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아무리 나이 먹어도 이로 인한 현실적인 불편함은 그대로이다.
평생 안고 갈 수밖에 없는 몸의 결함이기에 크든 작든 마음의 상처 역시 여전하다.
같은 부위를 여러 번 다치다 보면 딱지가 수차례 앉는 과정에서 굳은살이 생긴다.
이것은 생살에 비해 덜 다치고 통증이 덜 느껴진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일 뿐 여전히 아프긴 아프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카페에 갔는데 사람이 많아 시끄럽다 보니 주문받는 직원의 같은 질문을 몇 차례 못 알아들었다.
마스크를 끼어서 입모양이 안보였기 때문이다. 소리와 입모양을 조합해서 상대방의 말을 짐작하는 식으로 알아들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그녀의 얼굴이 짜증 내듯 찌푸려지면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었다.
무척 익숙한 상황이었기에 덤덤하게
‘미안하지만 청각 장애가 있으니 못 알아 들어서 그런데 마스크 내리고 입모양 보여줘요. 그럼 알아들을 수 있으니.‘
하고 웃으면서 얘기했다.
직원이 당황하더니 마스크 내리고 다시 천천히 말해주었다.
주문은 잘 되었고 음료수도 잘 받았다.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음료수였던 터라 맛있게 마시면서 좋아하는 소설도 오래간만에 읽었다.
날씨도 마침 좋아서 햇빛도 양껏 받으면서 산책했다. 그런데 약간 기운 없었다.
처음엔 컨디션이 안 좋은가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기분 때문인가 싶었다.
그 사람의 짜증과 언성이 내심 억울했던 모양이다.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체한 것도 아니었는데 하고.
나이 먹었는데도 여전히 그리도 억울한 건가. 어린 시절의 내가 여직 내 안에 있는 모양이다.
몇 년 전 엄마가 구입한 옷을 대신 반품하러 마트에 갔었다.
그런데 환불하는 과정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담당직원의 말 중 유독 한 문장을 못 알아들어서 재차 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굉장히 짜증 내는 것이었다.
마스크를 내려달라 했더니 못 내린다면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내는 것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멀뚱멀뚱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 큰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점차 이쪽을 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내 뒤에 서있던 할머니는 나를 도와주긴커녕 킥킥거리며 웃었다.
결국 팀장인 듯했던 남자가 위에서 내려왔고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듣더니만 나보고 마트 포인트적립 취소하는 것을 안 할 테니 그냥 가라는 것이었다.
졸지에 나는 포인트 몇십 원 적립 취소 안 하려고 버틴 사람이 되어버렸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도 부끄러워서 본능적으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집에 돌아오면서 눈물이 절로 나는 것이었다.
난 포인트에 연연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내 뒤에서 웃던 여자한테 왜 웃냐고 따지지 못했을까.
왜 그 직원한테 언성높이는 것에 대해 지적하지 못했을까.
왜 팀장한테 자초지종을 설명 못했을까.
아니 그 직원한테 진작 내 장애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말했더라면 직원도 내 상태를 이해하고서 그리 큰 소리 안 냈을 거고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안 받았을 거고 뒤의 할머니가 웃는 상황도 없었겠지.
충격이 컸는지 시간이 많이 흘렸는데도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어릴 때엔 비슷한 일이 생기면 덩달아 짜증 내고 항의하고 사과도 제대로 눈앞에서 받아내려고 애썼다.
그런데 커가면서 위와 같은 유사 상황을 수차례 겪다 보니 깨달은 게 있었다.
내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타인이라면 짜증 내더라도 어쩔 수 없고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
차라리 내 장애를 먼저 알리는 게 오히려 상황 개선에 효율적으로 더 도움 된다는 것.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하나의 패턴으로 이해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두면 덜 상처받는다는 것.
우선 사과를 한 후 웃으면서 내 장애를 미리 알리고 도움을 청하면 서로 원만하게 상황 해결이 쉽다는 것.
장애는 단지 불편한 것일 뿐이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고, 사람들이 장애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보통 가지기 어렵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겠다.
그런데 마음이 잘 안 따라준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칠 적마다 여전히 감정이 흔들리고,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면 마음 한 구석이 슬쩍 꺼끌 해지곤 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거동불편한 노인부터 해서 드문드문 보이는 장애인들,
심지어 몸이 불편한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게 되면 그들의 미소 뒤 이면을 자꾸 상상하게 되었다.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이 속상했을 거고 본인의 상태에 억울하고 불편했을 텐데, 오히려 그 감정을 좋은 방향으로 풀어내는 사람을 보면 나이 불문하고 참 대단하구나 싶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힘을 얻고 그들의 태도를 배우기도 한다.
나 역시 장애 때문에 불편한 상황에서도 그 감정을 숨기고 사람들 앞에서 웃을 수 있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 있다.
내 몸에 생긴 장애는 결코 안 낫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는 계속 생기겠지.
그래서 이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슬픔, 우울감은 아무래도 평생 갈 거다.
그 대신 점차 얕아지고 짧아지겠지.
만약 내가 장애가 없었더라면 이리 치열하게 나를 돌아보고 내 안을 들여다보려고 하기나 했을까?
덕분에 내 감정을 직시하고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려 애쓰게 되었고
사소한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항상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에게도 당연함 대신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감사하다.