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드 플로리스트의 탄생

꽃집에 남자 팬이 생겨난 비결

by 모리화

“사장님, 여자 친구한테 잘못한 게 있는데요, 혹시 '용서'라는 꽃말의 꽃이 있을까요?”
“보험계약을 해야 하는데 아직은 미지수예요.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도움 되는 꽃이 있을까요? 너무 크진 않게요.”


꽃집 ‘모리화’를 시작한 지 7년쯤 지났을 때였다, 부쩍, 아니 점점 남자 손님들이 자주 꽃집을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는 사례가 많아졌다. 여자 친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 케이스, 고객 영업을 따야 하는 케이스, 사랑 고백을 해야 하는 케이스. 손님들은 꽃을 선물해야 하는 다양한 이유를 들고 내게 찾아왔다. 난 그들에게 성심을 다해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도 그랬다. 진수 과장님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큰일 났어요. 사실, 사고를 쳤어요. 여자 친구가 임신을 했고, 장모님이 급히 오라는 호출이 떨어졌어요. 사실 여자 친구 나이가 너무 어려서 걱정이에요. 지금 긴장돼 죽겠어요. 장모님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게 할 수 있는 꽃, 있을까요? 제발 도와주세요.”


난 고민 끝에 장모님께 드릴 꽃병을 추천했다. 꽃병을 추천한 이유는 예비 장모님이 예민한 상태가 예상되어서다. 누구보다 예비 장모님의 마음은 전쟁터 같을 터. 만약 꽃다발을 주면 바닥에 버릴 확률도 있고, 꽃을 보고 조금 기분이 풀어져 받아 든다 해도 꽃병을 찾고, 포장을 벗기고, 물을 따르고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오히려 성가셔 다시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파스텔 계열로 분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의 꽃이 담긴 병제품을 추천한 것이다. 꽃병은 받자마자 그냥 올려 두기만 하면 되니까.


내 말을 듣고 진수 과장님의 얼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꽃집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울 것 같았던 표정에서 안도의 표정으로. 그는 내게 역시 사장님이시라며 나를 믿는 눈치였다.

“그럼 꽃과 어울리는 선물은 뭐가 좋을까요?”


진수 과장의 후속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인삼 세트를 추천했다, 무난하면서도 격식과 고급스러움을 갖췄으니 첫 선물로 안성맞춤이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기회일 수 있으니 선물의 크기나 가격보다 더 중요한 진심이 어느 정도 전해져야 했기에. 나는 어느새 예비 장모님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


“혹시 너무 약하지 않을까요?”

당연한 걱정이다. 나도 확신은 없다. 그러나 나 또한 3남매를 키운 엄마이기에 본능적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예비 장모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꽃과 선물을 받는다고 마음이 풀어질 리는 없다. 무엇보다 난생처음 임신한 딸에 대한 걱정, 엄마가 되는 고단함에 대한 걱정을 덜어드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과 선물은 어지러운 감정을 잠시나마 달래주는 일시적인 수단일 뿐, 정말 중요한 건 진심밖에 없다. 꽃과 선물을 들고 예비 장모님께 가서 솔직하게 대화를 해보라고 충언했다.


두 달 뒤, 진수 과장님이 꽃처럼 환한 표정으로 모리화 꽃집의 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내게 청첩장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순서가 조금 바뀌었지만 이제 결혼하게 되었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또 몇 개월 뒤, 진수 과장님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아이를 안고 있는 부부의 사진으로 바뀌어 있었다.


꽃을 파는 일은 고객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고객의 마음의 갈피를 읽어야 꽃이 팔린다. 잘 들어야 팔 수 있는 신비로운 일이다. 진수 과장님과의 숨 가쁘게 오갔던 대화들이, 결국 꽃처럼 피어난 것처럼.


나는 꽃다발을 만들어놓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맞춤형으로 꽃을 만든다. 왜냐하면, 만들어놓은 꽃다발은 보기에 좋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이유가 다르고, 감정이 다르다니까.

내가 ‘큐피드 플로리스트’라는 별명을 얻게 된 건, 꽃을 먼저 팔지 않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꽃을 팔기 이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최대한 손님의 니즈(Needs)에 답변하기 위한 노력이 먼저니까. 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이고 신뢰가 쌓이고 관계도 깊어지니까.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그게 단골을 만들기 위한 마케팅 전략 아니냐고. 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글쎄, 만약 그게 마케팅이었다면 이미 가게는 문을 닫았을 거라고. 모리화 꽃집을 처음 열었던 절박함과 간절함처럼 매일 내 삶처럼 손님을 대할 뿐이라고. 찾아온 이 한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나의 방식이고, 나의 마음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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