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단식 결심

빚 갚아가는 이야기 01

by 이예석

서박하 작가님의 글 '소비단식일기'를 재미있게 읽다가 출간소식에 종이책까지 사봤다. 언급하고 있는 소비 단식이란 개념은 애나 뉴얼 존스의 '나는 빚을 다 갚았다(The Spender's Guide to DEBT-FREE Living)'란 책에 언급된 내용으로 내친김에 이 책까지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최근 우울, 불안, 스트레스의 원인들을 계속 곱씹어 보다가 '돈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회사에서 '이게 다 무슨 의미지?'라는 생각이 종종 들고 천태만상 인간군상들 속에서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나는 왜 이렇게 돈이 없을까'라는 자괴감이 들면서 그동안의 소비생활에 대한 자책, 앞 날에 대한 불안, 평생 이렇게 목줄이 채워진 월급노비 신세로 생을 마감할 것 같은 절망감이 더해져 우울증이 더욱 심해졌다.


나는 15년 가까이 돈을 벌었고, 심지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회사에 다녔다. 그러나 현실은 빚 좋은 개살구였다. 사회 초년생 때 일찍 독립해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주거비, 생활비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명문대에서 학사, 석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금융, 경제에 대해 무지했다.


타이밍 좋게 치솟는 서울 집값 랠리에 탑승해 벼락부자가 되지도 못했고 주식, 비트코인이니 가상화폐니 하는 것들에 배팅하기엔 새가슴이었다. 뒤늦게 열심히 기웃기웃거려보고, 투자 관련 책도 읽고, 경제 유튜브도 열심히 봤지만 늘 사는 것은 접시물에 코 박고 죽지 않을 정도의 돈으로 간당간당 살았다.


그런데 최근에 이 모든 것들은 그저 표면적인 이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듯한 핑계 같기도 했다. 다른 무언가가, 십 년이 넘도록 제자리걸음인 내 지지부진한 소비 행동에는 더 깊숙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최근 상담 치료를 받으며 해본 기질 및 성격검사에서 나는 '무절제, 충동성'이 높게 나왔다. 반면 위험회피 성향도 높았고 동시에 불안감이 강하나 끈기가 부족하고 근면성이 몹시 떨어졌다. 내 딴에는 열심히 살았다고 했지만 실상은 근면성실한 소비생활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간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어렴풋이 눈치는 채고 있었다.


나는 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쓰는 것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대로는 벌이가 늘어 다달이 천 만원씩 벌어도 늘 아슬아슬한 통장 잔고를 유지할 확률이 높다.


바뀌고 싶다. 나는 달라지고 싶다.


통장 잔고가 단단해지면 유리 같은 내 멘털도 강철처럼 단단해 질지도 모른다.


때깔 좋은 빚쟁이로 계속 살아온 이면에는 나의 건강하지 못한 정신, 몸, 인정하기 싫은 나쁜 습관, 설명하기 힘든 어떤 결핍이 숨겨져 있음을 어렴풋이 느껴진다. 인생 블랙박스를 한 번 까볼 때가 됐다.


우선 책에 나온 대로 정확한 내 빚이 추적해 봤다. 부끄럽지만 익명 공간의 힘을 빌어 공개해 본다.


마이너스 통장: 약 600만 원

신용카드(초과 생활비) 130 만원 +95만 원 = 225만 원

신용카드 (잔여 할부총액) 100 만원

신용 대출: 5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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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4,250,000만 원. 무려 천 사백만 원이 넘는다.


주목해야 하는 점은 지난 3개월 간 휴직하며 마이너스 통장과 초과 생활비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회사도 안 다니고 집에만 있으면서 대체 어디다 이렇게 돈을 썼단 말인가.


나는 대체 마음 어디가 무너져 내린 것인가.


소비단식 기간은 일단 올해 연말까지, 4개월만 해보려고 한다. 하다가 또 흐지부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폭식하는 것처럼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마구 사다가 하염없이 우울해하며 어둠 속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 도전 해보고 싶다.


소비 단식과 함께 내 삶을 좀 더 건강하게 해 보려 몸부림 치고 싶다. 행동하고, 기록하며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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