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온도를 전제로 한다.
서로 간의 온도 차이가 거의 없을 때 의견은 쉽게 일치한다. 반대로 온도 차이가 클수록 의견 차이도 커진다.
나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역지사지의 마음이 없었다.
무조건 내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는 고정관념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내 말이 정답인데 상대방은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까. 그렇게 혼자만의 상상을 펼쳤다.
결국 나와 상대방 사이에는 의견 일치 대신 의견 대립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겼다. 내 탓보다는 상대방 탓을 하며 모든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떠넘겼다. 배려심, 이해심, 이타심. 어느 것 하나 내 안에 없었다. 그저 나를 이해해 주기만을 바라는 욕심과 이기심만이 내가 가진 전부였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언제나 내 입장을 이해해 주기만을 바랐다. 상대방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은 채 내 고집만 피우며 나에게 맞춰 주기를 기대했다.
서로의 온도는 너무나 달랐고 우리는 늘 반목하고 대립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육아로 인해 서로의 온도는 더욱 극명하게 갈렸다. 육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는 회사 일로 바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오히려 잔소리를 하며 관계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서로를 향한 부정적인 말들은 이미 힘들었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 편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각한 순간도 몇 번이나 있었다.
왜 나는 내 생각만 했을까.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어려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없었을까.
그때의 나는 고집불통이었고, 내 멋대로 행동하며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꾸준한 독서와 글쓰기는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혼자 사색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다른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나는 나와 다르면 틀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방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온도 차이가 존재한다. 관계를 개선하고 이어 가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온도를 알아야 한다.
관계의 시작은 바로 상대방의 온도를 알아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온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의 온도를 맞추려는 노력이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람마다 각자의 온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고 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거꾸로 생각해 보고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앞뒤를 살펴보면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내 기준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답은 의외로 쉽게 보인다.
조금씩 상대방과 온도를 맞추고 눈높이를 맞추다 보면 어려운 일도 쉽게 풀리는 지름길을 발견하게 된다. 내 기준으로만 해석할 때는 보이지 않던 답이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모든 변화는 결국 나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나를 알아야 상대방도 이해할 수 있고, 나를 사랑해야 비로소 상대방도 사랑할 수 있다.
언제까지 남 탓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모든 부정적인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린다면 결국 나에게 남는 관계는 하나도 없게 된다. 그 누구도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걸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관계의 온도는 함께 걸어가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감이다.
아내와의 거리가 한때 멀어졌지만 지금은 비록 뜨겁지는 않더라도 서로의 온도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있다.
관계의 온도는 상대방의 다름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장 적당한 온도로 맞춰진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는 말 역시 결국 나의 무지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관계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나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관계의 온도는 언제나
나의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다.
# 아침의 작은 성공이 모여 어제보다 성장한 나를 만듭니다
# 아침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