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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애 Sep 18. 2021

도시락에 피드백 주는 남자

내 사랑은 끝이 난 것일까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 남편의 아침을 챙기고, 점심 도시락을 싸는 호주의 직장인이자 주부다. 아침이라 해봤자 별 거 없다. 국에다가 흰쌀밥 그리고 아침에 먹으면 좋다는 삶은 계란 한 알이다. 있으면 반찬 한두 가지를 곁들인다. 복병은 점심 도시락이다. 온도 보존을 위해 출근 직전에 싸주는데, 싸야 할 통들이 6개나 된다. 원래는 밥, 반찬통 2개 구성의 3단짜리 보온도시락이지만, 겨울이 오면서 따스한 국 한 사발 곁들여야 할 것 같아 470ml짜리 보온통을 하나 샀다. 거기에 플라스틱 물 사 먹지 말라고 싸주는 물병, 겨울이라 추우니 따뜻한 차 마시라고 담아주는 보온 텀블러까지 해서 기본 구성이 여섯개. 거기에 과일 디저트까지 챙겨주고 싶은 날이면 총 일곱 개가 된다. 읊기만 해도 숨이 차는 이 구성은 채우기가 무섭게 또 비워져 오고, 그럼 또 닦아내야 하고, 마르면 다시 또 채워내야만 한다.


채우는 건 기계적으로 할 수 있다. 다만 무엇을 채워야 할지 생각해내는 기획 단계부터 시작하자면 더 고역이다. 아이디어 고갈에 부딪히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뭘 싸나 온라인 아이디어 동냥을 다니다 보면 자괴감에 빠진다. 와. 내가 싸는 건 곽밥이요, 그들이 싸는 건 아트구나. 그들의 도시락은 형형색색 색맞춤은 기본이고, 탄단지 영양소 균형에도 신경쓰는 일명 스마트 도시락이다. 그러고 나면 기운이 빠져 더 하기 싫어지는 그 이름, 도시락 싸기. 아무래도 내 평생의 과업이 될 것 같다.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하... 지친다.'

사실 그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맞벌이고, 점심은 각자 해결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그는 나보다 몇 배를 더 잘 벌어오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인다. 게다가 대장암 수술을 받은 이력이 있는 그가 점심 도시락을 싸주지 않으면 손댈 간편 음식들은 몸에 얼마나 안 좋을지 안 봐도 뻔했다. 그러면 나는 또 머리를 굴려보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퇴근해서 뱉어내는 것은 빈그릇 만이 아니다. 피드백도 함께 돌아온다. 오늘은 짰다, 싱거웠다, 밥 양이 적었다, 반찬이 어쨌다 저쨌다... 나도 사람인지라 개선해야겠다 싶은 마음만 드는 게 아니다. 내가 이 고생을 해서 채워내는데 고작 그거 하나 못 덮어주고 불만을 토해내나 싶어 서럽다. 그리고 아직은 무자식이지만 여기에 도시락 갯수가 두개, 세 개로 늘어나기라도 한다면...? 나는 아마 까무러칠 것이다. 이럴 땐 급식이 그립고, 구내식당이 사무치고, 한국이 간절하다.


그와는 연애시절까지 합해서 10년 차다. 도시락을 싸다가 지치다 못해 이젠 사랑이 뭔지조차 모르겠다. 사랑은 희생인 줄 알았고, 그러면서도 기쁨을 느끼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 희생이 더 이상 기쁘지 않고 버거워질 때, 내 사랑은 끝이 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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