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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Apr 14. 2019

딸은 엄마가 나아간 바로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꿈을

친애하고, 친애하는 백수린 작가 


엄마에게.
 이 네 글자를 적은 뒤 다음에 쓸 말을 고르느라 머뭇거려본 이들을 위한 소설이다
- 신샛별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그동안 이 블로그에는 아빠가 자주 등장했다. 내가 페미니스트로 정체화 한 뒤 발견한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면모, 무례함, 소통의 불가능성에 나는 화가 났고 슬펐고 또한 지쳤다.  덴마크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한 번도 아빠와 통화를 한 적이 없고, 아빠 또한 나와할 이야기가 없다는 말로 상황을 개선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의 엄마는?  


엄마를 떠올리면 모순된 감정들이 뒤엉킨다. 고맙지만 부담스럽고, 연민하지만 동경한다. 

덴마크에 와서 처음으로 엄마와 정서적으로 떨어져 있었다. 나의 일상을 세밀하게 살피던 엄마가 없자 나는 혼란스러웠고, 생각보다 더 자유로웠다. 아빠에게는 화가 났지만 엄마에게는 의지와 동시에 큰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이곳에 와서야 깨달았다.  


나는 한 번도 엄마와 나의 삶을 연결시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는 부자관계 서사에 나 자신을 대입하는데 익숙했다. 가난으로 인해 원하던 교육을 받지 못한 자신들의 한을 풀기 위해 자식만은 열심히 교육시키고자 했던 아버지. 자식의 성취가 곧 자신의 성취가 되는 아버지. 2000년대 초 한국 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나온 이 서사가,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다  아 역시나 아빠에 대해서는 쓸 말이 너무도 많다.   


반면에, 세상의 모녀 관계서 사과 내 엄마의 이야기는 달랐다. 

드라마를 보면 보통 엄마들은 자식을 위해 희생하거나, 자식의 성공을 욕망하거나, 너무 촌스러워서 자식에게 무시받던데. 나의 엄마는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그 유명한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10대, 20대를 보낸 사람이다. 여전히  00 배우 닮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엄마는 대학시절 압구정에 있는 온갖 나이트클럽에서  많은 남자를 만난, 나보다 더 세련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나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엄마는 그게 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빠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던 것 같다. 아빠가 엄마를 챙기듯이 나 또한 엄마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많은 것을 털어놓았고, 나는 가끔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엄마가 자식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순간,  맏딸인 나에게는 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난 거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아빠가 나에게 ‘나는 예쁜 자식 낳으려고 너네 엄마랑 결혼했는데 너는 하필 나를 닮아서 그렇게 생겼냐”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그저 나는 엄마가 부러웠고, 또 부러웠다.  

 

어렵게 백수린 작가의 신작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구해 읽었다. 3세대에 걸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 삶이 얼마나 나의 위 세대 여성들과 연결되어 있었는지 깨달았다. 


나의 외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할머니가 16살 때, 북에서 온 남자가 할머니 댁에 하숙을 쳤다. 남자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남은 친척들은 북에 있다고 했다. 나의 증조할머니는 할머니가 몸이 아파 시댁살이를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시댁이 먼 그 남자에게 결혼시켰다. 한국전쟁이 났고 남자는 평생 남한에서 나의 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된다. 엄마가 어릴 때 설날, 추석이면 가족 5명이 여행을 갔다. 당시에는 명절에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어서 여행지를 가면 항상 텅텅 비어있었다고 한다. 


나의 증조할머니의 셈대로 할머니는 동시대 한평생 시댁에 얽매인 동시대 여성들보다는 자유로웠지만, 남편의 알코올 중독과 외도를 견뎌내야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사랑했다고 한다. 냉장고 문 한번 자기 손으로 열어본 적 없고, 술에 취해 3-4일을 안 들어와 찾아다녀야 했던 그 남자를.


