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관찰이 만들어낸 작은 진단 하나
난 가끔 92살 친정엄마와 영상을 찍으며 소소한 놀이를 하고 있다.
하늘 배경이 나오는 경사진 건널목을 함께 걷던 날이었다.
그 길은 살짝 왼쪽으로 기울어진 오르막.
엄마는 오른쪽 다리가 더 짧다.
조금 빨리 걸을라치면 영락없이 아기오리가 뒤뚱거리는 모양새가 나온다.
나는 엄마를 왼쪽에 세우고 손을 잡았다.
그랬더니 걷는 게 한결 자연스러웠다.
몸이 편해지니 얼굴빛도 달라졌다.
한 두 번 다닌 길도 아닌데 그날따라 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한꺼번에 하는 게 무서워서 서로 다른 시기에 무릎 수술을 했는데
양쪽 다리 길이에 차이가 생겨 버렸다.
걸음이 자꾸 한쪽으로 쏠린다 싶어서 신발 밑창을 넣어 보았지만 신통치가 않았다.
의사는 그러게 한꺼번에 하라고 했는데 엄마의 탓이라고 했다.
더 이상 우울해지기 싫은 엄마는 바로 인정해 버렸다.
“원래 무릎이 아팠던 사람이니까”
"그래도 예전보다 안 아프니까'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뭐.”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더 기울어져 갔다.
점차 티가 많이 나기 시작했고 몸이 기울어지니 허리에도 통증이 생겼다.
이 모양 저 모양 깔창을 바꿔보고, 한 장만 깔던 것을 두 겹을 대보기도 하고
효도신발과 스틱 안마기에 의지하면서 씩씩한 척했다.
하지 말라고 하는 도시락 봉사까지 다녔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감사하다는 그녀를 더 말릴 수는 없었다.
조금 살펴보니 특히 급하게 걸을 때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알았다.
제발 천천히 걷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늘 시간이 아까운 사람처럼 종종거렸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존경하는 부분이지만
나의 입장에선 너무 부지런한 것도 불편함을 그냥 감수하기만 하는 저 참을성도 다 원망스러웠다.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닭띠’라서 그렇다고 운명론을 들고 나오기 일쑤였다.
학구열은 두 모녀가 있는 편인데 스스로의 몸을 돌보는 일에는 사실 나도 마찬가지 별 관심이 없었다.
하필이면 그 10년은 내가 유난히 바쁘기도 했던 터라 최소한의 립서비스만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제발 천천히”였다.
이렇게 엄마도, 나도 그냥 ‘그려려니’ 하고 살았다.
1년 전 어느 날, 앞서서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니 술도 못하는 양반이 직선 길에서 자꾸만 오른쪽으로 한 두 뼘씩 몇 걸음 가다가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순간 눈이 너무 뜨거워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냅다 쫓아가서 손을 잡으며 “무슨 꽃게도 아니고 말이야”.
유일하게 그녀에게 이 고명딸만 할 수 있는 농담이었고,
엄마도 그 농담을 소화하며 꺼이꺼이 웃어주었다.
일을 줄였다. 엄마와 시간을 좀 보내려고.
반대급부로 잃는 게 있지만 조심성 많은 사람이 평소 같지 않게 확신이 들었다.
최근 10년 동안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죽기 전 날까지 깨우침을 잃지 않겠다면서
최소한 더 나빠지지 않으려 애쓰는 게 사람이 아니던가?
90 넘은 노인에게 어째 이리 세심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면서
모녀의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원예치료라는 어르신들 수업을 많이 했지만
엄마랑 노는 것은 아이디어만 있을 뿐 대본 없는 에피소드가 원칙이다.
그 시간들의 기록을 올린 게 콘텐츠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난 내 마음을 적은 글과 함께 영상이 담긴 기록물에 대한 고마움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1년 동안 여러 개의 피드가 올라갔다.
그중 그녀의 손을 잡고 걷는 몇 개의 장면이 있었다.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보기 좋다는 따듯한 피드백을 많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좋아지는 엄마의 표정과는 달리
점점 휘청거리는 걸음에 내 손은 팔까지 힘을 주며 꽉 버텨야 했다.
무릎 속에 있는 기계가 뭐 갑자기 좋아질 것도 아니고
물리적으로 획기적인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어느 날 지난 영상 속 경사진 길을 걷던 엄마의 모습을 되돌려 보고 있었다.
뭔가 간질간질 떠오를 듯 말 듯하다가
아!
나의 꽃집 바로 옆에 유명한 “성심당” 빵집이 있고
그 앞쪽 인도에는 노란 타일로 반듯하게 이어진 길이 있다.
가끔 엄마랑 걸어가곤 했던 길인데, 내가 ‘음주측정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걸음이 휘청이면 바로 티가 나는 그런 길이다.
일부러 양손에 번갈아서 조금 무게가 있는 꽃을 들게 했다.
걸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균형이 어디서 흔들리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보니 딱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가방을 왼손에 들어야 그나마 몸이 수평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여인은 늘 오른손에 가방을 들었다.
예전과 똑같이 더 익숙한 쪽에 힘을 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습관이 균형을 더 무너뜨리고 있었다.
다리 양쪽을 동시에 수술했어야 했다는 거. 이걸 뒤늦게 안 것이 무척 속상하지만,
지금이라도 그 차이를 줄이는 작은 방법들을 알아낸 것은
꽤 괜찮은 발견이라고 반성과 함께 나를 위로한다.
“나도 몰랐던 걸 네가 알아냈네?”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입을 꾹 다문 채, 말이 한동안 없었다.
말보다 표정으로 감동했다는 것을 알았다.
난,“아 김여사 감동하셨나?” 이렇게 거들먹거렸다.
그게 엄마를 더 즐겁게 하니까.
효도 신발만 믿을게 아니란 것도 알았다.
어느새 발 모양까지 변해가고 있어서 요즘은 앞 볼이 넓은 디테일한 디자인을 우선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사소하지만 세심한 관찰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나올 때가 많다는 걸 알았다.
병원 진료보다,
전문가의 한마디보다,
가족의 눈이 먼저 알아채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외출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묻는다.
“가방은 어느 쪽?”
그러면 엄마는
살짝 웃으며 복창하듯 말한다.
“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