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인생을 바꾸는 한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 문장은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려 감정의 물결을 일으키고, 생각을 흔들며 결국 행동을 바꾼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지만 꺼내지 못했던 무언가가 그 문장을 통해 모습을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감각을 ‘살아보려는 충동’이라 부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데미안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지금까지 내가 만든 굴레 속에서 살아왔을까.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 사회가 만들어낸 틀 속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그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그때 느낀 감정은 마치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자신의 세계가 조작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과 닮아 있었다.
익숙했던 모든 것이 낯설어지는 감각.
그 문장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힘든 순간마다 꺼내보는, 나를 비추는 하나의 등대처럼.
95퍼센트의 인간은 타고난 운명 그대로 살아간다. 사람들은 이들을 순리자라 부른다.
5퍼센트의 인간은 본성을 거스르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능력으로 인생의 자유를 얻고, 경제적 자유를 누린다
유전자, 무의식, 자의식의 꼭두각시에서 벗어난 자,
사람들은 이들을 역행자라 부른다. <역행자>
<역행자>를 읽기 전까지의 나는 방향을 잃은 배와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솔직히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반복하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미 아는 이야기’를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살아낸 적이 없었다.
무언가라도 붙잡고 싶다는 마음으로 펼친 책이 바로 <역행자>였다.
그 작은 선택이 내 삶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순리자로 살던 삶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퇴사를 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겪으며 비로소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의 하루는 이전과 달랐다.
같은 시간, 같은 일상이지만 전혀 다른 감정으로 채워졌다.
부정으로 가득했던 하루가
긍정과 가능성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역행자>를 읽기 전과 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다.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된다.” <마흔, 이제는 책을 쓸 시간>
<마흔, 이제는 책을 쓸 시간>을 통해 나는 글쓰기의 방향을 다시 잡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며 롤모델이 생겼다.
바로 부아c 작가다.
그의 글을 읽으며 ‘나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고,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있었다.
이 책은 그 빈 공간을 채워주었다.
결국 글은 삶에서 나온다.
삶이 없는 글은 오래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더 성실하게 살아가기로 했다.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 나의 문장이 되기 때문이다.
“녹슬어 사라지기보다, 닳아서 사라지는 삶이 더 아름답다.” <고전이 답했다>
<고전이 답했다>를 통해 나는 고전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한때 고전은 지루하고 오래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 속에서 검증된 삶의 본질이었다.
특히 돈키호테를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가만히 앉아 녹슬어 사라지지 않겠다는 의지.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았다.
불편함 없이 살아왔지만,
어쩌면 나는 서서히 녹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선택했다.
녹슬어 사라지기보다, 닳아서 사라지는 삶을.
나의 나이, 이제 50을 바라본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움직이기로 했다.
읽고, 쓰고, 행동하며
나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나를 모두 써내려가겠다.
# 아침의 작은 성공이 모여 어제보다 성장한 나를 만듭니다
# 아침사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