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희 Sep 06. 2020

학교 가고 싶다는 너의 그 말

안녕?

오늘은 국어 숙제를 하는구나.

작년까지만 해도 네 뒷모습을 보면 알 수 없이 마음이 짠하고 아팠는데, 이제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니 참으로 감사하단 생각이 들어. 아마도 너와 내가 힘든 일 년을 보냈던 덕분 아닐까?


기억나지? 너 중학교 입학하고 몇 주 안돼서 벽 선반에 고이 모셔 뒀던 걱정인형을 가방에 달고 다닌 거 말이야. 그 날부터였나 봐. 엄마도 같이 덩달아 긴장하고 조마조마한 하루를 보낸 게.

사실 엄마에겐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사건이 있었거든. 너에겐 아직 말 못 했던 거라 오늘 이 곳에 털어놓을까 해.


네가 여섯 살 때였어. 엄마가 퇴근하고 와서 급하게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네가 망설이듯 말했어.

‘엄마, 서연이가 내 옷에 있던 큐빅, 힘줘서 가져갔어.’라고 말이야. 그때 엄마는 있을 법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냥 별 일 아닌 듯 말해버렸지. ‘그래? 친구가 큐빅이 예뻐서 갖고 싶었나 보다. 엄마가 다른 이쁜 옷 사줄게.’라고 말이야.

근데 이게 왜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냐고?


네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 같은 반에 유난히 똑똑하고 야무지기로 소문난 친구들이 많아서인지 또래보다 느리고 외향적이지 않은 너는 늘 소외되기 일쑤였지. 어느 날 자려고 누웠는데 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더라고.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라고 말이야. 처음에는 그냥 몸이 피곤해서 하는 말인 줄 알았어. 근데 그 뒤로 아무 말이 없길래 보니까 네가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 순간 담임선생님이 하셨던 얘기가 떠올랐어. ‘정말 그림처럼 앉아 있다가 가는 아이예요’라는 말, 엄마는 그 말이 그냥 얌전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로만 받아들였었거든.

글쎄.. 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갑자기 지나갔던 그 큐빅 사건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끔거리고 따갑더라고.


너 아기 때, 예방주사 맞을 때 한 번도 소리 내 운 적 없는 거 알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데도 입을 꾹 다문채로 엄마 얼굴만 쳐다봤던 거 말이야.


지나고 보니 그게 너인데,

엄마는 그게 너라서,

넌 아픔이 없는 줄 알았어.


아마 그날 밤 너의 눈물을 보지 않았다면 엄마는 아직도 널 키우기 편한, 착하고 순한 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 엄마가 그때 네 감정에 공감해 주지 못하고, 늘 네 친구 입장에서 널 가르치려고 했던 거, 널 자책하게 만들었던 거 정말 미안해.

엄마가 된 후로는 매 순간이 배움이라는 말이 정말 사실인가 봐.


작년은 더 힘들었지?

어느 날 갑자기 네가 ‘엄마, 나는 모범생이라는 말이 제일 싫어’라고 하는데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더라고. 주변에서는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가 중학생들 무서워서라는 농담도 하고. 거의 매일 힘든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너를 볼 때마다 엄마 마음은 끝 모를 심연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었어. 속상한 일도 많았고 말이야.

특히 너의 이야기를 다른 엄마를 통해 들었을 때는 엄마도 많이 힘들었어. 저마다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정글 같은 공간에서 네가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지. 너는 여전히 너만의 방식으로 버텨내고 있는데 엄마는 그 시기는 일탈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알려줘야 하는 건 아닐까 순간순간 혼란스럽기도 했어.


그래 맞아. 우리는 그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함께 많은 걸 보았어. 너를 힘들게 하고 너에게 감정의 쓰레기를 버리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고 말이야.

친구가 아니니까 그러는 거라고, 친구가 그런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괴로운 거라고 말이야. 대신 덕분에 너와 마음이 같은 친구들도 많이 알게 됐고, 그 속에서 참된 친구도 얻었으니까 오히려 잘 된 일인 것 같지? 엄마도 가끔 기분 나쁜 만남을 할 때마다 생각해. ‘이건 무례한 행동을 한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는 거지. 나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이야.


학교 가고 싶어요

그래서인지 몇 달 전 너의 카톡 프사를 보는데 울컥했어. 마치 네가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너의 말을 듣는데 고맙기도 했고. 작년 겨울만 해도 '차라리 독감 걸려서 학교 안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던 너니까 말이야. 물론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너무 오래 못 간 탓도 있겠지만 엄마는 내심 네 마음속에 학교생활이 안 좋은 기억으로 가득 차 있을까 봐 불안했었나 봐.


엄마는, 사람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네가 추운 겨울 울려 퍼지는 캐럴 같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너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분명 세상에는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을 테고 그들과 네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말이야.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어.

'누구에게나 친구는 누구에게도 친구가 아니다(A friend to all is a friend to none)'라고 말이야.


엄마도 꼭 명심할게! :)

그럼 오늘도, 우리 모두 좋은 밤!




#7.

BTS, Dynamite Official MV 봤어? 엄마는 홀딱 반해서 눈을 뗄 수가 없는데, 82만 명이나 '싫어요'를 눌렀더라? 질투인 거겠지? 최고의 스타도 '싫어요'를 피해 갈 순 없나 봐. :)


일곱 번째 학을 접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롯이 넌, 네 거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