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장 가는 길
까미노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저 그날 밤 잠자리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던 것 같다.
침대는 쾌적하지 않았고, 2층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도 컸고,
샤워하는 곳도 깔끔하지 않았다.
몽빠르나스역까지는 아이들 고모가 차로 데려다주었다. 멀리 개선문이 보였고, 오벨리스크 탑과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 몽빠르나스라는 큰 건물에 도착했다. 새벽의 파리 중심가를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빠리의 아파트는 보통 100년, 200년 된 석조 건물로 대부분 5-6층 정도였고, ‘이곳이 유럽이다’라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 건물 사이사이 차들이 한쪽에 주차되어 있고 자동차들이 지나는 도로도 돌길로 되어 있었다. 가로등과 간혹 불이 켜져 있는 상점들이 새벽의 빠리를 그나마 분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기차상황판을 보나 바욘행이 없었다
기차시간은 있는 것 같은데…….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다
“바욘 가는 기차 어디서 타느냐?”
아직 플랫폼에 뜨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좀 기다려도 바욘행이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시간의 기차도 플랫폼 번호가 뜨는데 바욘 가는 기차가 안 나올 리가 없어 티켓을 확인해 보았다.
바욘행이 아니었다. 바욘을 거쳐 이룬까지 가는 기차였다.
이룬까지 가는 기차를 찾아내니, 바로 플랫폼 번호가 나타나 있었고, 난 안심하고 그 기차를 탔다.
지나고 나니, 난 영어로 이야기했고, 그녀는 내 영어를 알아듣고 불어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어쨌든 불어를 어느 정도 알아들으니 다행이었다.
긴장을 해서인지, 영어도 불어도 구분해서 못 들었다는 생각을 하며, 아, 이제부터 나의 좌충우돌은 이렇게 시작되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즐겁고 신났다.
그저, 이렇게 닥치면서 실수하고 실수 속에서 배우겠거니 하며 나를 격려했다.
이번 바욘행 기차는 한국에서 1달 전에 아주 싼 표가 나와 예약한 것이다.
퍼스트클래스 정 방향 1인석을 끊었는데 아주 쾌적한 좌석이다
바로 앞에 프랑스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너무 가까이 앉아있어 좀 어색한 느낌이 들어 인사를 했는데, 이것저것 물어본다.
‘어디 가느냐?’ 해서 바욘으로 간 다음 생장 가서 까미노 간다 하니 자기도 일부구간을 걸어봤다면서 까미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마웠다.
왠지 출발이 좋다.
기차가 출발하고 이야기 나누다 창을 보기도 하고, 서로 각자의 책을 보기도 했다.
기차 밖은 정말 끝없는 평원이다
평원과 집들 그리고 그 사이에 중간중간 풍력발전을 위한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고 있다
구름이 잔뜩 끼었다
저 평원은 대부분 밀밭이리라…….
드디어, 바욘에서 내리려는 데 누군가 다가와 ‘당신도 까미노 가지요?’ 라며 느닷없이 말을 걸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도 그렇단다.
그냥 웃으면서 난 한국 사람이다 만나서 반갑다 생장 가는 방법 아느냐 하고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다면서 같이 알아보자 하고, 같이 안내소로 걸어가 이것저것 물어보고 생장 가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녀의 이름은 캐시다
뉴저지에 살고, 남편과는 이혼했고, 남자친구가 있단다. 나이는 69살.
말이 많고, 정도 많고 엄마 같은 느낌이 든다.
생장 가는 티켓을 끊으려는 데 누군가 와서 캐시에게 아는 척을 한다.
아까 기차에서 봤다면서 캐시도 반갑다고 인사를 했고, 이어 나를 소개해 준다.
그녀는 트레이시.
자유분방해 보이는 여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단다. 나이는 나보다 한두 살 더 많았다.
그녀도 까미노를 간단다.
두 여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다들 혼자 와 놓고선 나 보러 왜 혼자 왔느냐고 묻는다.
그저 혼자 오고 싶었다고 했다.
다들, 그 마음 이해한다고, 둘 다 정말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인다.
다시 바욘 역으로 돌아가 생장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데 옆에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그저 말을 걸었다.
생장 가느냐고.
그렇단다.
그리고는 서로 소개를 하고 같이 기차를 탔다.
이름은 잔.
슬로베니아 출신이고, 지금은 학생인데 유럽의 몇몇 나라를 여행한 후, 마지막으로 까미노를 걸을 예정이란다.
기차에서 잔이 자기 학생증을 보여주며, 자기 성이 스트레스라고 하여 한바탕 웃었다.
그렇게 캐시, 잔 그리고 트레이시와 갑자기 일행이 되었다.
