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짜임새
3. 힘이 있는 구성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사실이 있는지
사건과 감정을 끝까지 응시하는 힘이 있는지
의도와 메시지가 명확한지
최근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잠’이라는 단편소설 중 한 대목을 소개할게요.
그렇게 해서 나는 잠을 못 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일은 없다. 요컨대 나는 인생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밤 열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의 시간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하루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그 시간은 지금까지 잠이라는 작업에 - ‘쿨다운하기 위한 치유행위’라고 그들은 말한다 - 소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나만의 것이 되었다. 다른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내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나 좋을 대로 쓸 수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으면서.
주인공은 불면증을 겪게 되는데요, 잠이 부족해서 몸이 쳐지거나 정신이 멍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생기가 돌고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요. 어렸을 때 정말 좋아했던 것처럼 초콜릿을 먹으면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어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자는 것 대신.
읽어 내려가는 동안 느낌이 어떠셨어요?
문장 하나하나마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단편소설 전부를 읽는다면 그 긴장감을 더 여실히 느끼실 수 있을 텐데요, 그래도 이 대목만으로도 호흡이 같이 가빠져오면서, 신경이 팽팽해지는 걸 느끼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사실이 있는지 / 사건과 감정을 끝까지 응시하는 힘이 있는지 / 의도와 메시지가 명확한지’
이 기준을 한번 적용해 볼까요?
먼저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사실이 있죠?
그렇게 해서 나는 잠을 못 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일은 없다. 요컨대 나는 인생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잠을 못 자는 걸 두려워하지 않음으로써 인생을 확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이 문장을 3개로 쪼개 놓은 것인데요,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사실만 들어가도록 쪼개 놓으니 훨씬 간결해지고 명확해졌어요.
또, 사건과 감정을 끝까지 응시하는 작가의 힘도 느껴지죠? 사실은 ‘자는 대신에 나만의 시간을 보낸다. 이건 내 시간이다' 이렇게 두 문장만으로도 의미는 전달돼요. 이 두 문장에 의미는 다 담겨있어요. 그렇지만 나의 불면에 대해 다각도로 해석을 전해주면서 더 집중하게 해줍니다.
감정적으로는 어떻게 느끼는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타인과는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는지 등 '불면'이라는 사건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지루해지는 게 아니라 다각도로 해석을 해주니까 와.. 이거 정말 몰입하게 되지 않나요? 주인공의 희열까지 생생하게 와닿는 느낌이 듭니다.
메시지도 명확합니다. ‘나는, 잠을 자는 것 대신에 나만의 시간을 농밀하게 보내고 있다’ 라는 메시지가 명확하죠. 오해의 여지가 없어요.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짜임새'는 형태적인 부분인데, 위에 말한 것들은 내용적인 부분이 아닌가, 형태적인 간결함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닌가..? 싶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내용적인 부분에서의 '힘', '힘 있는 문장'도 ‘간결한 짜임새’를 구성하는 정말 중요한 하나의 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힘 있는 문장'을 쓰지 못하면 장황하게 쓸 수밖에 없어요.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워서, 독자 이전에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계속 설명을 반복합니다. 아니면 증명된 사실(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험 결과가 담긴 논문이나 뉴스기사 등등)을 늘어놓으면서 명확해 보이려고 애쓴다든지요.
힘 있는 문장으로 힘 있게 구성해야 형태적으로 간결해져요. 다시 말해 내용에 힘이 있어야 간결한 형태가 만들어집니다.
사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인용 부분을 읽는 것만으로 이미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명확해지셨을 것 같네요.
힘 있는 구성을 블로그에서 표현하고 계신 분들의 예시도 한번 살펴볼까요?
명랑당당님
내 일상에 어떤 일이 있어요. 위 포스팅은 아이와 관련된 일이에요. 아이가 엄마가 모기에 물렸다며 약을 발라주겠다고 앙증맞은 손가락을 들고 다가왔는데 “애 잘 키웠다~” 하며 감동을 했죠. 그런데 그 순간, 내가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만 아이가 잘 컸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니에요. 아이는 그냥 스스로 잘 크고 있었어요. 원하는 대로 키우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그저 아이가 스스로 잘 클 수 있는 환경을 최선을 다해 조성해 주면 되는 것이라고, 그게 엄마의 역할임을 깨닫습니다.
일상에서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사건을 끝까지 응시하며 깨달음을 뽑아냅니다. 글 속에서 그야말로 힘이 느껴지죠?
리치에몽님
김민식 님의 영상을 보면서 깨달은 내용을 써놓으신 글이에요.
사오십대 다양한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꿈을 찾기 가장 좋은 나이
→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 같이 책을 읽어보자
라는 의도와 메시지가 뚜렷합니다.
이분은 블로그 제목에서부터 정체성이 명확해요. ‘내가 주인공이 되는 세상’이 블로그 제목입니다.
본인의 성장기를 적으면서 독자들도 함께 성장해 보자는 (위캔두잇) 의도가 뚜렷하게 보이지요. 훗날 한 권의 책으로, 혹은 강의로 나올 법한 포스팅들로 보여요. 퍼스널 브랜딩.. 참 어렵다고 하는데, 이런 것이 바로 퍼스널 브랜딩이 아닐까요? 1년 후, 5년 후, 10년 후 에몽님의 브랜드가 기대됩니다.
어느 날 초등학생인 제 아이의 일기장을 보니 ‘어떤 일이 있었는데, 기분이 어땠다.’에서 끝나더라고요. ‘치킨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놀이공원에 갔는데 재밌었다.’
우리가 사건을 끝까지 응시하는 힘을 글에 녹여내지 못하면 초등학생의 일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냥 문장만 짧은 글을 쓰게 될 거에요.
어떤 일이 있었는데 (극히 일상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이걸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봤더라면 어땠을까? 여기서 내가 느꼈던 바는 이러한 거다. 이거랑 비슷한 일이 이때도 있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이게 어떤 인과관계가 있었구나!
여러 가지로 다층적으로 생각을 해보고, 회상도 해보고. 하나의 글 속에 여러가지 시선을 담아보세요. 힘을 담아봅시다. 그럼 간결함은 절로 따라옵니다.
중언부언 반복하는지
추상적이고 장황한지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명료한지
정보만 빽빽하게 채운 건 아닌지
최소의 문장이 짧게, 길게, 길게, 짧게 리듬을 타는지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사실이 있는지
사건과 감정을 끝까지 응시하는 힘이 있는지
이 이야기는 책 '쓰기의 말들'에서 발췌한 내용이에요. 이걸 제가 3가지 기준으로 분류하고 예시를 곁들여 소개를 해드린 것이고요.
다시 한번 이 책의 일독을 권해드리면서 제 분류와 설명에 동의하시는지, 동의하신다면 어떻게 내 글에 적용해 볼 수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