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을 읽고
심연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
배철현
21세기북스
나를 깨우는 짧고 깊은 생각이라는 부제를 통해,
명상과 관련된 책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깨달음에 드는일, 명상에 들어보는 일에는 모두 침묵이 동반된다.
최근에는 명상이 마치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 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상과 성공을 연결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성공에 따라붙는 명예와 권력과 돈 같은 것이 떠오르기 때문이겠다.
하지만 실제로 명상, 마음을 돌아보고 다스리는 것은
인간을 지치지 않게 하는 방식중 하나이기 때문에 성공에로 이끌기도 하겠다.
가만히 있기, 침묵해보기, 글 써보기, 멍때리기 등이 유행하는 요즘,
이 '심연'이란 책 역시 깨달음이란 이름아래
이제껏 시중에 많이 팔렸던 명상활동의 방법과 그것이 주는 이로움에 관한 책일 줄 알았다.
( 그렇지 않았다는 소리다 )
저자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방식으로
생각을 지나가게 하지 말고, 반대로 더 깊이 들여다보라고 한다.
나는 여전히 선입견의 그늘 속에 있었다.
'명상과는 다르군. 명상할 때는 생각을 그대로 지나가게 하라고 하던데...'
저자는 생각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선정해서
그 단어들의 유래와 그 속에 깊이 깃든 철학을 명징하게 파고 든다.
우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방법으로 선택된 고독의 단어들은
순간, 생각, 현관, 인내, 침묵, 실패, 동굴 이다.
이어 있는 그대로 나를 발견하는 관조의 단어들은
단절, 숭고, 사유, 관찰, 오만, 심연 이다.
비로소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에 오는 자각의 단어들은
괴물, 임시 치아, 가면, 갈림길, 멘토, 진부, 자립 이다.
마지막으로 자기다운 삶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용기의 단어들은
몫, 열정, 믿듬, 아우라, 착함, 옮음, 빛의 축제이다.
저자는 이렇게 선택된 단어들을 하나 하나 파헤친다.
한자어에서는 어떤 의미인지,
라틴어로 그 뿌리는 무엇이었는지,
더불어 그 단어가 쓰였던 스토리에 담긴 가치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인간이라는 영어 단어 'person'은 라틴어로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person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식적인 존재'라고 해석하지는 말자고.
우리에게 맡겨진 배역으로 여기자고.
그리고 그 배역에 최선을 다하자고 한다.
한자어 '사유(思惟)'에서 마음 심(心)자 위에 밭 전(田)자를 둔 것은,
생각하는 일, 사유란 내가 딛고 있는 땅을 그 현장으로 해야한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나를 더 나은 나로 변화시키는 현장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며 집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며 책이라고 강조한다.
'열정'이라는 뜻의 영어 '패션'이 유래한
고대 그리스어 파세인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해할 수 없고,
낯설고, 어렵고, 불편한 현실을 십자가를 짊어지듯 나의 어깨 위에 매는 행위'라며,
열정이란 기본적으로 고통의 길이라는 것,
열정을 갖는 것은 그만큼 용기를 내는 행위라고 알려준다.
우리가 늘상 쓰는 단어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는 일을 하게 되면,
오히려 침묵하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르겠다.
나의 생각들을 또렷하게 관조하게 되고,
이제껏 발을 들인 적 없는 미지의 땅, 심연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다.
그런 연후에야 찾아오는 깨달음과
이어지는 자기다운 삶은
아마도, 그 이전과는 다를 것 같다.
여전히 선입견의 꼬리를 달고 있는 나는,
명상에서 말하는,
생각을 지나가게 하는 것도,
깨달음을 위해,
생각을 깊이 들여다 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자꾸 든다.
* 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읽는 나는 책을 다 읽은 후, 이 책을 사고 싶어졌다.
이따금씩 단어의 의미들을 다시한번 들춰 보고픈 순간, 이 책이 곁에 있었으면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