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도 처음입니다
2월의 어느 날. 새 학년 교육계획 준비주간에 학교로 출근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동안 시간강사, 2학기 기간제 교사로만 근무해 봤기에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학생 없는 학교라지만 더 긴장되고 또 설레었다. 어떤 업무가 배정될까, 첫 담임을 맡게 될까, 같이 일할 선생님은 어떤 분들일까...
전입교사, 기간제교사, 기존교사 수십 명이 모인 교무실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자리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나마 면접 때 안면을 튼 기간제 선생님들이 반가웠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좁은 휴게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사회 초년생으로 보이는 앳된 선생님도 있었고, 경력이 많은지 여유로워 보이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교내에서 가장 서로가 의지되고 위안 삼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전체 교직원 모임이 시작됐다. 옆자리 선생님이 재빠르게 유인물을 훑으며 이름을 찾아보라 하셨다. 업무, 자리 등 대부분의 결정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다급하게 종이를 넘기며 내 이름을 찾았다. 두근두근. 본교무실 한쪽 구석 자리에 내 이름이 있었다. 담임이 아니었다. 업무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나이스!
옆자리에 계신 선생님은 담임으로 배정되었다. 분명히 면접 때 나에게 담임을 맡아야 된다고 했는데. 담임을 맡기엔 내가 영 부족한 건가. 어쨌든 담임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져서 기뻤다. 동시에, 난 아직 멀었나 싶어 아주 살짝 씁쓸했다.
특정 업무나 부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사가 본인의 업무나 담임 여부를 이때 알게 된다고 했다. 지난밤, 긴장되어 잠을 설쳤다며 수줍게 인사하던 부장교사의 말이 괜히 반가웠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
시수배정을 위한 동 교과 선생님들과의 협의회가 바로 이어졌다. 학교에서 제일 중요한 업무가 수업인 만큼, 수업을 어떻게 분배하는지가 내 주요 관심사였다. 시간강사나 2학기 기간제 교사는 시간표가 완성된 상태에서 투입되었기에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 전혀 몰랐다. 서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짜려고 하면 난 어떻게 하나, 하라는 대로 하면 되나? 괜한 걱정이었다. 경력 많으신 선생님께서 미리 구상해 오신 큰 틀에 맞춰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금방 결정됐다. 특정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게,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별 얘기 한 것도 없이 결정됐지만 불만은 없었다. 대신 고등학교에 비하면 시수가 많았다. 작년엔 1주일에 18시간이었는데, 이번에는 21시간이었다. 중학교에 온 것이 실감 났다. 교내에서 제일 시수가 많은 교과 1위였다. 이런 것도 자부심을 가져야 하나.
출입문 근처, 통로 자리지만 이 또한 선택권은 없었다. 그동안 자리 운이 매우 좋았는데, 그때 운을 다 썼나 보다. 이로써 업무, 수업, 자리까지 다 정해졌다. 기간제 교사로 1학기를 처음 맞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담임까지 맡았다면 모든 게 처음이라 많이 허둥댔을 텐데 이번에는 오롯이 학교 생활을 익히는데 집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운이 아직 남았나 보다. 이로써 나의 한 학기 기간제 교사 생활이 시작됐다. 만족스러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