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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펫크리에이터 모리 Feb 19. 2019

뉴욕 가정집 방문기, 생쥐와 아이들

집인 척하는 동물원을 보았다

Rat(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쥐가 별명이라니,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독자분들이 계실 것도 같은데요, 그저 속뜻 없이 귀여운 의미로 부르는 별명입니다. Rat의 본명은 그레이슨으로, 저와는 2년 전부터 촬영을 하며 알고 지낸 뉴욕 친구입니다. 집에 동물들을 많이 키운다는 그레슨의 말에 항상, "한번 놀러 갈게!" 하면서도 롱아일랜드라는, 맨해튼에서 꽤나 먼 거리에 위치한 그레이슨의 집은 맨해튼을 잘 벗어나지 않는 제게 선뜻 방문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는데요.


음.. 일단 버디라는 개가 한 마리 있고, 새랑 도마뱀, 그리고 개구리도 두 마리 있어!


키우는 동물들을 줄줄이 나열하는 그레이슨의 모습은 제 망설임을 단번에 녹여버렸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뉴욕에서도 강아지와 고양이 외에 여러 동물들을 키우는 친구를 만나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냥 도마뱀이나 개구리, 혹은 새를 키우는 것도 흔치 않은데, 이 모두를 기르고 있다는 그레이슨의 말은 그래서 더 신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어요. "세상에, 그 많은 동물들을 다 키운단 말이야? 다음 주에 당장 들릴게!(하하)"



맨해튼과 너무 다른 롱아일랜드의 모습이 너무 신기해 가는 내내 영상도 남겨놓았다_New York. 2018. Digital


지하철을 타고, 기차로 갈아타며 롱아일랜드로 향하는 길은 내내 설레기도 했지만 길치인 저에겐 여간 험난한 여정이 아녔습니다. 가면서 어느 길에서는 조금 껄렁거려 보이는 흑인들이 많아 그냥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롱아일랜드는 맨해튼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아기자기한 낭만을 갖고 있는 곳이었는데요.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선 맨해튼과는 다르게, 예쁜 주택들이 줄지어 늘어선 롱아일랜드의 모습은 마치 게임 속 심즈 마을을 그대로 현실에 갖다 놓은 것 만 같았습니다. 


“띵동”

“왈왈!” “버디! 이리 와”


문이 열린 그레이슨의 집에서 강아지 버디가 폴짝 뛰어나왔습니다. 울타리가 없는 잔디밭으로 뛰어나가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어머 어떻게! 도망간다!” 라며 제가 당황했는데요. 그레이슨은 그런 버디를 보며, “괜찮아, 한 바퀴 뛰어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거야.” 라며 웃었습니다.


코스모와 놀고 싶은 버디. 그런 버디가 그저 귀찮은 코스모_New York. 2018. Digital


집안에 들어가자마자 어딘가에서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뒤따라 들어오는 버디와 함께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보니 볼이 발그레한 하얀 앵무새가 있는 새장이 보였습니다. 새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아마 코스모는 나이가 많아서 촬영을 귀찮아할 거야." 라며 그레이슨이 제게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역시나 그레이슨의 말대로 촬영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레이슨의 어깨 위에서 잠깐의 얌전했던 시간을 빼면, 코스모는 촬영 내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 결국엔 제가 촬영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촬영 중도 포기는 제 사진인생 통틀어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후에 촬영한 필름을 현상하고 보니, 사진 속 하얀 피사체가 도대체 새인지 유령의 형상인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너무 흔들려서 결국 대부분의 필름은 쓰레기통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날 촬영한 영상 덕분에 여러분께 위의 영상 캡처 사진이라도 보여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영상은 본편 하단 링크 참조.)


