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만난 다양한 새와 사람들 이야기
등교하다가, 쉑쉑 버거를 먹으러 공원에 잠시 들렸다가, 주말에 사진기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오늘은 뉴욕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난 새들에 관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들려드리려 합니다. 네발의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멋진 날개가 달린 새들을 반려동물로 기르고 있는 뉴욕 사람들도 굉장히 많은데요. 흔히 만나 볼 수 있는 반려동물은 아닌지라 길거리에서 새들을 만날 때면, 셀러브리티를 만난 것처럼 괜스레 가슴이 뛰곤 한답니다. 셀럽만큼이나 인기가 대단한 뉴욕의 새들과의 만남, 이야기 시작하겠습니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의 버드맨
뉴욕의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는 항상 같은자리 앉아 새들에 둘러싸인 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성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비둘기들에게 점령당하다시피 둘러싸인 채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이 흡사 [나 홀로 집에] 영화에 등장하는 비둘기 아줌마 같은 느낌을 풍겨 호기심에 이끌려 절로 발길이 그쪽으로 향하게 되는데요. 사진작가들을 비롯해 지나가던 행인들도 카메라를 꺼내 들어 모여있는 새들과 남성의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이 실제 셀러브리티 못지않습니다. 일명 버드맨이라고 종종 불리는 이 남성분의 실제 이름은 아쉽게도 저의 머릿속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데요,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새들의 먹이를 매일 챙겨주기 위해 행인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뉴욕의 공원에서는 이렇게 비둘기 먹이를 챙겨주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분 버드맨 같은 경우는 아마 뉴욕에서 사진을 찍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모두 카메라에 담아봤을 만큼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이에요. 매일 비둘기의 간식을 챙겨주기 위해 그 자리에 항상 존재한다는 버드맨. 여러분도 뉴욕에 가실 때 한 번쯤은 우연히 만나보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오늘 이 길은 분명 달랐다
한결같은 거리가 너무나 진부하게 느껴져,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은 채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기분, 여러분은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제겐 매일 같이 지나가야 하는 집에서 학교에 가는 길이 그렇게 느껴지곤 하는데요. 이날도 여느 다른 날과 점하나 다른 것 없는 같은 거리를 느릿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신기한 피사체 하나가 제 눈에 포착되었습니다. 중절모를 쓴 키가 큰 남성과 그의 어깨에 자리 잡은 눈처럼 하얀 새. 막 건물을 나와 차를 타려던 남성에게 재빨리 다가가 생각할 새도 없이, “Excuse me”를 외쳤습니다.
제 가방에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도 까먹고 말이죠. “저 혹시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대답을 듣기까지 2초 남짓하는 시간 동안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빨리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럼요! 잠시만요. 선글라스를 써야 더 멋있어 보이겠죠?” 아차 싶은 마음이었지만,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카메라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멋진 미소를 한껏 장착한 남성분과 티 없이 맑은 하얀 빛깔을 자랑하는 새의 모습을 포착했다는 사실이 저는 그저 좋았었네요. 이날이 이분을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요, 박제한 듯 같았던 매일의 등굣길에 새하얀 점을 하나 남기고 간 이 두 인연은 제게 아직도 고마운 존재들로 기억됩니다.
이유가 뭘까?
