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나?' 싶을 때, 수능 날의 기억

모르겠다~

by mbly

브런치 북 하나를 완성하고 새롭게 매거진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어떤 주제로 쓸까. 남들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해서 잘 써볼까, 그림을 그려볼까, 아이에게 좀 더 집중해볼까. 그런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글인듯하다.


사실은 목차까지 다 마련해 둔 주제가 있었다. 좀 그럴듯해 보이는. 그런데 쓰기가 참 쉽지 않다. 창작의 고통은 당연히 있기 마련이라 거기에서 오는 어려움이기도 하겠지만 술술 나오는 이야기는 역시 따로 있다. 진짜 내 마음, 아픈 내 마음, 위로받고 싶은 마음.


벌써 1년인가. 지난 1년간 표현하고 싶었던 여섯 글자가 있었는데 아직까지 못하고 있다. 어찌 보면 1년 만에 나올 글자가 아니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괴로웠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나만


왜왜왜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오는데 1년.


오르락내리락 나도 심경의 변화라는 것을 겪어보며 다시 겨울을 맞았는데, 찬바람이 불어 그런가 요즘 다시 내리막길에 서 있다.


이번엔 왜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한다.


무엇 때문에

무엇하려고

무엇을




코로나로 미뤄진 수능이 한 달 정도 남았단다. 내 수능날 내복 두 겹을 입고도 벌벌 떨었는데 올해 아이들은 얼마나 추울까.


까짓것 가벼운 마음으로 수능날 배정받은 고등학교 정문에 들어서는데 후배들이 건네주는 유자차를 받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며 뒤돌아선 순간, 눈물이 펑펑 흘러내렸다. 온몸이 벌벌 떨렸다. 스스로 당황할 만큼 오열하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던 기억. 시험을 치르고 난 후 우는 아이들은 많았어도 치르러 가면서 우는 아이는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3 내내 붙어있었던 친구가 "괜찮아 괜찮아." 라며 등을 토닥여 준 덕분에 가까스로 눈물을 멈추고 교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겉으로 씩씩한 듯 행동했지만, 엄마를 안심시키며 큰소리 뻥뻥 쳤지만 사실은 너무 무서웠다. 시험이 너무 어려우면 어쩌지, 성적이 나쁘면 어쩌지, 서울에 갈 수 없게 되면 어쩌지, 집에서 탈출할 수 없게 되면 어쩌지.


먼저 울었던 덕분인지 유난히 어려웠던 1교시 언어영역이 끝나고 곳곳에서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우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오히려 나는 초탈한 마음이 들었다. '망했나? 모르겠다 2교시나 준비하지 뭐. 2교시도 망했나? 모르겠다 점심이나 든든히 먹지 뭐.' 그렇게 마지막 시험까지 마치고 점수는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태평하게 돼지갈비를 뜯으러 갔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먼저 울어버리며 걱정을 털어버렸던 일 그리고 '망했나? 모르겠다~ '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제는 좀 울었다.


억울한 마음이 한 70%, 나머지는 답답한 마음, 앞으로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절로 눈물이 줄줄 나왔다. 아이 때처럼 엉엉 울지는 못했지만 (혼자인데도 왜 부끄럽게 생각했을까.) 뭔가 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 갑자기 수능날이 떠오른다.


아직 마음이 많이 아프다. 초탈해지기도 쉽지 않다.

그만하고 싶기도 하고 그만두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했나 싶다.


그렇지만 먼저 울었고, 망했나 싶으니 남은 건 딱 하나다.

모르겠고, 눈 앞에 있는 것부터 해보자.


뜻하지 않게 커피 선물도 받고

전자책도 1권 더 팔렸고!

감사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아인잠 작가님의 내 삶에 알맞은 걸음으로 에 나온 글귀처럼 오늘은, 조금 힘들지만 많이 행복해도 되는 날이다.


왜, 무엇에서 벗어나서

당장 닥친 일부터 해보자.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는 손길이 언제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