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는 사람은 사실은 엄마다.
첫째 아이에겐 지시하는 엄마가, 둘째 아이에겐 엄마가 아니라 더 어린아이가 된다는 브런치 작가님(박골든 님)의 글을 읽었다.
첫째에겐 점점 더 어른스러워지기를 바라지만 한 편으로 그게 또 미안하고 둘째에겐 마냥 의지하게 되는 그 마음이 어쩜 딱 나와 같아서 찌르르 울리는 마음을 누르며 글을 끝까지 읽었다.
'아들이어서 그런가? 그래서 우리 엄마도 동생을 더 애달아하나?' 첫째 아들을 유독 좋아하시고 손주도 아들 손주를 유난히 챙기시는 시어머니의 모습과도 연관 지으며 '아 나도 어쩔 수 없는 아들 바라긴 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첫째의 의젓한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엄마 노릇이 남들만큼은 잘 되어가고 있음을 확인받고 싶고, 둘째에겐 똑같은 어린아이가 되어 내 역할이 가진 무게를 잊고자 한다.
누나 따라 태권도를 배우러 다니는 둘째가 집에 오자마자 하는 말은 "누나랑 씻을 거야. 엄마 말고." 어느 하루는 까르르 소란스러운 욕실 문을 열어보니 누나가 동생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감겨주고 있었다. "엄마 문 닫아! 추워!" 샤워타월에 비누를 묻혀 둘이 같이 몸을 문지르고 발가락 사이사이 꼼꼼히 씻는 모습이 여간 웃기고 기특하지 않았다.
"누나랑 씻는 게 왜 더 좋아?" 엄마는 바삐 씻기기 바쁜데 누나는 재밌게 해 주어서 더 좋단다. 자기도 뭔가 샤워에 일조하고 싶은데 엄마는 손댈 시간을 주지 않고 누나는 일일이 의사를 물어보고 비누를 건네준단다.
머리를 말리는 것까지 누나에게 맡기려 하고 약간 귀찮은 표정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동생을 책임지는 첫째를 보니 짠하면서도 뿌듯한 기분이었다. 스스로 잘 큰 건데 뭔가 내가 잘 키운 기분.
발가벗은 둘째를 끌어안고 발을 조몰락거린다. 목 뒤에서 아직도 나는 아기 냄새. 이제 나보다 더 빠르게 뛰어가지만 아직도 입에 넣어 앙 깨물고 싶은 통통한 발가락. 엄마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둘째에게 "왜애~ 어디 가아~"하며 좀 더 졸라 보는 나.
큰 산인 것만 같던 부모님이 언젠가부터 차츰 아래로 아래로 언덕이 되더니, 이윽고 내 눈높이보다 낮아지고, 나는 기댈 곳을 새롭게 찾았다. 아이들.
아이들이 언제고 와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사실은 언제까지나 아이들에게 마음 한켠 얹어두고 위로받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부산을 떨며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고 뒤돌아 나오는 길이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커피 한 잔 하며 글 한 편 끄적거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고 , 아이들과 하루 종일 지내다 보면 내 안의 뿔난 엄마가 불쑥 솟아 나와 아이들과 투닥거리게 되지만 어린이집 문이 닫히는 걸 보면 좀 쓸쓸해진다.
자, 주어진 이 시간 서로 알차고 재밌게 보내보자. 그리고 이따 "엄마!"하고 큰 소리로 반겨주렴. 엄마도 비록 마스크에 가려지겠지만 함박웃음을 지으며 꼭 안아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