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차, 드디어 팜플로나
아마도 내 전생에 이 친구들과 뭔가 연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다 같은 나라에서 살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들은 같은 동네에서 자랐거나,
아니면 혹시 우리들은 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걷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까미노가 쉬울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800km가 얼마 만한 거리인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으로 걷는 거리다.
스페인으로 오기 전에 하루 2시간씩 매일 걷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뭐, 그것보다 조금 더 2배 혹은 3배 정도 더 걷는 거라며,
남들 다 걷는 거라며,
나도 당연히 잘 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 2시간이면 8km 정도이고,
하루 20km 전후로 걷는다고 보면,
평소 걷던 시간의 2배보다 조금 더 걷는 것이라고 쉽게 판단했다.
그런데, 배낭을 메고 2시간을 걸어봤어야 했다.
배낭 없이 내 한 몸 걷는 것은 하루 12시간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낄 만큼
아니, ‘하루 종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배낭은 나의 걸음에 적잖은 고통을 주고 있었다.
배낭의 무게가 곧 자기 삶의 무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배낭의 무게가 곧 자기의 욕심의 무게라고 하기도 했고,
배낭의 무게가 곧 자기가 그동안 지은 죄의 무게라고도 했다.
떠나올 때 배낭의 무게와 관련해서 많은 글들을 읽었다.
사실, 내 배낭이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던히도 고민을 했기 때문에
그리 무거운 것은 아니었으나,
배낭이 내게 적합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내 어깨가 유난히 약할 수도 있었다.
배낭이 유난히 내 어깨를 괴롭히는 것은,
내 짐들이 내 몸에 잘 맞지 않아서인 것은 아닐까?
나는 마땅히 이 짐들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와 잘 맞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까?
비약해서 생각해 보면,
내 짐을 내 삶의 무게라고 보면,
이제까지의 내 삶은 혹시 나와 맞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당치도 않은 주제에 너무 많은 짐을 메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어깨는 그리 튼튼하지 않은데,
거기에 맞게 적당히 삶의 짐을 메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어깨가 덜 아플까, 하는 생각만 하면서 걸었다.
옆에 있는 친구들이 괜찮으냐고 물어보면,
가능한 한 웃으면서 견딜만하다, 내일이면 익숙해질 거야,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만 끙끙댔다.
캐시의 배낭도 잔의 배낭도 무게만 따지자면 만만치 않았다.
특히 캐시는 거의 완벽하게 짐을 챙겼기 때문에 (방수복, 패딩, 의료용품 등) 짐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깨는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저 걷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잔은 아직 젊은 나이라 그런지 배낭의 무게 따위는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태도로 씩씩하게 걷는다.
이따금씩 잔이 일그러진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잠깐씩 쉬면서 등산화를 벗어 조심스럽게 양말을 벗겨내면,
물집들이 여기저기 잡혀있었다.
어제 오후부터 물집을 터뜨리고 밴드를 붙이고 했지만, 많이 고통스러워했다.
지나는 길에 젊은 여자가 우연히 잔의 발을 보더니,
자기가 갖고 있는 '컴피트'를 주며, 붙여보란다. 금방 좋아질 거라고…….
고마웠다.
오늘 저녁 팜플로나에 도착해서 잔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약국에 가는 일이다.
가서, '컴피트'를 사는 일이다(^^)
이렇게 '물집' (blister)이란 단어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아마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였던 듯싶다.
지나다 사람들을 만나면
"올라! 부엔 까미노"라고 간단히 말하며 지나치기도 하지만,
일단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말을 트고 나면 이내 따라다니는 문장은,
"몸은 괜찮니? 물집은 없니?"라고 이어진다.
물집이 없으면, 다행이다.
있으면, 컴피트라는 밴드가 있는데, 그게 아주 좋아!라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이어진다. “우리 일행 중에는 물집이 10개나 잡힌 친구가 있었어.” 하면서 이야기는 길어진다.
그렇게 물집이란 단어를 통해서 친구들은 서로가 대화를 하고,
웃음을 나누고, 좋은 정보를 교환하고 나중에는 "우리 저녁 같이 먹을래?"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또다시 "부엔 까미노"로 하루 인사를 시작하고 또 걷기 시작한다.
드디어, 팜플로나.
잔과 나는 갑자기 환호하며 두 손을 번쩍 들면서 신나게 웃었다.
나는 어깨가 아파서 고생하고,
잔은 물집 때문에 고생하면서,
겨우겨우 걸어왔기 때문일까?
저절로 환성이 나왔다.
정말 기뻤다.
오늘도 힘겨운 까미노를 마쳤다.
그렇게 작은 결과들이 아마도 계속 이어질 거라 기대해 보았다.
그렇게 작은 완성들이 이어지다 보면,
아직은 까마득하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겠지,라고 소망했다.
내 삶의 무게도 그렇게 조금씩 가벼워질 때가 있겠지....
사실, 이곳까지 이렇게 잘 걸어온 것은 잔과 캐시 덕분이었다.
더 천천히 걷고 싶고,
더 많이 쉬고 싶었지만,
좀 더 속도를 내고,
쉬는 것을 조금씩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친구들의 격려 덕분이었다.
친구들 때문에라도 나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친구들 때문에라도 조금 더 걸은 후 쉬자 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정말 감사한 친구들이다.
하지만, 팜플로나에 도착해서는 내일부터 더 이상 이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심을 하고 말을 했다.
" 나, 이곳에서 하루 쉴래요. 당신들은 먼저 걸어도 돼요."
" 그래? 난 시간이 많은 사람이야. 나도 하루 쉬지 뭐."
" 그래? 나도 물집 치료하려면 하루 쉬는 게 좋겠어요. 저도 쉴게요."
아, 이런 친구들이라니…….
아마도 내 전생에 이 친구들과 뭔가 연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다 같은 나라에서 살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들은 같은 동네에서 자랐거나,
아니면 혹시 우리들은 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이 이들과 다음날 하루 팜플로나에서 쉬기로 하면서,
여유로운 저녁을 갖게 되었다.
저녁을 먹으며 무려 3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누었다
각자 나라의 식사예절부터 시작해서,
패스트푸드의 문제점에 대해,
자본주의에 대해 그리고,
나의 대안학교와 환경문제 나아가 세계의 인권문제까지…….
모든 걸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대화였지만 어렴풋하게 대화에 끼어드는 것만 해도 즐거웠다.
그제 만났던 홍콩친구가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었다.
나도 고마워서 그 친구에게 노란 리본을 하나 주었다.
난, 이번에 노란 리본을 50개 정도 가져왔다. 나의 까미노 친구들에게 주려고…….
무척 고마워했다.
일본인 친구에게도 하나 주니, 고마워했다.
아무 생각 없이
현재를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가족도 학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나의 까미노에 몰두해 있을 뿐이다.
그저, 걸을 뿐이다.
그저, 걷는 길에 만나는 친구들에 집중할 뿐이다.
2015년 8월 23일 팜플로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