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차, 팜플로나에서 어슬렁거리기
하루를 쉬니,
이제는 못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늘은 걷지 않고 팜플로나를 한 바퀴 돌았다
원래 알베르게는 순례자들만 머물 수 있고, 몸이 아프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하룻밤만 머무는 것이 원칙이다.
알베르게 뮈니시빨( 시립 게스트하우스 )은 이 원칙을 매우 철저히 지킨다.
하루 정도 쉬다 보면 편안함을 더 찾게 될까 봐 그렇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번에 묵은 알베르게에서는 짐을 짐 보관함에 두고, 하루만 더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아침 일찍 나와 팜플로나 광장을 돌아 시내를 걸었다.
아침으로는 밀크 티와 빵을 먹었다.
오전은 많이 쌀쌀했다.
그저 약간 쌀쌀한 팜플로나 시내를 목적 없이 슬렁슬렁 걷는 것이 좋았다.
캐시와 잔도 그렇다고 한다.
아름다운 도시였다.
쾌적하고 깨끗하고 청아한 하늘과 맑은 공기가 우리들 기분을 맑게 해 주었고,
시내 도시계획도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걷는 거리에는 차도 별로 없고 주차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맘껏 걷기에 좋았다.
월요일이라 상점들은 오후 늦게야 문을 열었다.
10시쯤 되어 캐시의 유심 칩을 사기 위해 보다폰 매장에서 좀 시간을 보내다가, 관광안내센터로 갔다. 뮤지엄은 월요일이라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근처 교회를 돌아보기로 했다.
교회들은 대부분 비슷한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었으나, 각 교회마다 고유한 이야기와 특성을 갖췄다.
팜플로나 대성당은 입장료를 받았는데, 일반인들은 6유로, 순례자들에게는 할인을 해 줘서 3유로였다.
교회의 자체 박물관까지 가지고 있었고 박물관에는 정말 진귀한 십자가상과 그리스도상, 순례자상 그리고 당시의 부엌과 가든의 모습을 재구성해 놓아 중세시대 성당의 모습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서너 군데 교회를 돌고 나니 마켓이 보였다.
캐시가 자기는 시장구경하는 것이 취미라고 하면서 둘러보자고 했다. 같이 둘러보다가 점심을 공원에서 먹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모두들 좋단다. 햄과 치즈, 바게트 그리고 음료수와 요구르트, 과일 몇 개를 사서 근처 공원으로 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 바게트에 햄과 치즈를 넣고 요구르트와 주스를 곁들여 맛나게 먹었다. 캐시가 피크닉을 제안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지만, 사실 잘 받아들여준 친구들에게 내가 더 많이 고맙다.
우리가 앉은 벤치 건너편에 한 동양 사람이 동양악기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구성지면서도 아름다워서 우리가 먹는 점심은 세상 무엇보다 행복했다고 할 수 있다.
따뜻한 햇살과 평화로운 공원벤치 그리고 고운 음률과 맛난 음식들…….
팜플로나에서의 이 피크닉은 이후 우리가 맛난 사람들에게 자랑삼아 들려주는 이야깃거리로 남았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엊그제 인사한 한국인 가족들과 이탈리아에서 온 모니카를 다시 만났다.
하루를 쉬니, 이제는 못 만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도 그럴 것 같다.
만약 누군가가 그립다면 잠시 멈춰보는 것도 좋겠다.
늘 앞으로만 가려고 하지 말고.
모니카를 만난 건 정말 반가운 일이다.
힘들게 왔단다. 막 도착한 때라서 샤워하고 나중에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
팜플로나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상점이 있었다.
이 상점에는 정말 순례자들이 필요로 하는 온갖 것들을 다 파는 종합쇼핑센터 같았다. 순례자 관련 도서와 세면도구, 의약품들부터 도보에 필요한 온갖 도구들과 의류용품들 그리고 알베르게 숙소에서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식재료까지도 판매하고 있었다. 이 매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나는 여기서 책을 한 권 샀다.
사실 짐의 무게를 줄인다고 산티아고 관련 책을 사서는 집에서 읽고, 루트와 관련한 책은 사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다운을 받았으나 뭔 일인지 스마트폰으로 책을 열 수 없었다. 인터넷 카페에 접속하려고 했으나, 와이파이가 약해서인지 인터넷을 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걷다 보면 도보 중에 루트를 확인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와이파이가 되는 지역은 없었다.
돌아보니, 책만큼 유용한 도구가 없었다.
그 유명한 John Brierley의 Camino de Santiago라는 책을 한 권 샀다. 24유로에 따끈따끈한 2015년판을 샀는데, 두고두고 잘한 행동이었다.
이 책은 순례자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들고 다니는 책이었고, 각 루트별 알베르게와 카페들 그리고 몇 가지 루트마다의 특색 그리고 간단한 스페인어와 지역별 둘러볼 곳까지 작고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고, 핸드북 형태였기 때문에 이 책 때문에 배낭이 더 무겁고, 책 때문에 힘들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유용한 나의 까미노 친구가 되었다.
까미노를 가고자 한다면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다.
반드시 간단한 핸드북 형태의 가이드북을 가져가라고…….
저녁엔 파에야를 시켜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또 밤 10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맥주 이야기와 음식이야기, 음악이야기에서 주민증에 관한 것 그리고 아나바다 이야기까지.
정말 우리들은 수다쟁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니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까 낮에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오후 늦게 둘러보니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많이 힘든 것 같아 그냥 지나쳤는데, 이렇게 우리들은 또 내일아침 헤어지겠구나, 이제는 정말 못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팜플로나는 그렇게 도보 중 하루를 더 진하게 속 깊게 걸어본 내 맘 속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8월 24일, 팜플로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