동작그만의 정석_New York. 2018. Film


위층에 다른 동물들이 있다기에 버디와 저, 그레이슨 모두 이층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파충류들의 집으로 가득 찬 그레이슨의 방은 그야말로 식물원이 따로 없었습니다. “도마뱀 먼저 꺼내 줄게!” 큰 수족관 같은 곳에 진열되어있는 각종 모형 돌과 식물들 사이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도마뱀을 그레이슨이 조심스레 꺼내어 바닥에 올려놓았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저는 파충류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정지 자세를 하고 있는 황색의 도마뱀을 보고 있자니 처음엔 당장 일어나 멀리 떨어지고 싶은 생각이 정말 간절했었어요. 그런데 "볼매"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걸까요. 한발 한 발을 살포시 들어가며 앞으로 조심스레 이동하는, 머리 위에 눈사람 인형을 놓아도 곧은 자세를 꼿꼿이 유지하는 도마뱀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자니 문득 이 동물도 참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음을 다잡고 촬영 뒤엔 손가락을 뻗어 머리를 살며시 쓸어보기도 했습니다. 


촬영 잘해줘서 고마워.


개구리의 색이 너무나 선명해 마치 CG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_New York. 2018. Film



마지막 촬영 모델인 개구리들을 찍기 위해 이번엔 개구리집으로 몸을 돌렸습니다."개구리들은 뛰어다니니까 한 마리만 일단 꺼내볼게. 통 안에서 꺼내자마자 팔딱팔딱 뛰어다닐 수도 있으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미리 해준 고마운 경고가 참 무의미하게도 저는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보자마자 카메라를 꼭 손에 쥔 채 저 멀리 뒷걸음쳐야 했습니다.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매끈하고 초록색의 것이 이곳저곳 예상 행로 없이 마구 뛰어다니는 모습이 흡사 전자레인지에 들어가 있는 팝콘이 펑하고 이곳저곳 그릇 밖으로 마구 튀는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떠올려보면 실제론 그렇게 뛰어다녔던 것 같진 않은데,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리들에 긴장을 한 제 마음이 아마 딱 전자레인지속의 팝콘 같았던 것 같습니다. 


어휴, 미안 안 되겠다.

"도저히 촬영이 안되네 하하. 혹시 집안에 다시 넣어줄 수 있어? 어차피 유리라 안이 다 보이니까, 그냥 넣고 찍어도 될 것 같아!"


결국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개구리들의 집안이 어찌나 예쁘게 꾸며져 있던지, 촬영 결과가 너무나 만족스러워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그레이슨에게도 박수를 보내주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레이슨은 이렇게 다양한 동물을 키우면서도, 각자 동물의 서식지와 똑 닮은 집들의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많은 동물들을 이렇게 버거움 없이 자연스럽게 참 잘 케어해줄 수 있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 더 많은 동물들을 집에서 키우고 싶다는 그레이슨은, 곧 두 마리의 물고기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답니다.


개구리를 그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도마뱀과 장난을 치며 놀아보는 것도, 그리고 새가 집안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도. 모두 제겐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는데요. 이날의 수확인 멋진 사진들 뿐만 아니라 생전 처음 만나보는 여러 파충류들과의 교감도 제겐 모두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만약 길이 멀다 해서 포기하고 그레이슨네 방문을 결국 하지 않았더라면 어찌나 후회할 뻔했는지, 아마 이날 이 소중한 경험이 없었으면 평생 모를 뻔도 했겠네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으로부터 약 일주일 전, 7화였던 뉴욕 가정집 방문기 [찰리와 안젤리카] 편의 주인공이었던 고양이 찰리가 안타깝게도 건강상의 문제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자기 들려온 비보에 글을 쓰는 내내 지금까지도 마음이 좋지 않은데요. "모리 네가 남겨준 찰리 사진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라며 안젤리카가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메시지를 전해왔습니다. 제가 촬영을 해온 반려동물들은 언젠가 그들의 주인보다 앞서 세상을 떠날 텐데요. 이날 제가 촬영한 그레이슨의 반려동물 사진들도 훗날 그들이 떠났을 때 그녀에게 따뜻한 위안과 위로가 되어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레이슨네 놀러 가기 : https://www.youtube.com/watch?v=-2bq2wMKa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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