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각이 조금 나..

어려울 땐, 쉬워질 때까지 하는 거다.

by mbly

이층 침대를 사줬는데도 굳이 엄마 침대에서 자는 아이들.

오늘도 "엄마 침대에서 자도 돼." 한 마디에 쏜살같이 베개를 들고 내려왔다.


"나는 여기, 누나는 여기. 엄마는 내 베개 같이."

"야~ 엄마가 중간에 누우면 되잖아~"

"싫어~ 나는 엄마 좋단 말이야. 누나는 아빠 좋아해~"


컴퓨터를 타닥거리다 말고 아이들의 목소리에 이끌려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른손은 작은 아이와 손깍지를 끼고, 왼 손은 큰 아이의 배를 쓰다듬으면서.


갑자기 큰 아이가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엄마는 아침에도 공부~ 점심에도 공부~ 저녁에도 공부~ 엄마는 아침에도 잠~ 점심에도 잠~ 저녁에도 잠~"




원래도 잠이 많은 나였지만 요즘엔 특히 그야말로 하루 종일 졸려 죽겠다.

무슨 임신 초기인 사람마냥.


큰 아이 임신했을 때 3시에 퇴근을 하면, 다음날 새벽 출근까지 저녁도 건너뛰고 내리 잤었다. 따끈한 물에 씻고 간단히 간식을 먹고 작은 거실 미니소파에 드러누우면, TV고 불이고 다 켜놓은 상태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새벽 출근이라 해도 2,3시 이럴 때 가는 것도 아니고 6시까지만 출근하면 되었으니, 내리 10시간은 족히 자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 저녁을 잘 챙겨 먹었어야 했는데, 잠이 더 시급했다. 요즘에야 큰 아이가 뭐든 잘 먹어서 살이 통통하게 올랐지만 네댓 살까지 도통 밥을 먹으려 들지 않을 때는 그때 내가 잘 안 챙겨 먹어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마치 그때처럼 요즘 잠이 너무 고프다.


한 해 한 해 지나가면서 기초대사량이 떨어져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겨울이고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으니 더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무언가를 좀 이뤄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좌절하다 보니 힘이 딸린다.


고 3 때도 참 많이 잤다. 참 열심히 공부하긴 했었는데 그만큼 참 많이 잤다.

"야, 너 같은 수험생도 없을 거다." 하면서 안쓰러워하시면서도 또 어이없어하셨던 친정엄마.

"그렇게 자고 그 대학엘 붙었다고?" 하며 의아해했던 옆 반 친구.


그러고 보니 약간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아주 뭐 대단한 1등은 못해도 결국에는 나름 만족할만하더라는 옛날 옛적 자신감 때문에 지금 또 이렇게 자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게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줄은 몰랐다.




워낙에 큰 아이는 혼자서 잘 놀고 조용히 있는 아이였고, 둘째도 누나만 있으면 세상 행복한 아이라 내가 다른 일에 집중한다거나 혼자 푹 쉰다거나 그래도, 좀 미안하긴 하지만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 재밌었어?"라고 물어보면 "응. 오늘은 멋진 성을 만들었잖아? 둘이서 같이 하니까 너무 재밌었어."라고 큰아이가 늘 말했던 터라 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역시, 그게 아니었다.


"엄마가 옆에 없으면 엄마 생각이 조금 나고.. 허전해."


누워 있어서 보진 못했지만, 사실은 내가 아이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어서 못 봤지만, 분명 아이의 눈시울은 빨갛게 변하고 있었다.


동생이랑 둘이 놀고, TV도 보고, 휴대폰도 보고 하면 너무 재밌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엄마가 꼭 같이 소꿉놀이를 하지 않아도 옆에서 왔다 갔다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엄마랑 같이 책 보고 그림 그리고, 동생이랑 만든 것들 보고 대단하다고 놀라 주는 것이라 한다.

두 번째로 좋은 것은 날씨 좋을 때 엄마랑 같이 놀이터에 가거나 가게에 가서 소소한 것들을 사는 것이란다.

세 번째로 좋은 것은 엄마가 공부를 하거나 집안일처럼 해야 할 일들을 하더라도 눈 앞에 있어주는 것이라 한다.


하.. 나는 무얼 위해, 뭘 이뤄보겠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을까..


친정에 며칠 가서 친정부모님들께 아이들 좀 봐주시라고 부탁하고, 나는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 공부를 좀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빨래, 청소 같은 자질구레한 집안일에 끼니때마다 밥을 챙기고 설거지를 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고, 힘도 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가족들이 저녁에 다 같이 모여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기다려진다거나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보니 더 힘이 들었다.


'빨리 뭔가를 좀 이뤄내서 번듯해지고 싶은데..' 하는 조바심 때문에 다른 게 눈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렇게 어영부영 1년을 보냈구나..' 하는, 연말이라 드는 생각들도 그렇고.



사는 게 참.. 어렵다.




"어려우면 많이 해보면 돼."


내가 아이에게 한 말이다.

더하기가 어려우면 더하기 연습을 많이 해보면 되고, 글자 쓰는 게 어려우면 많이 써보면 된다고.


쉬워질 때까지.


도모하는 일이 어렵다.

그래서 많이 해보려 한다. 공부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도움을 받아 시도도 많이 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많이 노력하려 한다. 체력이 딸려서 자꾸 잠이 오면 운동을 하거나, 비상사태일 때는 커피도 마셔주고. 하루에 두 시간은 정해놓고 아이들과 같이 보내기로 했다. 놀이터에 가든, 같이 책을 보든, 추임새 넣어주며 노는 걸 지켜보기라도 하든.


쉬워질 때까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큰 아이에게 산타할아버지가 원했던 3D 컬러링 북을 주시지 않으셨다. 너무 늦게 기도를 한 터라 장난감 공장에 주문이 늦게 들어갔다. 산타할아버지가 미리 정해두었던 선물이 왔다.


하지만 아이는 괜찮단다.


"응~ 산타할아버지가 주문을 너무 늦게 넣어서 딱 그거는 준비를 못하셨을 수도 있는데, 미리 정해두신 선물이 더 좋을지도 몰라~ 그동안 우리 딸이 동생이랑도 잘 놀아주고 씩씩하게 태권도도 잘 다니고 그랬잖아? 그래서 분명히 아주 좋은 선물을 준비해두셨을 거야~"라고 엄마가 위로해 주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선물이 더 비싸고 좋아서가 아니라 엄마가 위로해 주었기 때문에 괜찮았다는 말에서 참..

서른아홉 해가 일곱 해보다 못하다.




이쯤에서 나도 미라클모닝이란 걸 해봐야겠다.

그동안은 '부자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너도 성공하려면 그렇게 해.'라는 논리밖에 듣지 못했는데, 지금은 나의 이유가 생겼다.


아이들과 같이 일찍 자고, 아이들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서 내 시간을 가져야, 매일 두 시간을 조급해하지 않으며 아이들과 꽉 채워 즐겁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나만의 일을 만드는 것도 어렵고, 결혼도 어렵고, 육아도 어렵고, 시댁, 친정도 다 어렵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렵고. 그냥 사는 것이 참 어렵고 나의 깜냥이 너무 모자라지만, 한 번 해보지 뭐. 쉬워질 때까지.


마흔의 해를 따뜻하게 감싸줄 여덟 해, 그리고 다섯 해가 곁에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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