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사이즈는 없대
우리나라에서 어쩌면, 전 세계에서 살 수 있는 가장 큰 킹사이즈 침대일 거다. (미국 사람들은 더 큰가?)
그런데 나는 왜 가장자리에 매달려 잠에서 깨어날까. 그것이 궁금하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 내 침대 옆자리엔 남편 대신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다. 결혼하고 쭉 주말부부로 지내다가 첫 아이가 태어나고서야 살림을 합쳤으니, 남편이 옆자리에 있었던 기간보다 아이들이 있었던 기간이 훨씬 길다. 앞으로도 몇 년은 더 있을 예정이니 세 배를 넘고도 남지 않을까.
잠자리만큼은 두 사람 다 편안해야 하고 게다가 나의 큰 키 때문에 혼수 중에서도 침대만큼은 가장 큰 사이즈로 사자고 했었다. 킹사이즈에 테두리가 한 뼘 더 들어간 침대를 보자마자, 둘이서 "이거다!"라고 외쳤고, 아마 당시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사이즈의 침대를 샀을 거다. (그때는 패밀리 침대 개념이 없었다.)
주말에 하루 이틀만 한 집에 살았으니 각자의 잠버릇에 길들여지기도 전, 첫 아이가 태어나고 밤중 수유에 행여나 잠을 설칠까 옆방으로 배려했던 것이 그 시작점이었다. 침대 짝꿍 바꾸기.
폭신하다는 라텍스에 구스 베개까지 깔아 놓아 호텔 침구 부럽지 않고, 혼자서는 두 번을 뒤집어도 쿠당당 떨어질 일이 없는 광활한 침대 맞다. 첫 아이가 서너 살쯤이었을 때는 그 보드라운 발이 딱 내 손끝에 와 닿아서 잠이 깨지 않을 정도로만 조물조물 만지며 이불 밑에서 슬그머니 미소 지을 수 있었던, 내 마음에 쏙 드는 침대였다. (이때만큼은 침대 짝꿍이 남편이 아니어서 더욱 좋았다는..)
둘째가 아기침대를 벗어나고 본인도 엄마 옆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엔 상황이 달라졌다. 좁다. 광활하던 침대는 어디로. 새벽에 눈을 떠보면 나는 항상 가장자리에 이불자락을 붙잡고 매달려있다.
아이들에게는 하얀 2층 침대가 있다. 나의 로망이기도 했지만 헛돈 쓴다고 야단 들을까 봐 말을 못 꺼냈는데, 사실 남편의 진정한 로망이었던 것 같다. 2층 침대 아랫부분과 천장에 붙일 야광스티커도 한 가득 사주고, 2층 난간을 장식하는 깃발 가렌드와 아늑함을 더하는 조명도 남편이 사서 직접 붙이고 매달았다. "어때? 좋아?"를 연신 묻는 남편의 얼굴이 아이들보다 더 신났었다. "아빠가 여기서 잘래." 하며 먼저 사다리를 올라 2층에 눕고는 아이들을 놀려댔다. 분명히 아이들도 신나 했었는데, 만세를 부르며 온 집을 뛰어다니며 통통거렸는데, 아이들은 2층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자더라도 약간의 아쉬움을 품고 느릿느릿 올라간다. 불을 끄는 것도 "잠깐만. 아직 아니야~~" 1분 뒤에는 "엄마, 잠이 안 와." "엄마 여기 좀 더운 것 같아." "엄마 여기 귀신 나올 것 같아." "엄마 갑자기 물 마시고 싶어." 밤중에 돌아눕다 뭔가 팔에 걸려 보면 둘째 아이는 어느새 내 침대에 와 있다. 재밌는 것은 내가 둘째를 두고 2층 침대의 1층 자리에 가서 누우면 잠시 후에 둘째가 따라온다. 눈은 분명히 감고 있는데 무슨 레이더라도 달고 있는지. 엄마 찾기 레이더.
어제도 셋이 한 침대에 누웠다. 내가 가운데에 눕고 양 끝을 차지하면 될 텐데, 굳이 가운데에 누워 엄마를 혼자 차지하겠다는 둘째. "피." 입을 쭉 내밀다 내 다리 쪽으로 내려와 머리를 얹는 첫째. 그럼 나는 미라처럼 천장을 보고 누워 옴짝달싹 못한다. 왼 팔과 왼 다리의 감각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년에 8살이 되는 첫째는 곧 엄마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굣길에 친구들과 손잡고 나와서 문방구 군것질에 킥킥거리는 재미에 빠지게 될 것이고, 식사 자리에서도 휴대폰을 놓지 않고 네일 스티커로 알록달록한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피식 웃을 것이다. 지금은 "엄마랑도 꼭 놀게. 약속해."라고 하지만 나도 8살을 겪어오지 않았나. 벌써 섭섭해진다.
아들에 대한 배신감은 더 크다고 한다. 엄마랑 꼭 결혼할 거라는 유난히 엄마 껌딱지였던 아들, 특히 막내가 조금만 더 크면 여자 친구에게 줄 거라고 엄마 것은 쏙 뺀 무언가를 챙긴다고 한다. "물론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랑 가까운 곳에서 살지는 않을 거야."라고 말하던 미국 시트콤의 앳된 중학생 남자아이가 떠오른다.
그래서 비록 팔다리가 저릿하다 못해 감각이 사라지더라도 이 순간을 영원히 즐기고 싶다. 한 놈을 안고 있으면 다른 놈이 품을 파고드는 서로의 질투를 보는 재미를 어떻게 놓을 수 있을까.
"하지 마, 안돼, 넘어진다, 조심해, 싸우지 마" 때로는 지치게도 만들지만, 그래도 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후회 없이 오늘을 즐겨라.'라는 말에는 '후회 없이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만끽하라.'는 말도 포함될 것 같다.
곧 나도 아이들도 한 살씩 더 먹게 된다. 8살의 첫째는, 5살의 둘째는, 마흔이 되는 나는 어떻게 서로를 보듬으며 새로운 해를 살아갈까.
그래도, 이불은 좀 내어줄래? 엄마 추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