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견딜 수 없는 사람들

by 이예석

다양한 인간 군상 속에서 유독 참기 힘든,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이 본인 스스로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될 수 있다. '신경 끄기 기술' 혹은 '그냥 내버려 둬', '그들의 행동이나 감정에 네가 휘둘리면 지는 거야.' 같은 말들은 쿠쿠다스 멘탈인 내게 잘 먹히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가기 앞서 고육지책으로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1.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나를 참을 수 없게 하는지 분석해 보기. 2. 물리적 거리를 두며 적극적으로 피하기(되도록 한 공간에 같이 오랜 시간 머물지 않기)이다.


심리적 거리조절에 종종 실패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물리적 거리 두기는 생각보다 강력했다. 정말 눈앞에서 안 보이면 좀 살만하다. 피하는 것이 지는 것이라는 오만한 생각으로 버티기를 시전해 보기도 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나도 만만치 않은 내상을 입었다. 마치 서로 칼로 푹 찌르고 누가 누가 오래 버티나 시험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오래 버텨 이긴 것 같았어도 돌아보니 상처투성이인 내가 서 있다.


그래서 나는 피한다. 삼십육계 줄행랑. 피할 수 있다면 피해라.


그러나 종종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가령 직장 동료라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물리적으로 피하기는 어렵다. 직장에서 '업무적인 관계'일 때 참을 수 없이 유독 내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취약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적어본다.


1. 정서적인 유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

종종 보는 김미경 강사의 콘텐츠에서 '직장에서 팔짱 끼고 다니는 사람들'에 대해 본 기억이 있다. 신체접촉은 호감의 표시이자 친밀감의 상징인데 나는 좀 불편함을 느낀다. 스킨십 자체가 싫다라기 보다는 업무시간에 이런 행동들은 뭔가 공과 사의 구분이 무너뜨리려는 기분이 든다. 의외로 이런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서운하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일이 잘 되면 당연히 좋지만, 생각보다 회사 일이 뜻대로 착착 막힘없이 되는 일들은 거의 없다. 그럴 때마다 담당자에게 '서운하다'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은 업무의 상황적인 요소보다 개인적인 요소로 교묘히 실패원인을 덧씌운다.


가족 같은 회사도 이런 느낌일까? 가족 같은 정서적 유대를 강조하는 회사치고 가족처럼 보듬어 주는 회사는 별로 못 봤다. 가족한테 하는 것처럼 아무 말이나 하고,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고 무자비하게 비난한다. 아무튼 정서적으로 너무 친밀하려고 하는 사람, 업무 외 적인 사생활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나는 유독 견디기 힘들었다.


2.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

회사 일은 대부분 개인전이라기보단 단체전이다. 미팅 시간을 5-10분 늦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전 회의장이 멀리 있을 수도 있고, 오다가 커피를 쏟았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가끔 본인의 할 일의 마감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 그 일이 전체 프로젝트에서 어떤 지점이 있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보통 연차가 낮으면 이런 실수를 많이 하는데 그것도 이해는 간다. 일이 서툴러서 그럴 수도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고 협업 업무에 익숙해지고,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관련팀에서 욕 한 사발씩 먹고 동료평가가 형편 없어지다 보면 개선된다.


문제는 다 알고도 뭉개는 사람들이다. 본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본인이 여기서 일을 뭉개면 누가 고생하는지 다 알는데도 일부러 뭉개는 사람들이 있다. 쓰다 보니 이건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라기보다 인성 자체에 '악한 마음, 악심'이 좀 있는 사람들인가 싶기도 하다.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골탕 먹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회사에서 마주칠 때면 또 엄청난 사람 스트레스가 밀려온다.


3. '최고 상궁'이 인생 목표인 사람들

만약 경제적 자유가 있다면 굳이 회사에서 일을 할까? 예전 같았으면 적진에 침투한 블랙요원처럼 '나는 통장에 100억 있는데 취미로 회사 다니는 사람이야'라는 마음으로 띵자띵자 회사를 다닐 것도 같았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그럴 깜냥의 사람이 아니다. 차라리 무료로 재능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면 했지.


그런데 종종 '취미로 회사 다니나?' 싶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동료들도 있다. 그들은 생계유지, 즉 경제 활동을 목적으로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자세히 관찰해 보니 높은 확률로 '권력 행사의 재미'를 목적으로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소위 부하 직원들에게 갑질하는 맛에 다니거나, 갑질할 위치가 아니라면 뭐랄까? 회사의 성공이 나의 사회적 성공이라는 자아를 가진 자들. 이건 타고난 기질 차이인 것 같다. 그들의 인생의 목표가 최고상궁인 것일까? 내 꿈은 대장금인데. 가치관의 차이다.


그러니 그들 눈에는 자신과 다른 가치를 가지고 회사에 다니는 나 같은 사람들이 눈에 가시다. 왜 넌 최고상궁을 희망하지 않지? 넌 왜?라는 의문을 조직에 로열티가 없다, 업무에 헌신적이지 않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교묘히 프레임 씌워 비난한다.


확실히 글로 적다 보니 한 가지로 귀결된다.


내가 참을 수 없이 견딜 수 없는 사람들

= 나만의 기준 선을 넘는 사람들.


동일한 직급의 동료나 후배라면 사뿐히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늘 직장에서 내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었던 사람들은 상급자로서, 선임으로서 해당 지위를 이용해 선을 넘는 사람들이었다.


회사에서 누군가 때문에 괴롭다면, 혹은 괴로워질 것 같다면 바로 마음속으로 생각해야지

'또 선 넘네'


원인을 알았으니 그전보다는 조금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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