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동지애
"어머 언니~! 왔어요?!"
놀이터 건너편 벤치에서 엄마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같이 섞이고 싶지 않다는 건 아닌데, 내가 다가가기 어려운 아우라를 갖고 있는 건지, 아님 그냥 아웃사이더의 기운을 풍기고 있는 건지 이상하게도 나에게 "언니!"라 칭하는 엄마는 없다. 나 역시 "언니~!"라 반기는 사람들은 학교 선배 거나 회사 동료들 뿐, 엄마들 중 누군가에게 "나이가 어떻게 돼요?"라고 스스럼없이 묻는 일이 없다. 그러고 보니 가는 정이 없는데 오는 정이 있을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 딸은 그네를 타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아이에게도 망설임 없이 다가가 "나는 7살인데 몇 살이야?"라고 묻고는 바로 "언니~ 나랑 놀래?"라고 이야기한다. "싫어."라는 대답을 들으면 상처 받은 얼굴로 입술을 내밀며 나에게 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손을 꼭 잡고 그렇게 절친한 사이가 없다. 내일 또 여기서 만나자며 아쉬움 가득한 이별을 보자면, 어떻게 엄마인 내가 더 사회성이 없다.
엄마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 어벤저스가 생각난다. 외지인인 데다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 게다가 하필 술집을 열어 남편 단속을 하게 만드는 '동백'에 대해 처음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설움을 주기도 했지만 막상 동백이 어려움에 처하자 똘똘 뭉쳐 그를 지킨다.
기자가 마을을 찾아와 동백의 뒤를 캐자 옹산 어벤저스의 주축인 '준기 엄마'가 하는 말이 "원래 지 동생 톡톡 건드리는 언니들이 남이 그러는 건 못 봐."였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대사 "나인 써? 나는 텐 써."
이웃사촌에서 이모들로, 드라마에서는 어벤저스로.
엘리베이터에서 서로 인사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층간소음으로 다투는 일도 너무 많지만, 코로나 때문에 낮에도 종종 생활민원 아파트 안내방송을 해야 할 정도로 예민해져 있지만, 그래도 '동네 엄마들'의 끈끈함은 여전히 이어지는 것 같다. 임신과 출산, 육아의 행복하고 막막하고 놀랍고 우울하고 힘든, 오욕칠정 중에 칠정은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그 과정을 함께 건너가고 있다는 동지애 때문이리라.
나는 안다. 저기 벤치의 동네 엄마들과 비록 '언니 동생'하며 살갑게 지내고 있지 않아도 혹시라도 나에게 혹은 나의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똘똘 뭉쳐 달려와 줄 것임을. 나 역시 눈에 익은 그녀들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당장 일어날 것이다.
가벼운 목례 속 따뜻한 눈빛으로 우리는 그 무언의 약속을 넌지시 전하고 있다.
도무지 잡힐 줄 모르는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도 엄마들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낮부터 와인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는 엄마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는 게 아니라 '아, 좋은 생각이네.' 한다.
나를 비롯해 쉽지 않은 늦여름을 보내는 모든 엄마들에게 응원을 전한다. 마인드 컨택트라고 할까 '그 마음 잘 압니다. 힘내세요.' 이렇게 보듬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