이들과의 만남이 일시적일 거란 나의 단순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함께 걷기 시작하면서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이때부터 이들과 운명적으로 함께 걸을 거란 걸 알았다면,
아마 더 많이 스트레스받았을지도 모른다.
계속 영어를 해야 하는 그 스트레스 말이다.
곧 헤어질 거란 생각에 그저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잡이로 문법 엉망의 영어로 말을 하면서,
이제 곧 이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고요히 혼자 걷겠지...라는 미래(?)를 꿈꿨다.ㅎㅎ
드디어 '크레덴시알'( 순례길 증명서? )을 받는 곳으로 갔다.
가니 영어로 설명해 주길 원하느냐고 한다.
난 스페인어로 설명해 줄 것 같아서 그렇다 영어를 원한다 하니까 당황하면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는 불어로 말하고 있었다.
나도 깜빡했다
나, 불어 이해하니 불어로 하세요라고 다시 말했고, 이내 그녀는 웃으면서 설명해 준다.
크레덴시알에 도장을 받는 방법, 알베르게에 대한 안내 그리고 생장의 알베르게와 소요비용, 가장 가까운 알베르게가 어디인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난 드디어 2유로를 내고 크레덴시알을 받고, 도장을 하나 받았다.
조개껍데기도 하나 샀다. 배낭에 달고 걸어야지.
우리 넷은 다 같이 크레덴시알을 받은 후 어느 숙소로 갈까 의논했다.
내가 '알베르게 뮈니시빨'( 시에서 운영하는 공용 게스트하우스 )로 가자고 했다.
가장 싸니까…….^^
그리고 소개받은 곳으로 가니 마침 자리가 있었다.
내가 먼저 가니 난 아래층, 캐시는 위층이다
좀 미안했지만 뭐 어쩔 수 없었다.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해 주니…….
샤워를 하고, 침낭을 깔고 몇 시에 만날까 약속을 하고 각자 짐 정리를 했다.
마침 시간이 좀 남아, 나는 근처 야고보의 성을 산책했다.
생장성은 고즈넉하고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야고보의 문도 둘러보았다.
앞으로 계속 야고보와 관련된 유적들을 많이 만나게 되겠지만 이곳 야고보의 문은 프랑스에 있는 유적이니 또 나름 의미가 있겠다.
약속된 시간에 가 보니 다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잔과 트레이시가 미리 식당을 알아봤단다. 고맙다.
순례자 메뉴를 시켜 먹었다.
트레이시와 캐시가 샹그리아를 먹는데 뭔지도 몰라서 그냥 넘어갔는데, 다음엔 나도 먹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욘에 내렸는데 한국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장까지 왔는데도 한국 사람은 없다.
한국인이 너무 많아도 그리 좋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 명도 없으니 약간 외로운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하루를 거의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리 방에는 나와 캐시 그리고 프랑스에서 온 가족이 있었다.
아빠와 여자아이들 세 명 정도였는데, 다 딸들일 수도 있고, 딸과 그 친구일 수도 있겠다.
중학생 정도 혹은 초등학생처럼 보여서 속으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잘들 걸을 수 있을까?
모두들 첫날이라서 그런지 제법 긴장되어 보였다.
난 잠이 안 왔다.
이렇게 혼자서 여행을 한 것도 처음인데,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힘들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내게 긴장을 준 것 같기도 하다.
또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과연 내가 이 까미노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으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왔는지, 머릿속으로 까미노에 임하는 나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까미노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저 그날 밤 잠자리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던 것 같다.
침대는 생각보다 쾌적하지 않았고, 2층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도 컸고, 샤워하는 곳도 생각보다 깔끔하지 않았다.
6명이서 한 방에서 잠을 자는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구나…….
아, 완전히 새로운 경험인데?^^
와이파이도 제대로 잡히지 않아, 인터넷을 보거나 카톡을 하는 것도 메일을 열어보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뭐 꼭 간절하게 인터넷을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으나, 막상 이렇게 연락두절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인지, 나도 모르게 자꾸 와이파이가 잡히나 안 잡히나 체크해 보고 있었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에 일어나 밖에서 책을 읽었다.
건너편으로 가로등과 새벽을 가르는 자동차들이 보였다.
하늘도 올려다보았다.
많지는 않았지만, 몇몇 별이 반짝거렸다.
그렇게 난 낯선 곳의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새벽은 늘 내게 두근거림을 준다.
내가 이곳 생장의 알베르게에서 새벽 거리와 하늘의 별을 보게 되었구나…….
그렇게, 나의 까미노 첫날은 긴장과 두근거림 그리고 불면 속에서 시작되었다.
2015년 8월 15일, 생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