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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 Apr 24. 2023

아빠를 부탁해 (수상록)

동서문학상 수필 가작 2016년

 아빠를 부탁해

1년 전, 내가 관심 있게 본 방송 프로그램이‘아빠를 부탁해’라는 예능 방송이다. 누구나 다 알만 한 중년의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딸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그 방송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내가 방송 날짜를 기다리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열혈 시청자가 된 데는 아마도 아버지가 지금 내 곁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나는 절대 그 방송을 시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빠! 아버지! 누군가의 또 다른 이름,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흔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버지를 ‘아빠’ 혹은 ‘아버지’라고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 입에서 ‘아버지’란 단어를 꺼내기조차 힘들었던, 아버지를 몹시도 증오하던 딸이었다.


 아버지는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태어날 때부터 ‘배려’가 뭔지 모르는, 오로지 당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무조건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야 했고, 가족들이 그 룰을 어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남매가 성장하는 동안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었던 아버지는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폭력성을 가진 사나운 아버지와 다를 게 없는, 내게는 늘 무서운 존재였다. 어떤 아버지는 평소엔 자상하다가도 술만 먹으면 무서운 호랑이처럼 변한다고 했지만, 나의 아버지는 맨 정신으로 화가 나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여 엄마든 자식이든 가릴 것 없이 폭력과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은커녕, 내게는 늘 무서운 사람, ‘아버지’라는 가면을 쓴 낯선 아저씨였다. 언젠가는 아버지 곁을 떠날 것이라는 목표 하나만 갖고 성장해왔다. 그것이 나를 지키고 엄마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깐.


 가족과 남들에게 성품으로는 인정받지 못했어도 아버지에게 유일한 능력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영업’능력이었다. 전자제품을 판매하면서 판매 왕을 여러 번 했고, 그 덕에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그 돈은 가족을 위한 돈이 아닌 아버지 당신을 위한 돈이었다. 밖에서 버는 돈을 가족을 위해서 쓰기보다는 자신을 위해서만 썼다. 전기가 끊기고, 생활비가 모자라 엄마가 이 집, 저 집에 아쉬운 소리를 하며 돈을 빌려도 아버지는 나 몰라라 했다. 가끔씩 던져주는 돈이 전부였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눈물은 마르질 않았고, 엄마 눈물이 곧 내 가슴에 떨어져 나의 증오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가 일찍 죽었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도망가고 싶지만, 도망가지 못한 것에 길들여진 엄마. 그것을 방치하는 가족. 누구 하나 그 덫을 치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덫을 건드리는 순간, 아버지만 살고 모두가 죽을 것 같아 두려웠으니깐.

 그렇게 34년을 한 집에서 살았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다보니 어려서부터 부모 도움 없이 커야 한다는 강박에 우리 사남매는 모든 걸, 스스로 벌고 스스로 입고 스스로 먹어야했다. 언니와 남동생은 없는 형편에 스스로 번 돈으로 시집, 장가를 갔을 정도이니 같은 남매이지만, 혼자 자신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누가 누굴 도와주고 베풀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하나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같은 한 집에서 살고는 있지만, 실상은 따로 사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한 사람 때문에 다섯 사람이 고통을 받는다면, 그 한 사람인 아버지를 버려도 너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주변의 얘기를 들으면 아버지를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집밖에서는 그저 평범한 집안의 둘째 딸로 누가 봐도 밝고 명랑하여 문제 없이 사는 듯 보였을 테지만, 집만 들어오면 숨이 막혔고, 어떻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세상에서 빨리 사라질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만 하고 살아온 나의 지난날을 생각하면, 한참 아름답게 꽃피우고 더 높은 곳을 날 수 있는 청춘을 차압당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나의 소중한 10대, 20대, 30대를 모조리 어둠속으로 끌고 가게 만든 나쁜 사람.

 스무 살이 되자마자 자식들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는 그 빚까지 떠안아 다 갚게 만들어놓고는, 한 번도 미안하다 소리를 하지 않았던 아버지라는 사람을 어찌 하여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날까지도 아버지가 사라지길 바라던 나였다. 아버지의 숨소리마저 듣기 싫어 일요일이면 약속도 없는데 밖에 나가 방황하던 나였다. 돈을 벌면 모을 줄 모르고 쓰기만 하던 아버지가 모든 걸 서서히 잃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따뜻한 아버지를 연기하는 낯선 사람이 되는 것에 소름이 끼치던 나였다. 자식이 무언가를 맛있게 먹으면 그걸 보는 부모는 그것만큼 행복한 게 없다는데 오히려 새끼 입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자신의 간식거리를 따로 숨겨놓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언제부턴가 간식을 사와 머리맡에 놓고 가는 걸 보면 잠든 척했다가 그 다음날 쓰레기통에 버린 나였다. 그랬던 나였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오는 책은 아예 덮었고, 아버지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나였다. 그렇게 싫은 아버지가 예고도 없이 사라졌다. 어쩌면 내 바람이 빨리 이루어진 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아버지를 피해 여전히 방황하던 일요일이기도 했다. 오늘은 또 어디를 돌아다닐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간 서울. 아지트처럼 좋아하는, 가끔 가는 커피집에서 나만의 탈출 여행에 만끽하고 있었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기분이 좋았던 날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달래고 내려오는 길에서 아버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다.

 교통사고였다. 아버지는 무단횡단을 했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라는 말에 나는 왜 갑자기 다정해진 아빠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던 것인지. 그 전날 밤, 머리맡에 두고 간 찹쌀떡이 왜 자꾸만 쓰레기통에서 정지된 화면이 떠오르는 것인지. 먹기 싫어 바로 버린 그 쓰레기통 말이다. 마지막 아버지를 본 날, 아버지가 전화 한 통만 쓰자는 말에 짜증을 부리며 전화기를 주던 장면이 왜 자꾸만 반복되어 재생되는 건지. 그리고 왜 눈물이 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34년 간 부르지 못했던 아빠라는 이름을 장례식장에서 처음 부르는 나 역시 그런 딸이었구나.


 목소리만 들어도 두려워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나는, 아버지의 입관식에서 아버지를 처음,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예쁜 눈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몰랐고, 그렇게 잘생긴 얼굴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뭐가 그리 가는 길이 근심이 돼, 걱정하는 얼굴로 잠드셨을까. 순간,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미음, 증오 그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아니 그 모든 감정이 연민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가져간 거였구나. 세상과 이별하는 동시에 나의 가슴에 쌓아둔 34년의 미움을 같이 가져갔던 거였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편은 더욱 안 좋아졌다. 이제는 혼자 남은 엄마를 지켜야 하고, 열한 살 차이나는 남동생을 돌봐야 하는 실질적 가장이 되었다. 아버지가 남긴 수많은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 상속포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 아버지를 더 원망하고 화가 날 수도 있었겠지만, 2년이 지난 지금은 미운 마음보다는 계속 가엾고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된 아버지도 어린 시절에 뭔가 이유가 있겠지. 자꾸만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다시 걸어가고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건 아버지와 내가 화해할 기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걸 다 잃었을 때, 무언가를 손에 쥐게 되는 것 같다. 아버지는 그것을 내게 주고 갔다. 아버지라는 이름.


아버지가 사라지길 바랐던 무섭고 못된 내 마음에 또 하나의 바람이 생겼다. 하늘에게 조용히 말해본다. 문득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에게 살짝살짝 고개를 들어 사과한다. 미안해요.

 그러고는 하늘에게 기도한다.

아빠를 부탁해!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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