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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Jan 14. 2019

덴마크에서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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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우는 날의 연속이다. 떠난 당신 앞에서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꿈속에서 당신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기도, 귀찮다는 듯이 무시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나와 함께 울어주었다.

울다 지쳐 꿈에서 깨면 햇빛이 들지 않는 덴마크의 겨울 아침이었다.


어제 Zealand 남쪽에 있는 MØN(묀섬)으로 왔다. 

위키피디아에서는 하얀 절벽이 유명한 섬이라고 했다. 걸어서 2시간이면 섬 전체를 한 바뀌 돌 수 있을 것 같아 늦은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왔다. 덴마크답게 비는 사방으로 내렸고 점퍼의 모자는 바닷바람에 자꾸만 넘어갔다. 하얀 절벽은 구경하지도 못 한 채 낯선 동네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강한 비바람에 점퍼 모자를 두 손으로 붙잡고 걸으면서도 당신이 나의 편지를 받았을까 궁금했다. 

내가 아는 당신은 그 편지를 읽지도 못한 채 곧장 갈색 책상 서랍에  넣었을 것이다. 당신이 이미 나와의 물건들을 정리했다면, 아마 내가 선물한 파란색 박스에 넣어 놓았을 테지. 그 박스에 얼마나 많은 우리의 시간이 포개어있을까 생각하니 눈 앞이 뿌애졌다. 조금 더 일찍 보내졌어야 하는 편지였다. 편지가 한국으로 가는 동안 당신은 나와의 이별을 결심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낯선 곳에서 일상을 헤쳐나가는 건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느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지, 냉장고 속 음식은 먹어도 되는 건지, 현관문은 어떻게 열고 들어오는지, 영어로 물어볼 것은 너무나 많았는데 누군가에게 말을 걸 힘조차 나지 않았다. 덴마크인들은 조금이라도 햇빛을 더  받기 위해 최대한 크고 투명한 창문을 달았다. 길을 걷다 창문 넘어 자신의 공간에서 편하게 음식을 만들고,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선명하게 보일 때마다 나는 외로웠다. 


아까 늦은 점심으로 건조한 빵과 치즈를 먹었다. 나에게는 향이 너무 강하지만 당신은 좋아할 향이네,

라고 생각해 버렸다. 방에 들어와 글을 쓰는 데 잠시 햇빛이 들었다. 창밖을 내다보는 데 당신이 좋아할 주황과 빨강 사이 색 벽 위로 햇빛이 비쳤다. 당신이 봤으면 좋아했을 거라고 또 생각해버렸다. 당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만난 일본인 할머니, 곧 네덜란드에 올 Y, 다음 직장을 고민하는 J. 정신없이 편지를 쓰다가 이 편지들을 브런치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참 오랜만이었다. 조금 들뜬 마음으로 매거진을 만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다 쓸 때까지만이라도 이 곳에서 버텨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번  편지들은 너무 늦지 않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 당신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되길 바라며 , 19.01.13  묀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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