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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릴 Apr 20. 2019

동생을 이해하는 일

1. 


지금 내 앞에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 2003년 11월 16일이라는 노란 글씨가 오른쪽 끝에 박혀 있는 사진.  11살의 나는 빨간 잠바를 입은 동생을 껴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동생은 왼쪽 앞니가 빠져서 조금은 멍청해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이빨이 빠졌던 날이 선명히 기억난다. 


내와 같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다니던 나보다 4살 어린 동생이 어느 날 4-3반 뒷문에 나타났다. 

“언니 나 놀다가 이빨 빠져떠” 

놀란 얼굴의 동생을 보고 나는 더 당황해  그럼 양호실을 가야지 왜 여기 왔냐고 화를 냈다. 혼이 나 풀이 죽은 동생을 데리고 양호실에 갔더니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잘 빠졌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다. 


2. 


 나는 그 장면을 생각할 때면 슬퍼졌는데, 그때  이게 뭐야 푸하하 웃으며 동생을 반겨주었으면, 놀란 동생을 먼저 달래고 그 작은 앞니를 가지고 같이 양호실을 갔으면,  

우리의 그 뒤 10년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나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나와 동생은 그 후 매우 다른 삶의 궤도를 걸었다. 나와 동생은 친한 친구들과 취향 같이 작은 것부터 삶을 좌지우지할 성 정체성까지 달랐고 대학교 3학년까지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운동에 푹 빠져서 맨날 다리를 다쳐오는 동생, 나와 연애 학교 이야기 등을 전혀 공유하지 않는 동생. 마트 옥상에서 학교 선배에게 맞아 경찰서에 간 내 동생. 나는 나의 동생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3. 


 내가 살면서 용서하지 않을 유일한 사람은 그때 동생의 사건을 맡은 경찰관. 

그는 “맞은 애나 때린 애나 똑같다' 고 나의 아빠 앞에서 말했다. 


나는 그토록 잔인하고 쉬운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나조차 내 동생은 그 애들이랑 다를 바 없는 거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그 인간에게 아직도 화가 난다. 그는 사회의 아이들을 지키는 어른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어차피 맞은 애나 때린 애나 같으니까 적당히 합의하고 가시라는, 책임감도 없고 아주 못된 어른.


4. 


 나중에 동생에게 처음으로 동생 삶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동생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나는 며칠 내내 울었다. 동생이 초등학교 때부터 술을 마셨다는 사실, 나와 같은 방을 썼던 시절 내가 잠들기를 기다려서 했던 행동들, 그리고 이 글에서 차마 밝힐 수 없는 이야기들 까지. 


어떻게 평생을 같이 산 사람을 이토록 모를 수 있나. 이게 말이 되나. 그리고 내가 그동안 동생에게 건넸던 가벼운 말들이 동생에게는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가왔을지 암담해졌다. 5월의 봄날 나는 연희동 놀이터 그네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맴돌다 결국 또 울어버렸다. 


5. 


동생의 일을 겪으면서 나는 한 사람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잘 알아서 받아들이다 라는 이해하다는 단어에 근접하기 위해, 내가 동생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려 본다. 집에 돌아오면 그냥  옷 입은 채로 소파에 눕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매운 것을 먹으면 꼭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고 참 죠스 떡볶이는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 본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그 이외에도 요즘에는  사랑, 우정, 진로와 같은 이야기들도 하지만, 그게 동생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하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한다고 믿었던 사람이 나를 떠난 방식을 보면 누군가를 공부하고 받아들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도. 


6. 


동생에게, 동생에게- 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고 싶다. 하지만 동생은 과거 기억을 들추는 행위를 싫어하고, 감상적인 건 더 싫어하니까. 나는 그저 동생의 전화를 잘 받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렇게 옆에서 바라보는 게 전부 일 것 같다. 늘 조금 더 나아가 '지켜주고' 싶지만, 이 마음을 내비치면 동생인 '언니 인생이나 더 잘살아'라고 말할 테니. 역시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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