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다. 목덜미부터 느껴지는 묵직한 기운. 일어나면, 어지러울 것이라는 확신. 눈을 뜨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한다.
왜지. 왜 어지럽지. 이유가 뭐지. 혹시 큰 병인가.
귀의 이명 증상이 점점 심해진다. 처음엔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혹은 형광등 소리( 잘 들으면 형광등에서도 전기가 흐르는 소리가 난다.) 정도였는데 심해지면 작은 매미가 귀에 들어있는 것만 온갖 안 좋은 감정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을 먹는 동안에 점점 더 어지러워진다.
몸에 좋다는 홍삼과 공진단을 입에 쓸어 넣어도 몸 상태는 달라지지 않는다. 한 달이 넘도록 마음은 바닥을 기고 있다.
급히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현관문을 열자 밝은 햇살에 순간 눈을 뜨기 어렵다. 집 앞 산책로를 향한다. 집 바로 앞에 있는 산책로는 작은 천이 흐른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걸어도 좋지만, 산책하러 나온 수많은 남의 집 반려견들과 청둥오리, 논병아리, 왜가리 같은 겨울 철새들도 만날 수 있다. (새를 매우 좋아한다. 동시에 고양이도 좋아해서 돌보는 길냥이와 새들이 대치 상황일 때 매우 난감해진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공기에 들어있는 특별한 냄새도 좋다. 살 것 같다. 혹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자꾸 커지는 귓가의 소리를 참을 수 없어서 찾은 두 번째 이비인후과에서도 의사는 이명은 완치라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뇌를 속여야 해요."라고 말했다. 의사가 권한 방법은 백색 소음을 듣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소리가 들릴 때 거기 집중하면 뇌는 그 소리를 발견한 자신을 칭찬한 줄 알고 점점 가속화하는데 그러면 점점 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거기서 해방될 수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니 그 소리가 들릴 때 무시하는 전략을 쓰라는 것이었다. 의사가 권한 방법은 매우 납득되었지만 어지러움이 동반되고 그러면 감정이 한없이 가라앉고 불안해지니 견딜 수가 없었다. 의사는 약물 처방이 그다지 효과가 없을 것이라 말했지만 나는 신경안정제 처방을 부탁했다. 3일 분량의 약을 받았지만 아직 먹지 않았다.
며칠 뒤 목 디스크 보존 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방문했다가 나서는 데 한의원 옆 신경정신과 입구에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수많은 증상 중에 두통과 어지럼증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병원에 들어갈까 하다가 말았다. 30분의 상담과 약물 처장이 아닐까,라는 짧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울증이라니, 너무나 흔한 단어라서 이렇게 지옥같은 것일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신체적 증상을 동반할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음이 정말 이런 몸의 반응을 가져올 수 있다니, 정말 이렇게 죽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동반할 수 있다니. 그리고 내가 우울증이라니.
하지만 죽을 병에 걸린 것 같다는 절망과 어지러움에 내 삶을 사로잡힐 수는 없었다. 불안에 떨다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일상을 멈추고 싶었다. 이것이 우울증이라면, 어떻게 벗어날 수 있나. 원인은 무엇인가. 일단 명상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관련 책을 찾았다. 여러 책들 속에서 감정에 대한 부분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나는 그동안 감정을 돌보지 못했다. 억눌렀다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내가 감정을 드러내도 된다고, 그래도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전에 말했듯이 어려서부터 엄마는 바빴고, 삶이 힘겨웠으므로 나는 집에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 책상에 앉아서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상상을 했다. 두려움을 제외한 어떤 감정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두려움을 기억하는 건 아빠가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기 때문인데 이 또한 누군가에게 내가 겁이 나고 무섭다고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대학에 가서 대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이 "그래서 너는 뭘 원하니?" 혹은 "그래서 네 감정이 뭐니?"였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나는 당황했고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성인이 된 후 고민하고 상처받고 훈련하면서 인간다워졌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나를 돌보지 않는 사이에 내 감정은 안으로 쌓여갔다. 아메드를 만난 후 매일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넘쳤으므로, 그리고 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랑했으므로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감정은 아주 큰 에너지여서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됐다. 다 꺼내서 청소하지 않으면, 외면하고 다른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은 카르마가 되어 언젠가 더 크게 나를 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걸 풀어야 했다.
