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이스탄불 구시가지
이스탄불은 그냥 발길 닿는 곳이 다 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여행책자는 다 담지 못했다.
'방문할 곳이 너무 많으니 그중에서 이 정도만 보고 와라...'라고
안내해 주는 정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 한 채를 빌려서 지내기 때문에 모처럼 아침을 해 먹기로 했다. 오렌지를 주셔서 생오렌지를 갈았다. 만약 우리나라도 오렌지가 많이 난다면 오렌지 가는 기계는 필수가 되어야 한다. 막 간 오렌지의 달콤하고 신선한 맛은 잊지 못할 것이다. 차이도 한 잔 끓였다. 터키의 차이 만드는 포트는 2층이다. 하나 사가면 손님 접대할 때 멋있을 것 같다. 아래층 물을 끓여서 위층의 찻물을 데우고, 그렇게 계속 끓이다가 차이가 진하면 아래층 물을 섞어 마시는 거라는 이 포트. 이 원리를 알고는 그동안 호텔에서 차이가 나오는 포트에 물꼭지가 두 개 달린 이유를 이해했고, 호텔 조식 먹다가 뜨거운 물을 먹고 싶을 때는 차이 포트의 더운물 꼭지에서 물을 따라 마실 수 있었다. 바게트 빵과 오렌지주스와 차이와 버터와 잼 만으로 우리는 참 맛있는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느지막이 술탄 아흐메드, 히포드롬 광장으로 나갔다. 이스탄불은 매우 큰 도시. 그리고 우리는 여유로우니 이스탄불을 천천히 익히기로 했다. 오늘은 구시가지를 돌아보기로 했다.
버스와 트램을 타려 했는데, 교통카드가 작동이 안 된다. 세 명중 두 명의 것에 문제가 있다. HES코드(우리나라의 개인 QR코드)를 읽어내지 못하면 누구도 버스나 트램을 탈 수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철저하게 코로나를 관리한다는 생각이 든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께 먼저 블루모스크로 가자 했더니 못 알아듣는 태도였다. 그래서 다시 술탄 마흐메드 모스크라고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튀르키예 사람들은 서양인들이 부르는 일명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바로 앞에서 내려주었다. 조금 걸으니 거대한 탑이 우리를 맞이한다. 깜짝 놀랐다. 아니! 오벨리스크라니! 콘스탄티누스 기둥과 뱀 기둥 그리고 테오도시우스 오벨리스크가 나란히 보였다. 이곳은 예전에 거대 전차경기장, 히포드롬이 있던 자리다.
게르만 분수대도 함께 있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적인 광장이 아닐까?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와 그리스 델포이에서 가져온 뱀 기둥과 십자군 전쟁 때 훼손되었지만, 콘스탄티누스 4세 때 건립된 기둥이 있는 곳, 비잔틴 시대 때 전차 경주가 열리던 곳, 그리고 로마시대 때 건축한 아야 소피아가 배경으로 있는 바로 이 광장은 말이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장소를 햇살을 받으며 쉬미트를 먹으며 쉬는 곳으로 사용하고 말았다.
교통카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100리라를 충전해 둔 상태라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 근처 여행 정보센터를 찾았다. 관광객을 위한 경찰서 건물이 2개나 보이는데 여행정보 센터가 안 보여 겨우 찾아냈다. 허름하고 숨어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센터에서 일하시는 분은 나이가 지극한 분이었는데, 무척이나 성실하게 설명해 주셨다. 뮤지엄 패스에 대한 것도 물어보니, 아야 소피아 블루모스크 등이 다 무료인데 뮤지엄 패스를 끊는 것이 의미가 있겠냐는 조언부터 유람선은 꼭 타보라는 조언과 유람선 예약은 그랜드 바자르보다는 근처 아라스타 바자르의 업체를 섭외하는 것이 저렴하다는 것 등을 전해주신다. 우리보다는 어제 합류한 우리 집 2호가 영어를 잘하니 계속 2호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해 준다. 교통카드는 근처 카드 판매업체에 의뢰해 해결하라며 안내해 준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판매업체 직원이 충전기계에 가서 카드 충전 확인을 하고 트램 입구에서 오류 확인을 한 후 다시 한번 HES코드를 입력하니 이번엔 OK이다. 원! 고맙기도 하지만, 아까는 왜 안되었지? 똑같이 했는데? 하여튼 이후 교통카드는 매우 요긴하게 잘 사용했다. 근처 공용화장실도 교통카드로 이용 가능했다. 1리라.
술탄아흐메드 모스크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장 멋지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아야 소피아 성당(지금은 모스크)이다. 입구에 걸린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성화를 마주한 뒤 내부로 들어가니 그 화려함과 거대함과 오래된 기풍에 압도되었다. 다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거 원, 코로나에 걸릴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유럽에서 익히 보아왔던 거대한 교회 건물에 오스만식 코란 문자가 사방에 걸려있고, 모스크에서 흔히 보던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빛나는 곳, 작은 기도실조차 화려한 금으로 치장한 곳이다. 건물을 장식한 대리석에 눈길이 갔다. 모스크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양탄자를 깔았기 때문에 방문객을 위해 열린 일부 구간만 구경했을 뿐인데, 거의 1,500년이 다 된 대리석은 아직도 화려했다. 그 큰 성당의 바닥이 온통 그 화려한 대리석으로 가득하다니. 천년 전 이 성당은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 했을까를 추측해 본다. 성당의 본당 안쪽 양옆으로는 대리석 항아리가 놓여 있었는데, 고대 페르가몬 왕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 항아리 역시 감히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려울 만큼 진귀해 보였다.
