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의 아침 마실 동네 한 바퀴

그 집엔 누가 사나요?

by mbly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후 쓸쓸한 마음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서 커피나 한 잔 할까 추리닝차림 그대로 동네 스타벅스로 향한다.


점퍼 한쪽 호주머니에 휴대폰, 반대쪽엔 작은 지갑을 넣어 만지작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너면 어느새 낯선 여행지에 놓인 것 같다. 1분 만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아기자기한 볼거리 가득한 후쿠오카의 지하철 입구에서 갓 나온 듯한 느낌이기도.


어린이집에서 스타벅스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 옹기종기 주택들 사이를 지나가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사실은 커피 맛보다 골목길을 걷는 맛에 나서게 된달까.


안 보이던 집이 여기에도 있었네? 아직 잠이 덜 깬 골목길을 내 발소리가 너무 크지 않나 살며시 지나가 본다.


예전에 이곳은 꽤 부자동네였다고 한다. 한 30년 전쯤?

나에게 언니뻘 아니 할머니뻘 정도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그득한 넓은 정원을 가진 주택도 서너 채쯤 지나고, 땅을 잘게 쪼개 아담한 주택이 어깨를 맞댄 꼬불한 골목길도 지나게 된다. 주택 터를 원룸 건물로 바꾼 것만 해도 네댓 채가 되어 보이니 상당히 넓었던 주택단지다.


부잣집이 많아 도둑들도 들끓었단다. 그래서 높은 담장에 녹이 슨 뾰족한 쇠꼬챙이가 아직도 촘촘히 꽂혀있는 주택도 있고 방범창으로 단단히 방비해놓은 창들도 꽤 오래되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을까. 2층 발코니나 살짝 열린 대문 틈으로 예쁘게 정리된 정원 꽃밭을 보며 내가 여기에 산다면,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예전부터 건물을 보며 상상하는 일을 좋아했다. 미미의 인형 집 장난감을 갖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쁜 집들, 꼭 예쁘지 않더라고 발코니나 옥상 공간을 보며 어떻게 꾸밀지, 뭘 하며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지 공상하는 것을 즐겼다. 동화 중에서도 소공녀를 좋아했다. 지붕 바로 밑 다락방에서 밤마다 비밀공간으로 건너가 소녀를 위로하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소공녀, 알고 보니 대단한 부잣집 귀한 딸이었던 공주님.


일본 여행이 더 즐거웠던 건 우리나라와는 다른 아파트 베란다를 보는 기쁨 때문이었다. 샷시가 쳐지지 않은 베란다마다 색색깔로 널려있는 빨래들이 그렇게 재미있어 보였다. 장난감 같은 자그마한 차들이 주차공간에 빠듯하게 들어가 있는 단독주택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저 집 대문을 열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만약에 내가 건축 디자이너가 되었더라면 건축주와 계속 다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유용한 공간 대신 갬성공간을 만들겠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을까. "왜 낭만이 없으세요~~!!"


성공하고 싶다면 비전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나는 살고 싶은 집에서부터 좀 막힌다. 높은 건물 꼭대기층 펜트하우스에서 살고 싶기도 하다가 그래도 너무 높지 않은 곳에서 각각의 옥상 공간과 지붕들이 내려다 보이는 테라스 넓은 집에서 살고 싶기도 하다. 비전보드는 구체적으로 그리라고 하던데, 집의 평수, 구조, 들어갔을 때의 느낌. 글쎄 한 7,80평 되는 넓은 테라스 아파트에서 봄, 가을로 포근한 바람을 집안 가득 불러들이며 살아볼까. 아니, 펜트하우스는 어쩌지? 은은한 간접조명을 켜놓고 샴페인 한 잔 들고 마천루 불빛을 즐기고도 싶은데. 두 채로 할까?




점심때 즈음 커피숍을 나와 다시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번엔 좀 생기가 돈다. 바로 옆 시장에서 구수한 냄새들이 풍겨 나오기 때문이다. 손칼국수 집의 구수한 멸치국물 냄새, 분식집의 고소한 튀김 냄새, 백반집 밑반찬으로 생선구이를 내느라 치지직 바빠 익어가는 프라이팬 위 갈치 한 토막까지 자꾸 집으로 가는 내 발걸음을 붙잡는다. 칼국수집 문을 열어볼까, 순대 1인분을 사볼까. 목을 빼고 기웃기웃 거리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아침에 식구들이 먹고 남은 밥과 찌개로 허한 뱃속을 달랜다.


다음 아침 마실에는 꼭 손칼국수를 먹어봐야지. 백반집 고추장 불고기 맛을 언제 꼭 한 번 봐야지.


오, 2시다. 얼른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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