청소의 시간. 그리고 정화의 시간. 나는 두려움이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그냥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너무 무서워서 계속 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그냥 보기로 했다. 나는 백색 소음 대신 만 터라를 듣고 아침에 일어나면 정화를 위해 호오포노포노의 주문을 외웠다. 예전이면 거들떠도 안 볼 (낯간지럽게 왜 저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자기 확언 유튜브를 '지금 이 순간, 숨 쉴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 나는 나 자신이 너무 좋다. 나는 내면의 힘을 믿는다, 나는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기쁘게 맞이한다.' 같은 주문 말이다. 주문을 말할 때마다 느낌을 온전히 느껴보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매 순간 너무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간단한 요리를 할 때에도, 청소를 할 때에도, 하물며 아메드에게 필요한 (아메드는 가진 게 거의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필요한 것도 많았다. 이 생각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건 나중에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는 정말로 늘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는데도 내 눈에는 모든 게 필요해 보였다.) 물건을 고르는 순간조차 너무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순간 깊은 호흡을 하면서 온몸의 힘을 뺐다.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명상을 이어가던 중에 문득 깨달았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아주 짧은 시간 검색을 위해 포탈이나 sns에 접속했을 때 유난히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투병기가 너무나 많이 보였다. 그런 기사나 sns를 보면 나는 순식간에 '나도 증상이 비슷한 것 같은데', '나도 검사를 받아봐야 하나', '혹시 나도 큰 병인가' 같은 생각에 휩싸여 공포에 떨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믿는다. 보이는 세상은 모두 내 의도의 반영이다. 그러니까 내가 불안과 두려움과 병에 집중되어 있으니 그런 게 더 많이 보이는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되뇌었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는 행복하다...
며칠 동안 의식을 정화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신기하게도 그런 포스트가 나의 타임라인에서 포탈에서 사라졌다.
내가 건강과 밝음과 맑음에 의식을 집중하면 내 현실에서도 그런 게 펼쳐진다는 걸 다시 연습했다.
그러나 내 주파수가 낮으면, 그러니까 충분히 나를 정화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현실이 물질세계에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나는 감정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더 훈련이 필요했다.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올라오면 감정을 그대로 봐주기도 하지만 나가서 산책을 한다. 격렬한 운동이 더 좋을 듯했지만 일단은 산책을 하고 있다. 몸은 우리의 의식을 이 세계에 매개해 주는 물질이므로 사랑하고 훈련해야 했다. 명상을 한다는 의식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숨을 깊게 쉰다.
미래를 향한 믿음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걸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나는 (매우 우수한 학업성적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 대학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대강 점수를 맞춰서 들어간 대학에서는 단 1%의 흥미도 느끼지 못했으므로 학사경고를 받았고, 졸업 후 대학원은 어쩌다 보니 갔고, 박사 과정을 하러 들어간 대학에서도 딱히 끝내야 할 목표의식이 없었으므로 그만뒀다. 이는 내가 미래를 설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미래를 설계해? 왜 돈을 모아?" 라로 생각했다.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신뢰와 긍정이 필요했다. 재테크로 유명해진 여성인 k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일어날 가망성이 아주 작은 불안함에 집중하기보다는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고 미래의 행복에 집중합니다.
삶의 기본적인 방향을 긍정에 두는 겁니다. 저는 지금 건강하고 행복할 것이고 미래에도 건강하고 행복할 거예요. 그러니까 여유로운 삶을 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게 좋다. 그와 함께 삶을 누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근원적으로 이 삶을 긍정하고 믿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 c와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에 c가 말했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중요해."
그래. 끝날 것이다. 나는 이 동굴을 벗어날 것이다. 겨자씨만 한 믿음만으로 충분하다. 굳건히 믿는다면 나는 산을 옮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