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내고 왜 뽀뽀해
"혼내고 왜 뽀뽀해?"
부스스 이불을 걷고 나오며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는 아이를 휙 끌어안고 사정없이 볼에 입을 맞추었다. 내복을 걷어올려 통통하고 말랑한 배에 "부우우" 바람을 불고, 두 발을 내 볼에 비비며 쪽쪽 뽀뽀를 해댔는데, 킥킥거리며 발버둥 치던 아이의 입에서 예상치 않게 나온 말.
어젯밤 입을 삐죽거리며 엄마 침대로 건너오지도 않고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어 쪽쪽이며 "나는 아기야."하고 잠이 들었는데 자는 동안 내내 억울했던 걸까. 자는 동안 내내 엄마 생각을 했던 걸까.
일요일은 뒤돌아서는 순간 집에 폭탄이 떨어지고 만다. 안방엔 이불 폭탄, 놀이방엔 장난감 폭탄, 거실엔 과자 부스러기 폭탄. 어제는 첫째가 포도를 먹었다는 것이 리모컨으로, 소파로, 테이블로 증명되었고, 둘이 까르르 거리며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초콜릿 콘이 분명했다. 바닥 강화마루 틈새가 초콜릿색으로 이어진 걸 보니. 삐딱하게 놓여있는 테이블을 밀었더니 찌그덕거리며 인디언* 과자가 튀어나오고, 덜 닫힌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미니 치타가 숨어있었다.
어디서 찾았는지 공을 하나 발견해서 박지성이 되는 바람에 아랫집에서 전화가 올까 다급히 버럭 거리며 공을 치워버렸더니 "흥! 엄마 안 좋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소꿉놀이 요리들과 커피를 배가 남산만 해질 만큼 먹는 시늉을 하다 지쳐 잠깐 쉬자했더니 "엄마는 맨날 안 놀아줘! 안 좋아!"
월요일 등원을 해야 하는데 밤 11시가 넘어가도록 "잠이 안 와~~ 귀신 무서워~~ 쪼금밖에 안 놀았어~~ 시원한 물 먹고 싶어~~"를 외치는 아이들을 달래고 어르다 결국엔 으르렁거렸더니 "피! 흥! 엄마 안 좋아!"
아이들 둘과 울다웃다 투닥거리다 달래는 것은 일상인데, 어제는 빼먹어서 그런가, 우리 집 공식 질문. "오늘 재밌었어?" 공식 잠자리 멘트 "잘 자~ 사랑해~"
그래도 아침에 그렇게 얼음이 될 줄은 몰랐다. 혼내놓고 뽀뽀는 왜 하냐고... 정작 아이는 다시 까르르 거리며 침대 머리맡에 늘 두고 자는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붕붕거렸지만, 나는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로 기억되고 있는 걸까.
우리 엄마는 참 열심히 사는 엄마였다.
동업자의 사기로 회사가 부도를 맞고 빚쟁이를 피해 산속 절로 떠난 아빠를 대신해 엄마는 1인 2역을 해야 했다. 어떻게든 아이들 입에 쌀밥을 넣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고 행여나 나쁜 길로 빠질까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도 엄마의 몫이었다. 아빠가 돌아온 이후에도 재기의 의지는 없었으므로 우리 집은 방방에 펼쳐진 상 앞에 아이들이 가득했다. 누구는 소를 팔아서 누구는 운전으로 누구는 칼국수로 자식 대학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엄마는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가르쳐 나와 동생을 대학 보냈다. 4년 장학금을 준다는 대학으로 성적을 낮춰 가겠다는 내 딴에는 엄마를 위한다는 말이 엄마를 드러눕게 했었다. 나의 대학은 엄마를 위한 상장 같은 거였나 보다.
늦게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고 들어오면 과외 뒷정리를 하고 겨우 잠이 들었던 듯한 엄마가 빨간 눈을 비비며 "뭐 좀 챙겨줄까? 뭐 먹을래?"하고 물었다. 매번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엄마를 섭섭하게 하는 것 같아 "어 그냥 계란 프라이 하나 먹고 싶네."라고 말하고 후루룩 마시던 기억이 난다. "어서 자라. 고생했다."라며 안방으로 들어가던 엄마 등에 차마 기대지는 못했다. "엄마 힘들어~~"하며 어리광 부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런가 분명 15개월까지 엄마 젖을 먹으면서 등에 업혀 외갓집 미나리밭을 그리도 다녔다고 하던데 그 기억은 외갓집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들 만큼이나 생경하다.
뱃속 아이를 기다리며 나도 베이비페어란 곳에 갔었다. "어머! 그럼 제가 찜할게요!" 싼 값에 샀다고 좋아하며 전시 품 유모차에 내 이름표를 붙여놓고 돌아온 날, 아파트 동 사이를 유모차에 탄 아이를 데리고 이리저리 거니는 우아한 나를 상상했었다. 그런데 웬 걸 유모차에만 태우면 자지러지는 아이 덕분에 유모차는 집안 현관 입구, 아이가 살고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 역할만 하게 되었고 나는 아이와 한 몸이 되어 다녔다.
아기띠가 갑갑한 나이가 되고서는 늘 내 등을 내어줬다. 따뜻한 봄날 집 앞 바닷가에 나가 잠시 뛰고는 금세 "어부바"를 외쳤고, 놀이터에서는 분명 신나게 미끄럼틀을 탔는데 집에 갈 땐 양 손을 내게 뻗었다. 집에서 나갈 땐 새총에서 총알 발사되듯 나보다 앞서 뛰었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올 땐 늘 다리에 힘이 없어 꼭 내 등에 올라야 한단다.
그래서 나는 좋은 등을 가진 엄마가 되기로 했다.
옆얼굴을 살짝 대기만 해도 잠이 솔솔 오는 등,
다리가 아플 땐 아무 때고 오를 수 있는 만만한 등,
마음이 시릴 땐 얼굴을 묻을 수 있는 넓은 등.
그런 좋은 등을 내어주는 엄마.
"혼내고 왜 뽀뽀해?" 그러더니 갑자기 손을 내어보란다. 핑크색 플라스틱 꽃반지가 내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다. "엄마 이쁘다~" 등 뒤로 돌아보는 아이의 얼굴이 뿌듯하다.
나는 좋은 등을 내어주는 엄마였던가,
좋은 등에 기대어 사는 엄마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