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타 학교들과 네트볼 토너먼트가 있던 날이었다.
매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픽업해야 하는 상황.
처음 가본 장소라 위치가 낯설어 출입문이 어디인지 헤매다 한 소년에게 물어봤다.
그 소년은 “ 이 학교 학생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도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돌아서는 찰나 그 소년은 나를 “마담!!” 하고 부르더니 자기 생각에는 저 앞쪽으로 가서 왼쪽으로 돌면 출입문이 있을 것 같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준다.
“마담!”이라고 나를 불렀을 때 너무나 당연하게 돌아본 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밤새워 이불킥을 하게 만든 아. 줌. 마.
결혼 2년 차 즈음 있었던 이야기이다.
출산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임산부 시절,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했더랬다.
차가 무진장 막히는 금요일 퇴근시간, 도로가 꽉 막혀 가다 서다를 반복했었다.
그때는 기어 수동 변속 자동차를 몰고 다녔었다.
앞 차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하고 기어를 1단으로 변속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찰나 뱃속 아가가 내 배를 힘껏 찬다.
놀란 마음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아래로 돌려 살짝 배를 내려보고는 앞을 보는 데 그만 꽝!!
분명히 좀 전에 출발했던 차가 그새 멈춰있었던 거였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차량 기어를 중립으로 두고 대기를 해서인지 내 앞으로 차 3대가 가볍게 치고 밀리는 삼중 추돌 사고가 되고 말았다.
사고는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서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간을 쪼그라들고, 부딪힌 충격에 뱃속 아가는 괜찮은지 걱정도 되고. 시간이 멈춘 듯 머릿속이 하얘진다.
차들은 멈췄고, 앞앞 차주 아저씨가 나오면서 나에게 소리친다.
“이 아줌마가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예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어쩔 줄 몰라 당황해하고 있었을 때. 하필 신랑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퇴근길에 그곳을 지나시던 팀장님이 길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시고 슈퍼히어로처럼 등장하셨다.
꽉 막혀있던 도로 상황이 빨리 정리되도록 도움을 주셨었다.
앞 차들의 손상은 거의 없었고, 내 앞 범퍼만 조금 찌그러졌을 뿐이었다.
3대 중에 가장 충격이 컸을 내 바로 앞차는 경미하다고 보험처리하지 않는 선에서 합의금으로 가볍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가장 충격이 적었을 맨 앞의 차주 부부는 입원을 일주일하고 일을 못하는 것에 대한 일당까지 보험사에 요구했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 모두 내 맘 같지 않다는 것, 내 것이 아닌 것을 대하는 태도, 모르는 사람한테 보이는 자세가 진짜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사건이었다.
그 날밤 뱃속 아가도 무사하다는 확인을 하고 마무리가 되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여보, 나 보고 아줌마라고 그랬어! “
난생처음 들어본 그 말, 아. 줌. 마. 그 말이 밤새 이불킥을 하게 만들었다.
신랑은 웃으며 나에게 말한다.
”만삭인 임산부 보고 아가씨야! 가 더 이상하잖아."
당시에도 신랑의 말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충격스러운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지금은 나 스스로 아줌마라고 할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호칭이 가진 파워는 바야흐로 막강하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이름으로만 불리다가, 사회에 나가면 이름 뒤에 누구 씨, 직급이 올라가다 보면 누구 과장님, 부장님, 사장님 호칭이 하나씩 더 늘어간다.
결혼 준비를 할 때는 신부님, 병원에 가면 환자님, 아이를 임신 중일 때는 산모님, 아이가 태어나니 누구 어머니, 상황에 따라 나의 역할이 호칭으로 정의되는 것 같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어떤 호칭으로 불리고 싶은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러나, 호칭으로 내 역할을 한정 짓기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로 생각이 향한다.
명사보다는 다양한 형용사로 불리고 싶다.
글로 나를 표현하는
음악을 즐기는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랑과 열정이 넘치는
마음이 따뜻한
일관성 있는
인내할 줄 아는
배움을 좋아하는
마음이 평안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호기심이 많은
루틴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성품이 온유한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