아야소피아는 2020년 현재의 튀르키예 대통령에 의해 박물관에서 다시 모스크로 목적이 바뀌었다. 따라서, 관람료를 받지 않는 대신 모스크 복장을 해야 하고, 2층도 올라갈 수 없었으며 (혹시 코로나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본당 둘레의 작은 재단 안에도 들어갈 수 없도록 줄이 쳐져 있었다. 일명, '땀 흘리는 기둥'이라는 그 유명한 기둥에도 다가갈 수 없게 막혀 있었다. 방문에 제한은 있으나 입장료를 받지 않으니, 원하는 시간에 얼마든지 재입장이 가능했다. ( 우리는 이후 두 번이나 더 아야소피아를 방문했다.)
기존의 어마어마한 성당 건물에 모스크 문화가 결합된 아야소피아 성당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예술이 결합된 양식으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 이스탄불을 함락한 후 처음으로 성당을 둘러본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감동받았다는 아야소피아. 자칫 종교의 이름을 앞세워 그 흔적을 없앨 수도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위기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황제가 지닌 아름다움에 대한 뛰어난 감각 덕분이겠다. 오늘, 2022년 2월 5일 오전,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이 아야소피아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기적의 결과다.
현재 공사 중이라 아쉽게도 천장만 잠깐 볼 수 있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현재, 이스탄불에는 이외에도 예레바탄 지하 저수지와 카리예 박물관 그리고 루멜리 히사르 뮤지엄도 휴업 중이었다.
술탄 메흐메트 2세의 무덤 건물을 둘러보았다. 역시 가족 무덤이다. 정원에는 당시 일했던 관료들이라 예상되는 묘들이 가득했다. 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방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듯했다. 묘 뚜껑이 없는 것도, 양쪽 옆에 세우는 기둥이 없는 것도, 철 디자인으로 된 것들도 있었다.
콘스탄틴 기둥도 보였다. 로마시대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이 기둥 밑에는 예루살렘의 예수 그리스도 무덤에서 가져온 유품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도 한다.
바로크풍으로 지어진 모스크 건물도 구경했다.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라 불린다. 17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서양 건축의 영향을 받았다 한다. 기존의 모스크보다 좀 더 아름답고 균형미 있어 보였다. 그리고 좀 더 화려했다. 이 건물의 설명서에 의하면 모스크라 표현하지 않고, '누루오스마니예 소셜 콤플렉스'라 되어 있다. 이슬람에서 처음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해서 붙인 이름 '누루 오스마니예, 뉴 오스만 스타일...'이란 뜻에 복합 문화공간이란 뜻을 합한 이름이다. 오스만 건축의 이정표로 간주되기도 하는 이 모스크는 도서관, 무덤, 분수대 등이 함께 어우러진 복합단지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스크 양 쪽의 게이트가 모두 그랜드 바자르로 연결된다. 모스크 건물을 지나 조금 걸으니 누루오스마니예 하피스라고 쓰여 있는 게이트가 있고, 그 게이트 앞면에는 관광객들에게 알리는 그랜드 바자르라는 문구도 함께 적혀있다. 그랜드 바자르 가는 길에 왠지 멋지게 보이는 모스크가 보여서 들어가 보고, '와 이 모스크는 왠지 세련된 멋이 풍기네....'라고 잠깐의 감탄사를 내뱉었는데, 알고 보니 이곳도 이스탄불의 핫플이었던 것이다.
그랜드 바자르 일부는 공사 중이었다. 도자기와 실크와 카펫과 디저트와 보석류 등 없는 것이 없었고, 상인들은 다들 앞에 나와 호객행위를 했고, 제품들 중 일부는 발걸음이 느려질 정도로 화려하고 정교하고 엄청난 기술이 결합된 것들이었다. 물론 그런 제품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도자기 무늬가 너무 예뻐서 가격을 물어보니 접시 하나에 무려 150달러라고.
이스탄불은 여느 지역과 달랐다. 일단 여행객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건축물의 크기와 정교함은 이제까지 본 튀르키예의 모든 고대도시 것들의 수준을 웃도는 것 같았다. 술탄 아흐메드 근처는 조금만 걷다 보면 유적이 나왔다. 콘스탄틴 기둥과 누루오스마니예 모스크도, 술탄 마흐메드 2세의 묘도 다 그랜드 바자르를 향해 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이스탄불은 그냥 발길 닿는 곳이 다 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여행책자는 다 담지 못했다. '방문할 곳이 너무 많으니 그중에서 이 정도만 보고 와라...'라고 안내해 주는 정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많은 날들이 남았으니, 이스탄불은 그저 걸음 내키는 대로 돌아볼 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발 길 닿는 곳이 다 역사를 담았고 예술이어서. 하긴, 콘스탄티노플이라는 로마의 1,000년 도시가 이곳에 있었으니 그 흔적이 얼마나 차고 넘칠까?
2022년 2월 5일, 이스탄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