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정, 첫 만남, 반가워할 준비
쉴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출발이다.
알베르게에서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었다.
'카페오레'와 '간단한 토스트'가 전부였지만, 걷기에 앞서 이렇게 무언가를 함께 나누는 것이 날 기쁘게 했다.
첫날이라 모두들 설렐 것이다.
순례자라 이름 붙이게 될 우리들 모두가 기쁜 얼굴로,
“빵이 여기 있어요.”
“커피는 이곳에 있고, 잼도 더 드세요.” 하면서 마음을 낸다.
출발에 앞서 마음을 정하자고, 캐시가 말을 꺼낸다.
각자의 페이스가 있으니 각자의 페이스에 따라 걷자고.
다들 오케이 했다.
이제 각자의 역량에 따라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트레이시가 너무나 힘들어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힘든 사람이 나였다.
잔과 캐시는 씩씩하게 잘 걸었다.
드디어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캐시가 가끔씩 쉴 때 내가 따라가고,
잔이 쉴 때 내가 따라가고 하여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였으나,
결국은 트레이시가 함께 걷지 못하겠다고 했다.
조금씩 천천히 걸을 수는 있으나, 우리와 함께 페이스를 맞추기 힘든 데다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 사이에는 알베르게가 하나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예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냥 생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듯했다.
이후,
트레이시와는 영원히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아마도 내려가서 하룻밤 쉬고, 다음날은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자고 걸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보다 2-3일 뒤쳐져서 걸어올 것이었다.
잠시 뒤 우리 셋이 걸었다
산은 무척 광대했다
우리나라의 지리산에 비하면 그리 험하지 않으나, 그 광활함에 압도되었다.
길은 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잘 나아있었다
날도 좋아 햇볕이 강했지만 산들바람이 불어 흐르는 땀을 식혀주었다.
피레네는 피레네다웠다.
첫날이라서 배낭의 무게가 힘겹게 다가왔고, 왼쪽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해서 빨리 걷기가 힘들었으나 천천히 걷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너무나 아름다워 왠지 갑자기 혼자 온 것이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좋은 곳을 보면, 꼭 한번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과 하늘과 산과 양들을 구경하며 피레네를 흠뻑 받아들였다.
내 몸은 피레네의 아름다움을 다 흡수해 버렸는지,
발목이 아파도,
빨리 걷지 못해 일행과 헤어질 수 있다는 것도,
간식을 많이 준비하지 못해 배가 고픈 것도,
마실 물도 별로 없어 목이 마른 것도
힘들게 다가오지 않았다.
뭐가 좋은지, 내 얼굴의 보조개는 계속 깊게 들어가 있었다.
왼쪽 발목 통증이 시작되어 빨리 걸을 수가 없었을 때,
잔과 캐시가 계속 기다려 주었다.
기다릴 필요 없다고 계속 그냥 걸으라고 했다.
그러다 혼자 걸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근데, 괜찮다고, 자기네들도 마침 쉬고 싶었다며 날 기다려준다.
할 수 없이, 너무 힘들어 나 좀 쉬어야겠다고 했다.
아예 퍼질러 쉬면 먼저 출발하겠다고 할 것 같아서…….
그러면 나도 그냥 뒤처져서 천천히 걷다가, 그래도, 밤이 되기 전에는 도착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을 꺼냈다.
잔과 캐시는 그럼 배도 고프니, 점심이나 먹자고 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 훨씬 지난 때였긴 했지만,
원래는 좀 더 걸어 그럴듯한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좀 쉬니, 살 것 같았다.
또 잔이 앞서 걷다가,
캐시가 앞서 걷다가,
내가 도착하면 다시 또 잔이 걷기 시작하다가…….
드디어 꼭대기에 도달했다.
아, 피레네 정상이라고?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고?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고?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다
그곳에서 러시아 말을 쓰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출신의 러시아 여자들을 만났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어제저녁 한국인 가족들을 만났었다며 반가워했다.
그녀들은 피레네의 중간에 있는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하루 쉬고 걸어왔다며,
우리들 보고 대단하다고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서로 국적은 다르지만 러시아말로 통하는 친구사이라고 했다.
피레네는 자주 온다고.
포르투갈, 북부 길이 아름답지만 고되다고, 그래서 프랑스길이 가장 좋다고 한다.
연신 웃어주는 여유로운 풍채의 아줌마 친구 셋은 이후로도 며칠 더 만났다.
유럽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까미노가 그렇게 먼 여정은 아닐 듯싶었다.
"우리 이번 여름휴가 때 어디 갈까? 스페인 까미노 일주일만 걷다가 올까?"
"나, 이번에 좀 우울해, 잠깐 까미노 좀 다녀와야겠어."
