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았다는 말 대신 “오늘도 버텼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상태.
하루를 돌아보며 성취를 떠올리기보다는,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마음이 앞선다.
특별히 잘한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큰 사고 없이 하루를 넘겼다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침에 길을 나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오늘의 유일한 결과처럼 느껴진다.
내일을 기대하기보다 오늘을 견뎌냈다는 말이 더 익숙해진 삶,
그 말 속에는 희망보다는 체념이, 설렘보다는 피로가 조용히 섞여 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 소파에 앉으면,
오늘이 특별히 성공적이지 않았어도 하루를 버텨낸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오늘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
하루를 잘 살아냈다기보다 잘 견뎌냈다라는 말을 더 자주 쓰게 되었을까.
그저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한 걸까.
어쩌면 버텨냈다는 말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확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보다 더 잘할 자신은 없지만,
적어도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고 오늘을 넘겼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얻는다.
오늘을 버텨냈지만 내일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
아무 일도 없었다는 안도감 뒤에 남는 묘한 허무함.
같은 하루가 반복될수록 그 허무함은 조금씩 커진다.
그리고 문득 이런 질문이 고개를 든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 삶이 정말 내가 바라는 인생일까.
언제부터 나는 나를 뒤로 미뤄두기 시작했을까.
하루를 잘 사는 것과 버텨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가 정해놓은 속도에 맞춰 살아간다.
나를 알아갈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누군가의 기준과 지시에 따라 바삐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점점 자아를 잃어가고,
어느새 삶은 생각 없이 반복되는 하루가 된다.
그렇게 버티는 삶이, 어느 순간 내 삶의 전부가 된다.
버티는 삶 속에는 꿈도 희망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늘을 넘긴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텨내는 삶에는 언젠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까지 쌓아온 단단함이 한순간에 무너지며,
자괴감과 무력감 속에서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그 지점까지 가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필요하다.
잘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하루를 살아내는 것보다 견뎌내는 일이 먼저가 되었을 뿐이다.
오늘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 뒤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허함이 남는다.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예감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하루를 준비한다.
그렇게 “오늘도 버텼다”라는 말이 익숙해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언젠가 “오늘을 잘 살아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 아침의 작은 성공이 모여 어제보다 성장한 나를 만듭니다
# 아침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