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의식을 치르고

# 13일 차, 부르고스! 부르고스!

by 아샘
길을 걸으며, 쉼터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린 늘 쉼터를 그리워한다.
아름다운 쉼터, 정성이 가득한 쉼터를 만나면 참 고맙다.


이동 : San Juan de Ortega --> Bourgos




오늘은 부르고스까지 26킬로미터를 걸었다.


무심코 자다가 일어나니 7시여서 깜짝 놀랐다.

오늘은 다들 많이 늦었다.

어제 좀 무리해서 걸었기 때문에 피곤했을 것이다.


엊저녁 작은 교회에서 드린 미사의 감동이 여전히 남아있다.

느지막이 걸어 첫 마을 Ages에 도착해 아침을 먹는데,

직접 갓 구운 빵과 커피 그리고 아름다운 테이블 장식과 표지판이 우릴 감동스럽게 했다.


이제는 대놓고, 잔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사실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우리가 걷는 길은 순례자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머무는 마을도 대부분 순례자들이 쉬는 곳이다.


배낭 속에 물이나 과일 그리고 과자 같은 간단한 간식은 넣고 다니지만,

기본적으로 배낭이 무겁기 때문에 먹을 음식을 잔뜩 가지고 다닐 수도 없는 데다,

1-2시간 걷고 나면 본능적으로 쉴 곳을 찾는다.


그래서 타운을 기다리고,

타운에 들어가면 바(Bar)나 카페를 찾는다.


때로는 화장실이 급해서 찾기도 한다.

그래서 바나 카페 또는 슈퍼에는 언제나 순례자들이 가득하다.

P20150902_090131363_1F3D04E9-C58C-4DF6-B426-2C1454B10BEF.JPG

카페를 운영하는 스페인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들어와 따뜻한 한 잔의 카페콘레체와 바게트 또는 크루아상을 팔면서 살아갈 것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카페콘레체를 1.2유로에,

크루아상도 1유로 정도에,

맥주도 1유로 정도에 판다.


길을 걸으며, 쉼터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린 늘 쉼터를 그리워한다.

아름다운 쉼터, 정성이 가득한 쉼터를 만나면 참 고맙다.


오늘 우리가 머무른 쉼터는 그렇게 고마운 쉼터였다.




길 중간쯤 산 정상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그리고 커다란 십자가와 그 주변으로 돌무더기가 있었다.

까미노의 중반을 지나 아스토르가를 지나면

큰 철 십자가가 있는데,

보통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성야고보를 기리며,

자신의 까미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곤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온 돌멩이를 그곳에 놓고 기도한다고…….


나도 우리 집에 있는 돌멩이 몇 개를 가져왔다.

그런데 난 이곳 십자가 밑에 나의 돌멩이들을 놓기로 했다.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내가 까미노 중 만나는 이들과 진심을 나누길,

그리고 무사히 까미노를 경험하기를 바라며,

나의 돌멩이들을 그곳 십자가 밑에 두었다.


P20150902_104355355_419386E8-96AC-4E8A-AA34-F288279C05D7.JPG

다음에 만날 철십자가에는 노란 리본을 묶을 예정으로…….


내가 기도드리는 동안 잔과 캐시는 멀리서 지켜봤다.


작은 의식이었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후 갈림길이 나왔다.

산티아고 길은 하나의 길만 있지 않았다.


우회로가 간혹 있었다.

도로를 따라 걷고 싶으면 그렇게 직선으로 걷고,

물가를 따라 걷고 싶으면 조금 우회해서 갈 수도 있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 거친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오늘 우리는 물가를 따라 걷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P20150902_095043609_FB4DF4B9-EA1C-4D0E-8C11-7A80DD1EFE5D.JPG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도로를 따라 걸었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한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잔은 또 뛰어난 감각으로 계곡 길을 잘 찾아냈다.


하지만,

그 길은 생각보다 길었고,

우린 조금씩

지쳐갔다.


겨우,

부르고스에 도착했다.


또,

고생고생해서 우리의 알베르게 뮈니시빨을 찾았다.




부르고스,

부르고스!!


걷는 내내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산티아고가 아니고, 마치 부르고스인 것처럼,

부르고스에 도착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부르고스에 도착한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또 알베르게를 찾느라고 에너지를 쓰다 보니,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거의 6시가 다 되어갔다.

그곳 알베르게는 6층 건물이었는데,

일찍 온 순서대로 쾌적한 층에 쾌적한 방에 배정되었다.


1,2층은 식당과 부엌도 가깝고,

한 방에 4개의 베드가 있었는데,

우린 6층에 배정되었다.

그곳은 방도 없었다.

그저 넓은 복도 같은 곳에 침대가 60-70개 정도가 있었고,

우린 거의 마지막 침대에 배정되어 화장실이 바로 옆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그래도 고마웠다.

쉴 수 있는 베드가 있어서…….




그런데 좀 떨어진 곳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유리였다.

우린 깜짝 놀랐다

당연히 그녀가 우리와 같은 부르고스에 지금 이 순간에 있을 거라고 상상을 하지 못한 터였다.

그녀는 오늘 거의 40km를 걸었고 내일은 하루 쉴 예정이란다.

유리가 너무나 대단해 보였고,

동시에 유리를 다시 만난 것이 너무나 기뻤다.

우린 마치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이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포기하고 있던 연인이,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갑게 서로 인사했다.


그리고 함께 부르고스의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


부르고스의 성당은 무척 컸다.




하지만 몸이 힘들어서인지,

팜플로나 대성당만큼 애착이 가지 않았다.


P20150902_191509766_1F40378B-4338-42CB-82CA-69A36D0BDA69.JPG

부르고스는 대도시라

순례자들을 위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다.

그곳에서 카키색 모자를 하나 샀다.

엊그제 알베르게 창문에 널어두었던 모자를 잃어버렸었는데,

그냥 견딜까 하다가 낮의 햇볕이 강해서 모자가 필요했다.


피곤한 하루였지만,

그렇게 외치던 부르고스에 우리가 있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2015년 9월 2일, 부르고스에서

이전 15화스페인이 좋아지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