이런 문장을 그저 아무렇게나 말해도 되는 사람들과
"산티아고 다녀오려고 해요."
"아니, 그 먼 길을 어찌 다녀오시려고요? 준비는 단단히 하셨나요? 대단하신데요? 저는 용기도 못 내겠어요……."
라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해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이번에 바람 좀 쐴까 해요. 제주도 한라산에 좀 다녀오려고 해요...."라는 것처럼
이 사람들은 "바람 좀 쐴까 해. 피레네 좀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것이 일상인 사람들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주도 밖에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작년에 백두산에 갔는데, 에델바이스를 못 보고 왔어. 올해는 좀 보고 와야겠어. 몸도 찌뿌듯하니 오랜만에 거친 등산 좀 하고 올까? 누구 같이 갈 사람 없어?"
"내가 같이 가주지. 일주일 휴가 받아놓고 어디 좀 다녀올까 했는데, 같이 백두산으로 등산하고 옵시다."
이렇게 백두산에 가는 것도 그리 쉽지 않다.
일본이고 백두산이고 우리나라가 아닌 데다,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접근하기가 힘들다.
유럽 사람들처럼 그저 버스터미널에서 표 하나 끊어서 프랑스에서 스페인을 오는 정도의 가벼운 여행은 아닌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참 외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북한과 통일이 되어 기차 타고 평양 가고 평양에서 러시아로 통하는 열차를 바로 탈 수 있다면,
그래서 러시아를 통해 몽골에도 가고, 티베트에도 가고,
내친김에 실크로드를 타고 몇 날 며칠을 달린 후 모스크바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게 이동수단이 바뀌는 것 하나로 삶의 질도 바뀌고,
삶의 질이 바뀌면 사고의 틀도 커질 것 같았다.
중국인이나 러시아인이 모두들 친구들 같을 것 같고, 나아가 터키사람들과도 친근하게 지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경을 넘어 러시아 말로 소통하는 아줌마들이
피레네는 자주 오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꼭대기에서 론세스바예스로 내려가는 길은 두 가지.
"길지만 완만한 길"과 "짧지만 경사가 급한 길"
둘 중에서 어느 길로 가겠느냐고 캐시가 묻는다.
내 의견을 따르겠다고.
내가 짧은 길로 가자고 했다
이후 책임은 '밍'이 지는 거라고 잔이 말해 모두가 깔깔대고 웃었다.
잔과 캐시는 내 이름을 '밍'이라고 불렀다.
이름을 발음하는 것을 어려워해 그냥 민이라고 부르랬더니,
'민'이라는 발음도 힘든지 계속 "밍"이란다.^^
하긴 나도 캐시(cathy)라는 발음을 현금(cash)처럼 할 수도 있는 거고,
잔(Zan)이라는 이름을 잔(Jan)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거니까…….
이때부터 우리들이 친근해지기 시작한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사실, 그전까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배려는 해도 예절을 지키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농담을 조금씩 해도 되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려오면서 짧지만 잔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악을 전공한다고…….
슬로베니아가 소련연합에 속해 있었고 그래서 자기는 역사에 관심이 있다고…….
나이는 20살이라고…….
어떻게 여기에 올 생각을 했냐니까 친구들도 다 자기에게 미쳤다고 놀린단다.
앞으로 나는 잔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다.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스탬프를 받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론세스바예스가 저 앞에 보이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내리막길도 사실 만만치 않았다.
하루에 25km를 걷는 일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피레네를 넘어서…….
물론 까미노의 첫날이라 들뜬 마음 때문에 힘든 줄로 모르고 걸었을 테지만,
마지막 내리막길을 걸을 때는 정말 언제쯤 쉴 곳이 나오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쉴 곳…….
한 몸 쉴 곳은 이때부터 내가 간절히 원하는 곳이 되었다.
한 몸 쉴 곳, 잠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쉴 곳도 좋고,
나무 그늘이 있어 잠깐 땀을 식힐 수 있는 곳도 좋고,
샘이 있어서 목을 축일 수 있는 곳도 좋고…….
쉴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그렇게 내게 감동을 준 쉴 곳이었다.
침대를 배정받고 가보니, 내 침대에 네덜란드 남자가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잘못 배정받은 것 같다고…….
함께 등록대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오늘 두 사람이 같이 잠자는 보너스에 당첨된 거라며 담당 수사님이 너스레를 떤다.
어쨌든 그 남자는 한국인 친구가 있다며 만나서 반갑다고 했다.
나도 그 네덜란드 남자도 그렇게 한 침대를 배정받아 서로 난처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된 것조차 서로를 알게 해 준 귀한 인연처럼
그 상황을 서로가 너무나 기쁘고 신나게 받아들였다.
어떻게 알게 되든 까미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반가웠다.
