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통해 나도 성장한다
영국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세컨더리 입학시험을 선택적으로 치른다. 공립 특목중이나 사립중학교 입학을 위한 시험을 11+ 시험(11+ Common Entrance Examination)이라 부른다. 주로 11세에 해당하는 6학년 아이들이 치르게 되어 11+ 시험이라 부르고, 13+, 16+ 시험은 해당 나이에 학교를 옮길 수 있는 시기이다.
사립학교 입학시험은 일반적으로 매년 11월까지 원서접수, 12월 ~1월 필기시험을 치르게 되고 이후 합격자에 한해 인터뷰를 거쳐 2월 10일 이전, 중간방학 전에 최종 결과를 받고 9월에 입학을 하게 되는 입시 일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아이도 올해 11+ 시험과 인터뷰를 치르고 마지막 관문인 장학생 선발 과정을 앞두고 있다.
장학생 선발은 음악, 미술, 체육, 아카데믹(영어+수학) 등 여러 분야로 선발하여 학비를 일부 감면하는 것으로 장학생을 지원한다.
내 아이는 뮤직 장학생 오디션을 며칠 앞두고 추가 레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입시 준비에 바빠 악기 연습과 레슨을 잠시 중단했던 터라 급작스러운 레슨을 잡기는 어려웠다.
부득이 학교 방과 중의 시간을 할애해서 뮤직선생님의 레슨 시간을 어렵게 잡았다.
영국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조퇴나 결석이 용인되는 것은 공식적인 시험이나 아픈 경우이다.
흔한 조퇴의 사유는 치과 검진 예약이다.
“수업 끝나기 한 시간 전에 조퇴해서 뮤직 레슨을 해야 하니, 학교에는 치과 예약이 있다고 말할게.”
순간 아이의 낯빛이 어두워진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아이에게 다른 제안을 해본다.
“오디션은 이틀 뒤지만 내일이 뮤직스콜라 오디션이라고 할까?"
아이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오디션 준비를 해야 하는데 뮤직 선생님 일정을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조퇴를 해야 한다고 사실대로 말할까?"
이 말을 하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세 표정이 밝아진다.
그랬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거짓말은 항상 나쁘다고,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쳤으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선의의 하얀 거짓말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관행이라고, 내 선택을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나의 마음의 날것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솔직함으로 포장하여 날카로운 비수가 되는 말도 조심해야 하지만, 악한 동기만 아니라면 괜찮다며 너무 쉽게 거짓말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거짓말,
나의 의도를 감추거나,
내 선택으로부터 보이는 나의 이미지,
나란 사람에 대한 판단의 빌미를 줄이는 대신 환경 탓으로 책임을 돌리고 비난이나 쓸데없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결국, 모든 거짓말은 나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시작된다.
비록 솔직함과 나의 잘못이 약점이 되어서 돌아올 수는 있을지언정, 그 부분은 감수하기로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매번 완벽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스스로에게 마음이 꺼림칙한 선택은 하지 않을 수 있다.
학교 측에서는 나의 조퇴 사유가 이해 안 될 수도 있지만, 최대한 정중하게 나의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나를 항상 주시하고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해.
아이에게 당당한 부모가 되고 싶다.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아이는 나를 항상 바라보고 나를 통해 배우고 있음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아들, 엄마가 거짓말하지 않고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 "
마음을 표현하니 아이가 수줍은 듯 “오케이” 하며 빙그레 웃는다.
아이를 통해 나도 성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