 할아버지가 군인이어서 엄마의 가족은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할머니가 집을 알아보고, 이삿짐을 꾸리고, 이사를 하는 모든 과정을 혼자 도맡아 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사 과정 내내 눈길 한 번 주지 않다가, 이사가 다 끝나고 집이 정리되면 그때야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는 강한 만큼 할아버지는 무책임했다. 이건 이후의 이야기지만, 그 남자는 아주 이른 50살이라는 아주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 된다. 얼마 전 할머니는 자신이 결혼했었다는 사실도 잊힌다며 슬퍼했지만 카바레를 다니며 즐겁게 남은 생을 보내시고 있다. 


 내향적이고 소심한 엄마에게 잦은 이사는 늘 힘들었다. 엄마는 할머니보다는 할아버지를 닮았는데,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엄마를 많이 답답해했다고 한다. 손이 느리다고, 생활력이 없다고 엄마를 타박했다.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바로 손바닥이 날아왔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로웠던 엄마는 대학에 가서 많은 남자를 만난다.

20대의 엄마는 아니 에르노와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사람이었다. (우리 집은 아니 에르의 단순한 열정 한국어판 초판이 있는 집이다.)  할머니에게 벗어나고 싶었던 엄마가 세웠던 원칙은 하나 - 자신을 통제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래서 아빠를 만났다고?'  나는 이해가 안돼서 반문하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그 시대 다른 남자들에 비해서 아빠가 얼마나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알았던 사람인지 억울하게 항변했다.


엄마의 기대와 다르게 결혼 후 아빠는 집에 잘 안 들어 올뿐만 아니라 나의 기저귀를 갈아 준 적도 없었는데, 직장을 관두고 홀로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면서 엄마는 많이 슬펐다. 하지만 엄마는 작은 고집들을 실행했다. 나의 이름을 지을 때 시댁은 돌림자 사용을 원했는데, 엄마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마지막 글자는 자신이 짓겠다고 공표했다. 지금 나의 이름은 누가 들으면 남자라고 자주 착각하는 이름이다.  어릴 적 나는 핑크 공주옷을 입은 적이 없다. 사직 속 나는 파랑, 노랑, 초록색의 옷을 입은 채 웃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 

엄마는 할머니에게 받지 못한 따듯함을 나에게 주고자 했고, 나는 그 따듯함을 바탕으로 자랐다. 친구가 없던 엄마에게 나는 좋은 친구였고 - 그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는 건 얼마 전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와 엄마와는 다른 삶의 만족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할머니와 엄마가 '이만하면 되었지'라고 생각했던 지점에 '왜 그 정도에 만족해야 하죠?'라고 질문을 던진다. 엄마는 내가 너무 지치지 않았으면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덴마크에 간다는 소식을 알리자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그래 많은 것을 보고 많이 느끼는게 좋지" 


 동시에 만약 나의 할머니가 내디뎠던 자유가 그만큼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엄마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보여주었던 자유보다 엄마는 더 나아가고 싶어 했고, 나 또한 우리 엄마가 살아왔던 삶 이상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게 내가 한국이 아닌 어딘가를 계속 떠도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할머니-엄마-나 세대를 유전해 내려올수록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염원하고 또 몸소 실현해 보이기를 주저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로 읽혀야 한다. 이렇게 읽을 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자유의 가능성을 낳는다는 말과 같아질 수 있다. '자유'라는 추상을 향한 여성의 이어달리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이 소설은 마치 바통처럼, 다음 세대의 여성에게 전달돼야 할 친애의 작은 역사로 남을 것이다. - 신샛별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중에서  


 나는 여전히 나의 엄마를, 나의 엄마의 엄마를 잘 모르겠다. 그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고 아마 그들 또한 자신과 위세대를 연결해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엄마에게'라는 이 네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한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나? 사랑하나? 미워하나? 아니 이런 단순한 감정들로 설명이 되는 사이일까. 책의 표지를 만진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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