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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Bananas!

바나나의 의미

by 모리박

바나나는 뭘까?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전시에서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음으로써 예술을 풍자적으로 표현하였고, 앤디워홀의 바나나가 예술의 아이콘이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유명하다. 영어에서 It's Bananas!라는 표현은 "미쳤다!" "대박이다!"라는 말로 쓰인다.


그림작가로 활동을 하다 보면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감은 "귀엽다", "슬프다" 정도가 있다. 그림을 보고 귀엽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뒤에 포레의 이야기를 들은 후엔 슬프다는 소감이 따른다. 나는 항상 조금 더 과한 리액션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림은 다른 어떠한 예술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탓에 "미쳤다"라는 어떠한 기술적 경지로부터 오는 감탄사를 듣기란 쉽지 않은 예술이다. 예를 들어, 조성진 같은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는 기술이 뛰어나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것 같이 들릴 때 우린 It's bananas!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김연아 같은 피겨스케이터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기술과 연기를 빙판 위에서 펼칠 때도 마찬가지이며, 가수가 완벽한 노래나 퍼포먼스를 해낼 때도 그렇다.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예술과 달리 미술은 정적이기에 비슷한 반응을 끌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미술을 재미없다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을 수 있다.


미술작품을 보고 It's bananas!라는 감탄사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가 또 있다. 다른 예체능과 달리 미술은 훌륭한 작품에 대한 기준이 기술연마에만 있지 않기에 그렇다. 캔버스 가운데 점 하나만 찍어도 수억을 호가하는 (이우환, 루치오 폰타나,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등)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미술이 갖고 있는 별난 특성이다. 초등학생이 그린 것 같은 그림이 수십억 원에 매매되는 걸 보고 "그럴만하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이상한 거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을 비판할 것은 아니다. 미술은 분명히 어렵고, 그래서 그저 보고 놀랄 수 있는 타 예술과 달리 작품을 즐길 줄 아는 눈과 마음을 갖춘 사람을 위한 것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쉬운 길을 택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추상예술이 가장 돈이 된다는 건 이 업게에서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나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사람들이 보고 직관적으로 "귀엽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그림이 좋았고, 그래서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평생 작품을 통해 It's bananas!라는 감탄사는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괜찮다. 사람들이 포레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유기동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언제나 이해받지 못하는 영역에 있기보단 이해 가능한 영역 안에 존재하고 싶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학대당하고 유기된 당사자인 포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10년, 20년, 계속해서 포레가 은은하게 사람들 곁에 계속해서 존재한다면 언젠가 It's donut! 이란 표현이 가능할 수도 있을까? (도넛은 입이 철사에 꽁꽁 묶여 학대당한 포레가 가진 동그란 상처를 달콤한 도넛으로 표현한 것으로, It's donut! 이 무엇을 뜻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럼 그땐 또 대체 그게 뭐냐며 나의 그림을 보면서 예술은 어렵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도 있겠다. 예술은, 아니- 미술은 어렵지만 나는 그저 여전히 이해받고 싶어 하는 인간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 다 그러하지 않은가. 지금은 It's bananas! 와 같은 감탄사보단 누군가가 보내는 따뜻한 이해의 눈빛이 절실한 세상이니까.




Untitled_Artwork 30.jpg


진정해, 미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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