걷는 길에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서서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하고 말을 걸어와도 반갑고,
양들이 길을 막고 있어, 잠시 기다리는 데 함께 기다리는 옆 사람의 얼굴을 봐도 반갑고,
나는 걷고 옆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쌩쌩 바람을 가르는 사람이 "부엔까미노"하고 외치는 것도 반갑고,
‘어머, 아까 당신과 같은 국적의 사람을 만났어요! 하면서 같은 국적의 사람을 또 만나도 반가운 것이다.
그렇게 만나면 반가운 것은 그 마음속에 반가워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는 상태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얼마 전 새로 지었다더니 정말로 깨끗하고 샤워실도 깔끔하고 편리했다.
어제 생장의 뮈니씨빨 알베르게에서 아, 하고 한숨을 쉬던 때를 돌아보니 이곳은 호텔과 같은 수준이어서
앞으로 거치게 될 알베르게는 또 어떤 곳일까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기에 앞서 아래층에 있는 여자에게 빨래하는 곳을 물어보니 잘 모른다는데 왠지 아파 보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어디 아프냐고 했더니 몸이 안 좋단다.
많이 피곤하다고…….
그럼, 내가 꿀을 주겠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자그마한 꿀을 사가지고 왔었다.
그랬더니 괜찮다고 사양하며, 차라리 내일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괜찮으면 저녁 같이 먹자고 하는데 일행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이후 혼자 다니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깼을 때 어떠냐니까 별로 안 좋아서 늦게 출발하겠다고 한다.
그럼, 먼저 출발하겠다면서 꿀을 주었다.
커피를 마시며 거기에 타 달란다.
듬뿍 타주었다.
무척 고마워했다
출발하다가 흘끗 그녀가 보였다.
알베르게 한쪽 구석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모니카.
이탈리아에서 온 여성이다.
나보고 페이스 북을 하냐고 물어봤는데, 안 한다고 하니 아쉬워했다.
그녀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체구가 통통해서 걷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고,
이따금씩 혼자서 구석에 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니,
아마도 마음이 아파 위로차 떠나온 길은 아니었을까 궁금해졌다.
함께 저녁을 먹어주지 못한 게 좀 미안했다.
천천히 걸을 그녀…….
앞으로 우리가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이란 아쉬움을 담고,
그렇게 그녀와 헤어졌다.
저녁을 먹기 전 샤워를 마치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 로비와 넓은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나랑 같은 외모의 여자 두 명이 보였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아니요......"
"제가 한국인인데요."
갑자기 건너편에서 어떤 남자가 말을 건다.
"아이고 반가워요~"
그 남자의 이름은 이성진
회사에서 보내줘서 미션처럼 걷고 있다고 죽을상이다.
그런데 조금 전 말을 걸었던 두 여자가 간식을 먹으면서 나보고 조금 먹으란다.
난 한국 출신이다.
난 홍콩출신이다.
난 일본 출신이다.
이렇게 우리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같은 동양인이어서인지 서로가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내일 보자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저녁미사가 있다고 해서 미사를 보았다.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께서 순례자들은 앞으로 나오라 하셨다.
그리고 축복의 기도를 올린 후,
각 나라의 말로 "사랑합니다"를 들려주었다.
한국말로 사랑합니다라고 해주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좋은 순례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례의 길에 들어서길 잘했다.
한국에서도 미사는 잘 보지 않는데,
이렇게 순례 길에 들어선 첫날, 축복의 기도를 들려주는 론세스바예스 성당의 미사로 인해
나는 까미노 길이 더 좋아졌고, 더불어 스페인이란 나라에도 애정이 생겨났다.
피레네 롤랑의 샘물 맛이 계속 남는다.
너무 힘들어서였을까?
정말 시원하고 달콤했다.
너무나 맛있어서 롤랑의 샘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계속 캐시와 잔과 함께 다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일단 같이 지내보자.
저녁에는 잔이 마그네슘을 주면서 피곤할 때 도움이 된다고 먹어보라고 하여 먹었다.
나를 챙겨주는 잔과 캐시가 고맙다.
이렇게 나의 첫 까미노를 마쳤다.
삶의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보낸 것 같다.
피레네를 걸을 때는 그저 걷기만 했다.
오로지 생각한 것은 언제 정상에 도달할까?
내리막길에서는 언제 알베르게가 보일까?
하는 것이었다.
‘이 거대하고 장엄한 피레네 산맥에서 까미노를 시작한 이 폭풍 같은 감동을 느껴볼까?’
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걸었고,
그저 사람들을 만나면 웃어주었고,
그저 먹을 것이 있으면 맛나게 먹었고,
샤워할 곳이 나오자 샤워하고,
밤에는 역시 잠이 오지 않아도 그저 누워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2015년 8월 21일 론세스바예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