얼마 전에는 뉴욕의 베이킹 학교를 잠시 다니게 되어 911 테러가 일어났던 건물 근처를 일주일에 한 번씩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이죠. 그 자리를 지나가면서 매주 한 번씩은 꼭 길거리에 죽어있는 새를 만나곤 하는 겁니다. 처음엔 "아이고 놀래라" 하고 지나갔던 일이 두 번 세 번 지속되자 괜히 싸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곳에 죽은 새들이 많은 이유가 궁금해져서 구글에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Dead birds at the World Trade Center (월드 트레이드센터의 죽은 새들)”
수많은 글과 기사를 찾고 읽어보았지만 결국 답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구글에 검색 결과가 없다는 것이 죽은 새들을 본 사람이 저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아 한층 더 기분이 찝찝해졌던 생각도 나는데요. 사실 확인은 어렵겠지만, 추측해보건대 제 개인적인 이론은 이렇습니다. "센터의 건물이 워낙 크다 보니, 어쩌면 이 새들은 비행을 하다 건물의 큰 유리창에 머리를 박아 땅으로 떨어져 죽었을 수도 있겠구나." 실제로 너무나 맑고 투명하게 제작된 유리로 인해 새가 비행을 하다 머리를 부딪혀 죽는 일이 흔히 일어나니까 말입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존재를 인지하기 힘들 만큼 깨끗한 유리를 만들 수 있게 되어 야생 동물들에게 인간이 주는 피해가 적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부디 제가 봤던 새들은 인간 때문에 안타까운 피해를 입었던 게 아니었음 하는 바람입니다.
그냥 보내드리는 게 났겠어
본 매거진의 2편이었던 [개판이구만! 뉴욕의 도그 파크]에서 소개해 드렸던 이야기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위 사진 속 장소가 도그 파크임을 아마 눈치채셨을 것 같습니다. 도그 파크에는 이렇게 개들 뿐만 아니라 새와 함께 방문을 하시는 분도 계시다는 걸 저도 이날 처음 알았는데요. 모두가 개들과 함께인 이곳에 새하얀 새를 어깨에 얹고 등장한 여성분은 입장하시면서부터 모두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쉽게도 반려동물이 없는 사람들은 도그 파크 내에 출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멀리서나마 이 장면을 보고 있어야 했는데요.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여성분이 출입구 쪽으로 다시 다가오길 계속 기다렸지만, 개 주인들 사이에서 너무나 행복하게 놀고 계신 모습에 방해하면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자리를 떠났던 기억이 납니다. 가끔 이렇게 반려동물의 주인들끼리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현장을 볼 때면 아무리 그 장면이 예뻐도 그냥 지나치곤 할 때가 있어요. 사진을 찍는답시고 그 사이에 끼어들어 한창 피어나고 있는 이야기꽃을 접어들게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쁜 꽃은 그 자체로 두고 꺾지 않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두고 지나가는 것이 사진 찍는 일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매디슨 스퀘어 파크의 새 모임
새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새를 키우는 사람들이 공원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서로의 새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런 모임인데요, 우연히 쉑쉑 버거를 먹으러 공원에 갔다가 이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보기에도 가지각색의 새들이 주인의 어깨에 모여 앉아 재잘대는 모습은 참 보기 드문 신기한 장면이었는데요. 역시나 저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그들 주변에 모여들었어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핸드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 반해, 낡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는 제가 신기하셨는지 저에게 이러저러한 것들을 물어보셔서 한참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하던 중, 발에 줄을 하고 있는 새들이 대부분인 반면 유독 초록색 앵무새는 줄을 하고 있지 않은 모습에 주인분께 여쭤보았습니다.
“줄을 하지 않아도 새가 도망가지 않네요?! 날아가버리면 강아지들처럼 뛰어가서 잡을 수도 없을 텐데, 불안하지 않으세요?”
“전혀요! 날아도 살짝 날기만 할 뿐 절대 날아가버리지는 않아요. 이 친구는 제 곁을 떠나지 않는 답니다!”
각자 새들을 어깨에 얹고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치 제가 동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치 생전에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마이클 잭슨처럼, 새들은 이렇게 한번 야외 산책을 나오면 모두의 이목을 단번에 집중시키곤 하는데요. 이렇게 인기쟁이인 새들이 있는가 하면 야생에서 살아가는 새들은 제가 목격한 것처럼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냥 그렇게 생을 마감하기도 하나 봅니다. 3주간에 걸쳐 만난 세 마리의 죽은 새들과, 주인의 어깨에 앉아 생을 살아가는 새들, 그리고 사람에게 먹이를 얻어먹으며 야외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비둘기들. 백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명의 삶이 모두 다 다르듯, 반려동물의 삶도 그렇게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저는 뉴욕에서 만난 여러 새들의 삶을 통해 다시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