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K모닝 Oct 31. 2023

분노와 마주할 용기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사건개요


아이의 국립어린이오케스트라(National Children's Orchestra, NCO) 오디션 영상을 녹음하는 날이어서 분주했다.  

아이가 학교를 파하자마자 막바지 연습을 돕고, 저녁을 먹이고, 멀리 레슨을 가서 영상 녹음을 마치고 집에 오니  밤 8시가 넘었다. 

긴장도 풀리고 급 피곤이 몰려온다. 


남편과 큰 애는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느긋하게 TV를 즐기고 있다. 

저녁을 먹기는 한참 지난 시간인데 밥을 안 먹었단다. 

그 말에 짜증의 싹이 자리 잡기 시작하니, 억울한 감정이  내 안에 줄기가 되고 분노의 나무가 되어 점점 커지고 있다.

저녁을 왜 아직도 안 먹었냐는 물음에

“글쎄. 뭘 먹지 라면이나 먹을까?”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 먹을 파스타를 급하게 만드는 와중에 물도 올리지 않으면서 말만 하는 신랑의 말이 도화선이 되어 폭발한다.  


급기야는 “라면 물도 못 올려? " 신경질적으로 라면물을 가스레인지에 올리며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내뱉고 만다. 


“왜 화가 났는데?"라는 신랑의 물음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무시해 버렸다. 

나의 행동에 신랑도 화가 났는지 “안 먹어도 돼!” 라면서 라면 불을 끄고 방으로 올라가 버린다.  




내 안에 자리 잡은 분노의 똬리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키친으로 가서 음식을 준비한다.  

준비하는 나의 손끝이 거칠어진다. 

그릇소리와 나의 행동이 커질수록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기운을 느끼며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햇수로 결혼 18째인 우리 부부는 싸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아이들도 난생처음 본 광경이다. 


‘자기네 끼리 차려 먹을 수도 있는 건데 굳이 왜 나를 기다린 건가? '

‘내가 가족들을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의존적으로 만든 장본인인가? '

‘나를 밥 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가? '

‘힘들게 다녀온 나는 안 보이나? '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 중앙에 똬리를 튼다. 


 

나의 불만스러운 감정상태가 나의 태도가 되어



나의 불만스러운 감정상태가 나의 태도가 되어 가족들의 맘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의 파장은 나로 시작해 신랑에게, 아이들까지도 영향을 주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시간 = 복기


오늘 이 사건이 나의 마음을 복잡하게 뒤집어 놓았다. 

조금 떨어져서 그 시간 동안의 내 생각과 행동을 하나하나 복기해 보기 시작했다. 


내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니, 
상황이 달리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내게 드는 감정의 날 것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미숙한 행동이 가장 먼저 보였다.  

부끄러웠다. 

‘밤늦게 일과를 마치고 온 나는 안 보이나? '

그 누구도 내가 말하지 않는 한 절대 알 수가 없다. 

내 감정과 몸의 상태를 말로 표현하고 원하는 것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게 먼저였다. 


 ‘자기네 끼리 차려 먹을 수도 있는 건데 굳이 나를 기다린 건가? '

‘나를 밥 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건가? '

사실은 가족 누구도 나에게 저녁밥을 차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밥을 먹지 않은 사실 하나만 있었다. 


가족들의 생각과 상황은 무시한 채 가족들이 나를 밥순이로 생각하나? 

내 생각과 감정이 그들의 생각인 냥 짐작했다. 

상한 감정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나의 존재를 부정당했다고 착각하며 화를 낸 것이다.    


‘내 가족은 밥 한 끼도 해결하지 못할 만큼 의존적인가? '

정말 배가 안 고파서, 밥 생각이 없어서, 쉬고 싶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도 있었다. 


 

내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니
상황이 달리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허리를 삐끗해 움직임이 힘든 남편이 보인다.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기 힘들었겠구나, 이해가 된다. 

괜스레 오해한 내 마음이 민망하고 미안해진다. 

밤 사이, 잠깐이었지만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상실감이 너무 컸다. 


다음 날 가족들에게 내 어제의 감정상태, 화가 났던 생각의 흐름, 극도로 긴장했던 하루를 마감했던 고단함 등을 설명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로써 내 분노가 일으킨 문제는 일단락되고, 관계가 회복됨을 경험하며 감사했다.  




분노에게 이름을 지어 줘


분노의 트리거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의 신념과 생각이 침해받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분노가 일어난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해도 큰 파장은 막을 수 있다.  

분노는 나의 아픈 부분이 찔려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임을 기억하고, 분노를 거울에 비춰 객관적으로 내 마음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분노도 기본 감정 중에 하나이므로 분노의 감정은 죄가 없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표현할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먼저 내 분노를 인식(인지)하고, 분노의 감정에 이름을 지어주고, 그 원인과 영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제된 말로 잘 표현하는 것이다.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으면 타인은 내 생각과 행동의 원인을 절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긴 하루였다.  


분노를 거울에 비춰 객관적으로 내 마음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분노를 관리하는 방법

첫째, 분노가 일어난 원인과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둘째, 분노를 적절하게 표현하거나 해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심호흡을 하거나, 운동이나 예술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소모하거나, 친구나 상담자와 대화하는 것이 있겠다. 

셋째, 분노가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한 대화와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기살기로 돈벌고자 하는 사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