나를 축하해 주고 응원해 준다.

“이런 게 있는지 몰랐다, 알려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다.

“나도 해볼 수 있느냐?”라고 묻는 분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의 나는 편지 첫 줄조차 쓰기 어려웠던 사람이었다는 걸.

꽃집을 하는 동안, 그저 카톡 프로필에 사진을 올리며 몇 자 남긴 게 다였다.

고마운 자식들에게 아부의 말을 건네거나, 손님께 받은 감동을 남기거나,

가끔은 나를 괴롭힌 친구가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까지

그렇게 소소한 거였다고.


60자 제한이 있으니 몇 번이고 고쳐야 했다.

뒤돌아보니, 그 몇 줄의 문장에도 그때의 나와 다짐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짧은 글도 글이었고, 기록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고.


나라는 사람, 정성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항상 손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거기에 맞는 꽃을 만들었다.

리뷰를 부탁한 적은 없지만,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남겨준 평은 늘 비슷했다.

“감각적이다.”

그리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꼭 담아준다.”


이러면서 나는 ‘큐피드 플로리스트’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내가 만든 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 고백이 되고, 청첩장이 되고, 위로가 되고, 새로운 시작을 여는 사인이 되었다.

설마 꽃 때문에 그리 됐을까 싶었지만, 사람들은 결혼과 중요한 순간에 나에게 지분을 나누어 주곤 했다.


겉모습은 낡은 슬라브 건물, 하얀 시폰 커튼 하나 없는 작은 가게였다.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게 오히려 내 고유한 스타일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꽃을 사러 왔다가 오래 머물며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


“사장님처럼 꽃집을 하고 싶어요.”

젊은 친구들이 하는 그 말이 운영 매뉴얼을 묻는 질문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이 궁금해한 건 꽃집이라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하고 있는 ‘나’라는 걸 알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붙잡으며 살아왔는지.


그 물음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왔다.

내가 해온 정성과 새로운 시도들은 마케팅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고,

그 모든 여정은 결국은 나 자신에 대한 탐구였음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글로 이어졌다.


손님들과의 순간, 꽃을 통해 이어진 인연, 내 안의 방식과 강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밀린 일기처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난히 사례가 많았던 젊은이들의 공통된 고민, 완벽한 조건과 타이밍을 기다리느라 시작조차 못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예비 창업자와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상담을 하면서, 자격증도 없이 시작했던 나, 그러나 끊임없이 배우고 탐구하며 나만의 고유한 길을 만들고자 했던 얘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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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나의 꽃수업과 SNS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힐링의 철학에 대해서도 쓰기 시작했다.

위대하고 거창하지 않지만 말이다.

아마도 내가 원예치료를 공부하고 어르신들과 수업을 진행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92세 엄마와 소소하게 보내는 시간

가볍게 하는 ‘놀이’였지만, 원예치료 시간에 느꼈던 것처럼 치유와 회복이 스며 있었다.

몇 초의 영상과 짧은 글을 올렸을 뿐인데, 뜻밖의 반응이 쏟아졌다.

“진작 엄마랑 저렇게 놀 줄 알았더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됩니다.”

심지어 웰다잉 수업을 하는 분이 어르신들 수업에서 참고자료로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 왔다.


나는 알았다.

꽃집에서의 경험도, 엄마와의 놀이도 결국 같은 메시지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을 이어주고, 마음을 치유하며, 작은 순간을 붙잡아 기록하는 일.

꽃이 사람을 치유하듯, 사람도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들을 더 깊고 자세하게 전하기로 했다.


정성껏 관찰하고 기록하며, 그것을 나누는 일.

브런치 스토리는 내게 그 무대를 더욱 크게 확장해 주었다.


이제 막 브런치 작가로서 제2의 무대를 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난 여전히 빚어지는 미완성의 도자기이자,

그 도자기를 정성스레 빚고 있는 도공이기도 하다.

작게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서 나 역시 또 다른 성장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일 지경이다.


브런치가 내 글에 자리를 내어주고, 나의 시간을 또 다른 이야기로 채워주었다.

오늘은 브런치 스토리에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69세에게 새로운 성장이라니, 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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