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in Egg's Blue

#14일 차, 까미노의 가을

by 아샘
도중에 중단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이 함께 하길.



이동 : Burgos --> Hornillos del Camino




아침 일찍 마르크를 만났다.

어제 우리는 같은 알베르게에 있었던 거다.

너무나 큰 알베르게라서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반가워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얼굴빛이 별로 안 좋아 보였다.


무슨 일이 있냐니까, 어제부터 오른쪽 발목이 안 좋아 오늘 프랑스로 귀국한다고 한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심각한 상태여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많이 아쉬웠다.


무사히 돌아가서 잘 치료하길 바란다.


사실,

산티아고를 무사히 완주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이렇게 중간에 그만두어야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오늘까지 무사히 이곳까지 걸어온 것에 나 자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도중에 중단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평안이 함께 하길 기도하고 싶다.




오늘은 부르고스에서 hornillos del camino까지 걸었다.

21km 정도로 그리 어려운 코스도 없었다.


9월이 되니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아침에는 두꺼운 스웨터를 입는다.

속에도 긴소매 티셔츠를 입는다.

지난주에 비가 온 날이 있었지만, 이곳 스페인의 가을은 정말 푸르다.


기온차가 있긴 하지만 걷기엔 아주 좋은 날들이다.

8월까지는 땀이 몹시 흐르고,

갈증도 심해서 한낮에 걷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요즘은 정말 화창하고 쾌적한 하늘과 햇볕과 함께 걷는다.

아침에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감탄을 했더니,

캐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푸른색을 Robin Egg's Blue라고 부른다고 가르쳐 준다.




부르고스부터 걷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걷다 보니 새로운 얼굴들이 보인다.

아마도 부르고스부터 걷기 시작한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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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중에 한 떼의 양을 몰고 다니는 양치기 (소년이 아니고) 아저씨를 보았다.

마을 골목길에 때 아닌 양 떼가 가득하니 모두들 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는다.

걷는 길에 우리는 풀을 뜯어먹는 소들과 말들 그리고 양 떼들을 참 많이 만났었다.

이들의 목에는 딸랑딸랑 방울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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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풀을 뜯는지 금방 알 수 있도록 해 걸어놓은 모양이었다.

대규모 농장도 아니고,

그저 작은 언덕배기에서,

그저 작은 뒷마당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는 그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잔의 물집도 한두 개씩 줄어가고,

캐시는 이제 배낭을 어깨에 잘 조이는 방법을 알아냈다 하고,

나도 어깨통증이 여전하긴 하지만 걷는 것이 편해졌다.

이제는 거의 늘 잔에 이어 두 번째로 걷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그렇게 까미노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 우리가 찾아간 알베르게는 조금 야박한 곳이었다.

보통은 침대시트를 무료로 주는 데 1유로를 받고 팔았다.

모두들 마음이 찜찜해서 얼굴이 좀 굳었다.


어디든 그렇게 야박한 인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만나지 않을 사람에게라도,

친절과 정성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 9월 3일, 오르니오스 델 까미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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