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자 걸어보겠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벌써 7년 전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식상한 산티아고 길.
하지만 내 평생 혼자서 걷겠다고 나선 첫 경험이어서, 소중할 수밖에 없다.
2015년이 되자 월경이 끝난 지 정확히 1년이 다 되었다는 걸 확신했다. 그냥, 몇 개월 뒤면 또 시작하겠지. 한두 달 후면 또 증상이 있겠지... 했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1년간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는 완경이구나,라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몸의 변화는 이상하게 마음의 변화로 이어지는 듯했다. 왠지 이제부터는 앞으로의 삶보다는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정리해야 할 시점이 아닌지. 정확히 만 49살에 완경이 되었다는 걸 정확히 만 50살이 된 시점에 알게 된 나는 매우 정상인이지만 어딘가 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워낙에 바쁘게 일을 하고 있던 시점이어서, 사실 크게 우울할 틈은 없었다.
다만, 이제는 꼭 하고 싶었던 일들 미루지 말고 하자,라는 생각도 갖게 되고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용기를 내보자,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 무렵 갑자기 휴가가 찾아왔고, 나도 용기 있게 혼자 떠나는 일을 해 보기로 했다.
혼자 걷고 싶은 여성분들에게 특별히 마음을 담아,
2015년, 8월에 남겨두었던 그 기록을 옮긴다.
나는.... 느린 시간을 갖고 싶다.
걷고, 쓰고, 읽고....
까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는 성 야고보의 길이란 뜻이다.
Camino - 길
de - ~의
Sant - 세인트(성)
Iago - 야고보
성지순례의 개념으로 걷기도 하는 것 같다.
성 야고보가 세상 끝까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이베리아 반도 대서양 끝까지 걸어왔다는 전설 하나로 시작된 순례 여정.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산티아고에 가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정말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떤 이들은 그저 걷고 싶어서.
어떤 이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싶어서.
나는....
느린 시간을 갖고 싶다.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내가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아마도 그냥 터덜터덜 걸을 것이다.
아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내 배낭만큼의 짐을 메고,
내 두 발이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그저 그 행위만이 다 일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난, 이제까지 늘 목적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늘 바쁘게 하루를 마감했던 것 같다.
그런 삶을 또 누군가에게 보이려 했던 것 같다.
이제 잠시만이라도, 단 한 달 만이라도 그런 꽉 찬 마음들을 내려놓고 싶다.
그저 내 육체에게 다 내주고 싶다.
단순히 하루하루 걷는 일만을 해도 괜찮겠다.
'뭐 그렇게 오래 걷느냐? 그럴 시간에 스페인을 좀 더 둘러보지...'
라는 말을 듣기로 했다.
나도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또 막 욕심이 생긴다.
이왕 가는 거 많이 둘러보는 것이 더 남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삶은 해보지 못한 것을 한 번쯤 해보는 일이겠다.
또 해보는 것이다.
내 평생 한 달을 걸어본 적은 없고,
한 달을 오로지 나 혼자 여행을 떠난 적도 없다.
일단 또 시도해 보는 것이다.
만약 너무나 큰 고생이 된다면
시도하지 못한 아쉬움과 미련 없이,
누군가에는 걷는 것이 고행일 수도 있다는 걸 배우겠지.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적어본다.
1. 매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 2-3시까지 걷기
2. 오후 저녁 먹기 전까지 동네 둘러보고 차 마시며 하루 정리하는 글쓰기
3. 저녁은 가능하면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하기, 이야기 나누기
4. 늦은 밤에는 책 읽으며 자기
사람들은 버킷리스트라는 걸 적어보는 것 같다.
버킷리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내게는 참 목마르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다.
이번 산티아고는 그런 시간으로 삼고 싶다.
걷고, 쓰고, 읽고....
나는 뭐 이런 걸 하고 싶은 일이라고 적었을까?
길을 걷기로 한 마당에 읽고 쓰고 싶다니....
돌아보면,
많이 썼다.
그리고, 음악을 들었다. 음악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그리고, '페스트'를 읽었다.
지금, 나는 또 그렇게 살고 싶다.
걷고, 읽고, 쓰고, 듣고. (2023.1.3)
2015. 7. 2. 출발 한 달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