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K모닝 Dec 05. 2023

차보험처리가 느린 영국에서 살아남기

반갑지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약속이 있어 차로 집을 나서 큰길로 합류하려는데 반대쪽 차선에 있던 차가 내 앞으로 끼어든다.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퍽’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인가 하고 순간 멍하다. 

잠시 후 나를 따라오던 뒷 차가 내 차를 들이박았다는 상황이 파악되고 나니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차 충돌 소리가 커서 놀란 심장이 벌렁벌렁, 

영어를 잘 못한다고 나한테 덤터기를 씌우면 어쩌나? 

차에서 내려야 하는데 어쩌지. 이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차문을 열고 내린다.   

주위에 안하무인인 운전자, 양심 없는 운전자를 만났다던 경험담을 많이 들었던 터라 잔뜩 경계태세를 취했는데, 우선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의 안전을 묻는 말에 안심이 된다. 

차량의 손상 부분을 증거로 남기고, 서로의 차량번호와 연락처를 교환했다.  

상대차는 멀쩡하고, 내 차 뒷부분 부딪힌 부위의 페인트가 벗겨진 경미한 사고였다. 

회사 차량이라 보스에게 보고하고 바로 보험처리를 하겠다는 상대운전자의 말을 듣고 빠르게 상황을 종료했다. 


진짜는 시작도 안 했어


사고는 이미 일어난 것이고,  아름답게 마무리된 듯하였으나 자동차 보험처리절차는 이제 시작이었다. 

영국땅에서의 첫 사고처리, 보험처리를 위한 영어를 해야 하는 것도, 절차를 밟는 것도 처음이라 부담스러웠다.  상대방 차주가 약속한 대로 보험사에서 접수가 되었다며 연락이 왔다. 

접수가 되었다는 것은 Reference Number로 증빙할 수 있다.  

보험사의 전화를 받으면 누가 잘못했는지, 손상의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부상자는 있는지, 사고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접수를 하고 필요한 정보와 서류를 가능한 한 빨리 제공했다.  


나는 상대방 차주 보험사로부터 첫 번째 전화를 받아 아래와 같은 상세내용을 요구받았었다.


VIN number (Vehicle identification number, 차량 고유번호)

    - 차량의 지문 역할을 하며, 17개 문자(숫자 및 대문자)로 구성  


Dashboard showing mileage (현재 마일리지)


Images of the damage(손해 부분 사진)


Images of the vehicle from all four corner so that we can see both sides of vehicle.

   - 4군데 구석에서 양쪽이 동시에 보이는 차량 사진)


VIN Number , 차량 앞유리 우측 아래 신기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가능하면 보험사와 관련자들과의 의사소통은 기록한다. (이메일, 전화, 영수증 등)

영국은 고객서비스가 엉망이라는 이야기를 영국인 친구로부터 들었을 때는 실감이 안 났는데, 나의 일이 되고 보니 복창이 터진다. 

상대방 보험사, 우리 보험사에 똑같은 사고경위를 여러 번 설명하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상대방 보험사에서 진행하도록 처리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2주가 넘어서도 깜깜무소식이다. 

보험사에 전화했더니  “증빙사진도 보내줬었네, 확인해 보고 진행하도록 하겠다”  끝!! 

이제야 무슨 이유에서인지 누락되었던 절차가 재개된다.  

또 2주가 흘렀다.  

보험사에서 연결해 주는 정비업체와 차량 픽업일자와 시간을 예약하라고 한다. 

차량 픽업날짜에 맞춰 연결해 준 렌터카 업체에도 연락을 해서 미리 예약을 했다.  

보험사에서 로컬 렌터카 회사와 연결하여 수리할 동안 사용할 Courtesy car(무료차량)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렌터카를 받으러 갈 때는 운전면허증, 크레디트카드,  차량보험서류가 필요하다. 


그렇게 렌터카 업체에 가서 동급의 무료차량을 픽업해 왔다. 

그런데,  수리를 위해 픽업하기로 한 날에 정비업체에서 전화가 온다. 

“픽업하기로 한 Driver가 코비드에 걸려서 ~~~ blah blah”..  

요는 오늘 픽업을 못하고 다음 주에나 올 수 있단다. 

나는 이미 차량을 렌트해 왔다고 했는데도, 미안하다고만 할 뿐. 어쩔 수 없단다. 

차를 반납해야 하는지 물었는데.  반납할 필요 없단다.  졸지에 차가 2대가 되었다. 

비용이야 상대방 보험사가 지급하는 것이긴 하지만, 뭔가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에 대해 마음이 불편했다. 


제가 직접  차를 가져다 줄게요


내가 정비업체에 내 차를 가져다주는 것이 합리적인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들려오는 답변은.. 도저히 차량이 밀려서 수리가 불가능하단다. 

방법이 없단다.  다음 주에나 픽업할 수 있다는 처음의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일 참 편하게 한다.  일의 처리 방식이 빠릿빠릿하기로 소문난 한국인 정서에는 도저히 납득 불가다. 

이 불편한 상태를 해결해 보고자 어떻게든 이해를 하고 억지로라도 내 맘이 편하고 싶었다.  


영국의 문화는 서둘러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절차대로 매뉴얼대로 안전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과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실현하는 반면,  구성원들 간의 협력보다는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인 ‘고객이 왕이다’라는 개념이 약한 게 아닐까? 

한국회사에서는 직원으로서의 성과와 일에 좀 더 무게 중심이 있다면,  영국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도 고객과 동등하다는 사람 중심의 문화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이러한 일처리로 인건비는 늘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입장이 되어보면 무리하지 않고 순리적인 일처리가 이 사회를 조금은 여유 있게 만드는 건 아닐까 애써 이해해 보려 한다. 

그나저나 벌써 2달이 다 되어간다. 내 차 수리는 언젠가는 되긴 되겠지?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나의 기대치는 점점 낮아지고 인내심은 늘어간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해 보려는 것이 영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다. 


영국에서 자동차 사고가 나면 이렇게 대처하세요.


1. 차를 멈추고 엔진을 끈다. 비상등을 켜고 자신이나 동승자의 부상 여부를 확인한다. 


2. 부상자가 있거나, 사고로 인해 도로가 막히거나, 상대 운전자가 범죄(음주 운전 등)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999로 경찰에 신고한다.  긴급한 상황이 아닌 경우 101로 전화한다. 


3. 상대 운전자에게 내 이름, 연락처, 차량등록번호를 알려준다.  차량이 본인의 것이 아닌 경우 소유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제공해야 한다. 


4.  다른 운전자, 승객 또는 목격자로부터 세부 정보를 수집한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 차량 등록 번호 및 보험 세부 정보 포함)


5.  사고가 발생한 시간, 날짜, 장소, 날씨 및 도로 상황도 기록해 두면 좋다. 


6.  가능한 경우 현장과 차량 손상을 사진으로 찍어두면 보험 청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7.  가능한 한 빨리 보험 회사에 연락하여 사고를 신고한다.  이때 일어난 일에 대해 사실을 말하고 증거를 제공한다. 


8.  먼저 보험사와 상의하지 않고 책임을 인정하거나 손해 배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https://www.theaa.com





매거진의 이전글 영국 음악 시험 ABRS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