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화 꽃집의 시작
2009년, 미국발 모기지 사태로 모든 것을 잃었다. 8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2011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막 대학에 합격한 아들은 입학을 미루고 주 7일을 일했고, 나는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러 ‘여성인력개발센터’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히려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컴퓨터를 거의 다룰 줄 몰랐던 나는, Ctrl+Z도 모르던 시절을 지나 엑셀 자격증까지 따냈다. 그 경험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공부가 끝나면 매일 집 근처를 30분씩 돌아다녔다. 목적을 쫓다 속절없이 인생의 시계가 갑자기 멈춘 지금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난 나에게 2가지를 물었다. ‘나는 지금 인생의 어디쯤 와있나?? 난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매일 두 가지 질문을 하며 나와 대화했다. 누구나 인생의 시간이 한 번쯤 멈추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자신도 모르게 묻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목적 없이 걸으며 또 다른 나만의 길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적성검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뜻밖에 ‘심리상담사’와 ‘플로리스트’가 나에게 맞는 적성으로 나왔다. 어릴 적 꽃을 좋아했지만, 그게 직업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다소 의아했다.
적성검사 결과 때문일까. 우연히 한적한 골목의 오래된 꽃집 옆 빈 가게를 발견했다. 빈 가게를 둘러볼 겸, 이런저런 핑계로 난 꽃집을 드나들었고, 가끔 사장님이 식물 다듬는 일을 도와드리며 친분을 쌓았다.
사장님에게 어느 날 속사정을 들었다. 사장님은 건강 문제로 가게를 정리하고 싶어 했지만, 그간 쌓아 올린 꽃집의 명예를 포기하기 싫어 가게를 유지하는 중이셨다.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진 아무에게나 넘길 생각이 없으셨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난 경험도 자격도 없었지만,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가게를 인수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했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망설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사장님께 인수 의사를 전한 뒤, ‘혹시 내가 너무 무모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며칠 뒤, 사장님께서 미션 하나를 내주셨다. 일종의 자격시험이랄까.
“이틀 뒤 인근 대학교 교수 식당에 납품할 꽃병 6개를 직접 만들어보시겠어요? 만약 납품한 뒤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인수도 없던 일이 될 겁니다.”
온몸이 털이 곧추선 채로 난 곧장 작업에 임했다. 이틀 뒤 꽃병 6개를 무사히 납품했고 사장님의 테스트도 통과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이번엔 꼭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언제나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떨림조차도 내 성장의 일부였다. 꽃병을 납품한 그 대학교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단골 거래처로 남아 있다.
그렇게 사장님의 테스트를 통과한 나는 본격적인 가게 인수 작업에 돌입했다. 큰아이와 둘째가 깨준 적금, 지인에게 빌린 돈으로 보증금을 마련했다. 사업자 등록과 소상공인 대출까지 일주일 만에 마무리하며, 나는 무모하게 꽃집을 열었다. 모리화 꽃집의 시작이었다.
당시 난 1년 후 아들을 다시 미국 대학에 입학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고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뿐 아니라 새로운 일에 대한 희망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부담감, 절박함, 희망이 동시에 합쳐져 무모한 도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무모함이야 말로 살아가는 데 엄청난 무기가 된다는 것을 이때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가게를 인수하자마자 매일이 걱정이었다. ‘손님이 오지 않으면 어쩌지’, ‘내 선택이 틀린 건 아닐까’ 불안한 생각이 매일 나를 괴롭혔다. 가끔 정말로 손님이 없는 날엔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마련한 가게인데 말인가. 내겐 걱정도 사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꽃 냉장고의 위치를 가운데로 옮겼다. 손님이 들어와 매장을 한 바퀴 주욱 둘러볼 수 있도록 동선을 정비했다. 그 동선에 맞게 꽃과 식물을 배치했다. 가게 전면 유리창에 날마다 변화를 주었다. 마치 계절의 바뀜을 가장 먼저 알리는 쇼윈도처럼 연출했다.
그렇게 변화를 주면서 깨달았다. 작은 변화를 고민하는 일상이 하루의 활력이 된다는 것을. 어쩌면 행복은 거창한 성취보다, 이런 사소한 순간에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이 가게를 단순히 매출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매출보단 매일 1%라도 성장하는 가게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가게 안쪽에 손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나만의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집에서 긴 테이블을 가져와 나만의 연구소를 만들었다. 디자인을 고민하고, 꽃을 만들고, 소품을 제작하며 식물을 공부했다. 자격증도 땄다.
나만의 연구소는 영감이 샘솟는 서랍장이 되었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습장이 되었으며, 지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안식처로 바뀌었다. 매장을 채운 식물과 꽃, 내가 만든 소품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나를, 내 감각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하루를 마치고 가게 불을 끌 때면,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안도감에 스스로를 다독였다.
가게를 인수한 지 1년 뒤, 방문하는 손님들을 통해 남다른 안목의 꽃집이라며, 점차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카페를 하는 사장님들이 자신의 카페에 어울리는 식물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고 꽃으로 장식하는 인테리어 제안을 받기도 했다. 상업공간에 어울리는 식물을 추천해 달라는 플랜테리어 요청도 들어왔다. 공간 구성과 동선, 분위기까지 함께 고민하며 제안하는 귀한 작업도 하게 됐다.
이때 작업으로 난 꽃과 식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공간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점점 더 많은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시작했다. 급기야 서울 상왕십리에서 시작한 페인트 커피와는 2호점, 3호점까지 파트너로 함께 작업했고, 을지로의 핫플레이스가 된 2호점부터는 초반 인테리어 설계부터 참여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덜컥,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결코 내 인생에선 없었을 일이다. 이런 일을 해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나였으니까.
그렇게 어느덧 13년 차가 되었다. 낡은 슬라브 건물, 커다란 유리창에 유달리 환하게 아침 햇살이 드리운다. 오늘도 난 13평의 나만의 공간에서 나라는 사람의 가능성과 감각, 그리고 지난 시간의 노력을 증명하며 살고 있다. 이곳은 꽃을 파는 공간을 넘어 관계와 기억이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내 방식대로 이 작은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피워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