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어깨가 아파요
길은....
사람을 만나라고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는 쾌적하긴 했지만, 문제를 품고 있었다.
한 방에 40-50명이 자고, 그러한 방이 층 별로 있는 곳이라면 흔히 생길 법한 문제.
그중에 코 고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었고,
밤 중에 화장실에 가는 사람이 있고(나 같은 사람),
그러다 보면 여기저기 선 잠든 사람들이 깨어서
또 너도 나도 화장실에 가고…….
그렇게,
잠을 설치게 된다.
불면으로 시작한 까미노의 첫날에 이어 둘째 날도 나의 밤 생활은 그렇게 평안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침에 만나서는
"어젯밤에 코 고는 소리 들었어?"
"응 들었어. 그 사람 숨 넘어가는 것 같았어……."
라면서 그냥 일상인 양 깔깔대며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걷기가 힘들었다.
어깨가 문제였다.
어제는 발목이 좀 시큰 거렸는데, 오늘은 어깨가 너무 아프다.
배낭을 메는 것이 너무나 힘들 정도였다.
잔은 물집이 많이 생겼단다.
나는 어깨가 너무 아파 어깨에 수건을 대고 걸었다.
좀 괜찮은 듯했으나, 이내 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니,
내 몸 또한 익숙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현상일 거라고,
며칠 더 지나면 내 몸들도 그때는 포기하고
더 이상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될 거라고 나를 타일렀다.
그리고 참았다.
또 보조개를 깊이 들여보내면서…….
내가 원래 하려던 것들이 있었다.
길을 걷는 거창한 목표나 걸은 후 나는 이렇게 달라지겠어…….
하는 결연한 마음가짐은 아니더라도,
까미노 중에 난 이런 것들은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었다.
일단 가능하면 매일 글을 쓸 것.
시간이 나면 책도 읽을 것.
가족들,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며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쓸 것.
그리고 세상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볼 것.
하는 것들이었다.
그때에는 걷는 일을 쉽게 생각해서,
오전 나절 걷고 2시쯤부터 시간이 날 테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며,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했는데,
걷고 보니 참으로 야무지고 거창한 할 일들이었다.
그저, 걷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힘든 데,
매일 글을 쓰고 책 읽고 하는 일들은 정말 쉽지 않다.
많은 것들을 다 할 수도 없고,
또 다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면서,
욕심을 대폭 줄이자고 결심했다.
다만,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의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캐시와 잔과 일행이 되어 걷고 있는 중이니까.
캐시의 영어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말도 천천히 그리고 쉽게 해 주어서 고마웠다.
캐시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67세라는데 걷기도 나보다 더 잘 걷고, 옆 사람을 아주 잘 챙겨준다.
나도 챙김을 받고 있다.
어깨가 아프다니 수건이 어깨에서 빠져나오면 다시 끼워주고, 물이 떨어지면 물도 주고…….
잔의 발에 물집이 여기저기 생겨서 힘들어하니,
마치 간호사처럼 친절하게 잔의 발을 보살펴 준다.
캐시는 물집에 대비를 한 것인지,
연고와 붕대와 밴드, 가위 등 없는 것이 없었다.
혹시라도 물집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준비해 왔다고 했다.
내 체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 것이 드러났다.
빨리 걷질 못하겠다.
걷다 보면 늘 뒤처진다.
역시 서양 사람들이 체력이 좋은 건지…….
그런데 뒤쳐질 때마다 한참 뒤에 꼭 기다려준다.
참 고맙다.
오늘은 이상하게 어제보다 더 힘들었다.
어쩌면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어제는 첫날이었고 들떴었고 이미 예상을 했었다 어려울 것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쉬울 것이라 예상했는데 막상 걸어보니 많이 힘들었다.
내리막길이 많았다.
내리막길에서 내 등산화가 위력을 발휘했다.
캐시도 잔도 매우 조심스럽게 넓은 바위 길을 제쳐두고, 흙길을 걸었다.
그런데, 내 등산화는 미끄러운 바위 길에서 끄떡없었다.
마침 그때 스페인 사람들이 몰려들어 걷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친구들인 듯했다.
그렇잖아도 친구들끼리라 말이 많은데,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는 더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마침내 한 여자가 거의 못 걷고 있었다.
모두들 자기 앞가림을 하느라 옆 사람을 못 도와주고 있는 형편이었다.
나는 그냥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으라고 했다.
내 튼튼하고 안전한 등산화 덕분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경사가 큰 내리막을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내 도움이 필요한 분에게 도움을 드린 것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분이 갑자기 큰 소리로 일행들에게 소리를 친다.
아마도,
"이 분 때문에 내가 무사히 잘 내려왔어. 나 잘 내려왔어..."
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감사하다면서 스페인 식으로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다면서,
내 양 볼에 그녀의 볼을 맞춰준다.
그리고 몇 번이나 “그라시아스!”를 외친다.
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다.
캐시도 잔도 흐뭇하게 웃는다.
이렇게 글 쓰는 시간은 좀처럼 생겨나지 않고 책 읽는 시간도 잘 생겨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참으로 날 들뜨게 해 준다
어느 정도 김장감이 생기기는 하지만…….
그저 이 느낌을 일단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드문 아시아인 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많은 이들이 날 쳐다보기도 하고, 날 기억해 주는 것 같다.
아침에 독일인 남자 2명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있는데, 자꾸 누군가 쳐다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한국사람 맞느냐고. 맞는다고 했더니, 장갑 하나 잃어버리지 않았냐고 한다.
난, 장갑을 잃어버렸는지도 몰랐다.
노란색 장갑 맞느냐고…….
그렇다고 했더니, 오늘 길을 걸으면서 한 짝을 주웠는데, 간직하고 있다면서 만나면 주려고 했단다.
어떻게 알았냐니까 아침에 사진 찍어줄 때 장갑을 벗는 걸 봤단다.
숙소에 가서 보니, 정말로 한 짝을 잃어버렸다.
아침엔 장갑을 끼었는데, 낮에 더워서 벗다가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잃어버린 장갑을 찾았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근데, 유감스럽게도 이후 이들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것이 까미노인 것 같다.
다시 만날 것 같은 사람을 못 만나기도 하고,
이제는 못 만나겠지... 하고 체념한 사람들 만나기도 하고…….
걸으면서 나는 그런 경험을 참 많이 했다.
우리는 삶을 길이라고 종종 말한다.
길을 걷고 보니,
길이 곧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정말 했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반갑게 웃으며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다 우연히 다시 만나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점점 더 깊이 만나다 보면 다투기도 하고, 의견충돌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길은....
사람을 만나라고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길을 걷기로 한 것은....
사람들을 만나라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2015년. 8월. 22일. 쥐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