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에 약이 있다.
“Long face”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우울하다는 뜻이다.
사전엔 실제 얼굴이 길어지는 건 아니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나는 그게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턱을 툭 떨군 채, 슬픔과 무기력에 잠긴 그 표정을
어르신 대상 원예치료 수업에서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표정이 반복되면 실제로 얼굴이 아래로 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굴도 결국 근육이니까.
그걸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우리 엄마의 얼굴이었다.
80까지 일하고, 두 다리 수술.
그 후 10년은 고명딸 도시락을 챙겨주며
“자식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어서 감사하다”라고 말하던 분이었다.
그 후로도 한 1년을 아팠던 그 딸을 돌보는 순간까지,
인내의 아이콘처럼 씩씩한 척을 이어갔지만~
그 얼굴은 자꾸만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 무심히 흘러가던 삶의 리듬을 멈췄다.
과감히 일을 절반으로 줄이고
“같이 놀자”라고 선언했다.
벌써 1년이 지났다.
92세와 뭘 하며 놀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패션 놀이 핑계를 만들어 옷장을 열었다.
너무 오래된 구닥다리는 좀 치워버리고 싶은 속셈도 있었다.
기다란 셔츠 길이를 잘라 유행하는 크롭 스타일로 입혀 보고
가끔은 내 옷도 입혀가면서 커플룩을 만들어 릴스도 올렸다.
치매 에방을 위해 꽃말 퀴즈 공부도 하고 아주 가끔은 율동 영상도 찍었다.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많아졌다.
옷을 챙겨주는 손끝, 어깨를 감싸는 손바닥.
그 가벼운 접촉들이
조금씩 이 여인을 가볍게, 명랑하게 만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이 과정을 계속 영상으로도 남기고 있다.
이런 것으로 92세 여인과 놀이가 된다는 것도 신기하고
처음과 지금이 얼마나 다른지,
엄마의 표정 변화가 얼마나 선명한지,
나 자신도 놀랄 때가 많다.
그 덕분이다.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우리의 기억은 흐려질 수 있어도,
기록은 표정을 붙잡아두니까.
돌이켜보면 변화의 시작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몇 달 간격으로 찍은 두 개의 넥타이 영상이었다.
같은 넥타이를 매는 장면이건만
두 개의 표정은 확연히 달랐다.
어느 날, 작은 방에 있던 엄마의 서랍장을 열어보게 되었다.
3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넥타이가
단정히 접힌 채 그대로 있었다.
옳거니! 엄마한테 타이 매듭을 알려줘야겠다.
배우는 거 좋아하는 양반이니 엄청 반가워할 줄 알았다.
일단 기록이 될 수 있도록 녹화도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엄마가 도통 웃지를 않아서.
아빠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
애교 섞인 말에도 입꼬리는 굳어 있었다.
그 표정은 놀이가 아니라 숙제에 가까웠다.
참! 우리 엄마 별명이 신중진중 절제대왕이었지~
도덕 선생도 있었고.
그래서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배우는 즐거움’이 아니라
‘가벼워지는 경험’이 먼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반년쯤 지나
다시 찍은 넥타이 영상 속 그녀는 정말 놀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볼엔 연분홍 홍조가 돌았고,
눈동자엔 생기가 감돌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신기하게 얼굴 길이도 짧아졌다. 진짜다.
요즘 사진은 날자와 장소까지 증명을 해주고 있다.
우리는 늘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나는 이제 확실히 안다.
자식의 손길도 부모에게 훌륭한 약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손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약보다 더 깊이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난 내가 스킨테라피 전문가라도 된 듯했다.
내 손끝이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게 새삼 고마웠다.
어쩌면 우리는 다, 타고난 치유 전문가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