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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샘 May 20. 2024

분류의 과정, 혼돈의 마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곰출판




결론은, 내 취향


이 책은 과학과 관련한 논픽션인듯 싶다가,

개인 삶에 대한 에세이인 듯 싶다가,

어떤 인물을 조명해보는 인물전인듯 싶은 그런 책이다.

그래서인 것 같다.

완전히 내 취향에 맞아 떨어진 것이.

과학에 대해 논하면서, 그것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가 그려져 있어서.


저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삶의 혼돈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어류학자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현재 발견된 어류의 종류중 5분의 1을 발견한 사람인데,

나에게는 어류의 종류를 그렇게나 많이 발견한 것이 너무나 대단했다.

하지만, 작가가 그에게 흥미를 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때 본인이 수집한 어류표본들이 다 부서졌는데도

좌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에게 꽂히는 이유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그의 외모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의 목소리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 많은 어류의 종류를 밝힌 것이 대단하고 궁금했는데,

이 작가에게는 혼돈에서 벗어나는 그 힘이 무엇일까가 더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책의 초반에 언급된 이 과학자가 너무나 궁금해서 구글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입력했다.

당황스럽게도 이 과학자에 대한 자료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실존인물이 아닌가? 왜 안나오지? 이 대단한 사람이?'

라는 의문으로 책읽기가 시작되었고, 그 이유도 알게 되었다.



우생학


데이비드 조던은 너무나 열심히 물고기를 연구하기 위해,

물고기를 많이 잡을 방법을 고안해야 했고 급기야 독약을 풀어

물고기가 떠오르게 하는 방법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심리학자들이 연구한 내용도 언급한다.

삶의 동기가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자기긍정이라는 것.

본인에 대한 긍정성이 성취감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결과가 있다고.

그런데, 그건 자기기만 아니냐고 반문한다.

본인의 가치와 철학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돌아보지 않고

언제든 자신의 행동과 철학을 긍정적 변명의 커튼으로 삼고 그 안에 사는 사람.

바로 그것이 조던이 지진이라는 재난에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고,

급기야 우생학을 옹호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조던은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학장으로 지내면서

설립자인 제인스탠퍼드 죽음의 미스테리 중심에 선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한글로 된 구글에는 검색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영문으로는 검색된다.


조던이 스탠퍼드 학장이던 시절 이미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연에는 계통이 있고 가장 우월한 인종이 있다고 믿었다.

신이 인간을 모든 생물의 우두머리에 놓은 것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결국 시간이 인간을 가장 우두머리에 놓았고 그 인간도 계급이 있다고 믿었다.



분류학


중,고등 학교다닐 때 '린네의 분류학'이란 주제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다.

계.문.강.목.과.속.종 이란 분류명칭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식물계와 동물계가 있고, 식물에도 외떡잎식물과 쌍떡잎식물이 있고,

동물에는 조류와 양서류와 포유류...가 있고,

그리고, 물속에 사는 동물은 죄다 어류라고 배운 것 같다.


분류학을 배울 때 내가 가장 경이로왔던 것은,

세상에 이 많은 식물과 동물, 곤충들을 어떻게 다 발견했는가다.

그 때 배운 (아마도 70-80년대) 내용이 완벽한 줄 알았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이미 다 정리가 끝난 줄 았았다.

물론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가끔 있었다.

고래는 어류인데, 포유류라고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자신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책이

바로 분류학에 관한 책 <자연에 이름붙이기>라고 했다.

이 책의 제목을 "Why Fish Don't Exist"라고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 조던이 그렇게 열심히 물고기들을 해부하고 표본을 잘 보관해 둔 덕분에

물고기들의 특징이 재발견되면서 각기 다른 진화의 과정을 거친 물고기들을

'어류'라는 하나의 카테고리가 가둘 수 없다는 것이다.



혼돈 너머


저자는 이름붙이고 분류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혼돈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혼돈을 마주하고 그 혼돈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미지의,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에게는 개인적인 혼돈의 시기가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성적지향성때문이다.

'양성애자'라는 것이 저자를 혼돈에 빠지게 했던 것 같다.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떠나간 남편을 계속 기다리는 그 과정이

아마 극심한 고통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총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는 것은 그토록 힘들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자신이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답게 삶을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혼돈의 의미와 그 너머를 알게 된 것 같다.


범주화되고 분류화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질서 속에서만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타인의 삶을 재단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 범주, 잘 직조된 천의 실타래 한 곳을 풀어보자고 제안한다.


나, 또한 그렇게 실타래 풀어보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가볍고 사적인 문장 속에 넓고 깊고 자유로운 삶의 지향을 품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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